러시아CIS토크) 대러시아 제재의 역설, 늘어나는 북극항로의 물동량
러시아CIS토크) 대러시아 제재의 역설, 늘어나는 북극항로의 물동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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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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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은 내달 5일부터 러시아산 석유에 대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설정된 상한 가격 이상으로 기름을 거래할 경우, 용선이나 보험 가입 제한 등으로 해상 운송을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원유의 시장가격 체제를 무너뜨리는 기상천외한 제재다.

러시아는 원유 수출선을 다변화하고, 해상 운송을 위한 '그림자 선단'을 편성하는 한편,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는 비우호적 국가에게는 가스 등 모든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원유 가격을 둘러싼 러시아 vs G7플러스 알파 국가들의 '기름 전쟁'은 어떤 결말로 끝날까?

굳이 석유 가격 상한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러시아는 이미 서방의 잇다른 제재 조치로 해상 운송에 적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개척에 공을 들여온 북극 항로가 대체 항로로 떠오른 이유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2년 제 11호(2022년 11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는 '서방의 대러 제재로 대체 항로로 떠오른 북극항로'를 다뤘다. 김혜영 씨(석사, 러시아 ·CIS 경제 전공)가 쓴 '대러 제재의 역설, 늘어나는 북극항로 물동량'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북극항로를 대체항로로 고려하세요.”
2021년 3월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Ever Given’ 호(號)가 좌초되어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12%가 차단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러시아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 무역로로서 '북극 항로'를 환기시키기 위해 외친 마케팅 구호다.

이후 러시아는 북극항로의 개발과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고 2022년 2월 특수 군사작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가혹한 제재에도 북극항로를 21세기 허브 교역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절도봉주(切道逢舟)의 북극항로

서구의 대러 제재는 북극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EU와 영국은 러시아 국적 선박과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선박의 역내 항만 입항을 금지시켰다. 원유 수송 선박에 대한 해상보험 제공도 중단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여러 국가들의 북극 투자 철회 소식도 들려왔다. 근데 한 가지 역설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러시아의 북극개발과 물류 공급망에 큰 혼란이 찾아왔으나, 정작 북극항로를 이용한 화물 수송량은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1월~8월 북극해 해역을 통한 액체 화물 물동량 비교

러시아의 해운 및 항만 정보 분석기관인 'Port News'에 따르면 2022년 1월에서 8월 사이, 북극해를 통한 석유, LNG(액화천연가스) 등을 포함한 액체화물 수송량은 4,670만 톤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가 증가한 것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2021년보다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의외의 결과를 보인 이유는 사베타(Sabetta)항에서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등의 국가로 향하던 갈 곳 잃은 화물들의 빈자리를 아시아와 인도가 채웠기 때문이다.

또 북극에서 진행 중인 자원 개발 프로젝트, 노바텍(Novatek)의 LNG 공장 건설 사업, 로스네프트(Rosneft)와 가스프롬 네프트(Gazprom Neft)의 석유 생산 사업 등이 어려움 속에서도 중단없이 운영되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위기 속에서도 북극항로를 통한 물동량 증대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에너지 수출로 얻는 수익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북극항로 인프라 개발에서 항상 물동량 증대를 중시했던 러시아에게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최근 국가발전의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했던 북극항로 개발을 위기 속에서도 기회로 삼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수 군사작전으로 서방으로부터 지옥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게 북극항로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에도 보란 듯이 북극개발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속도를 낼 것임을 강한 어조로 피력했다. 국영 타스(Tass)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극항로 개발을 위해 2030년까지 1조 4,570억 루블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제재로 인해 빠져 나간 투자자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북극항로 정기 운송 확대를 위한 관세 보조금과 민간 투자 지원 확대를 위한 사업 보조금 지급을 지시했다.

지난해 1월 쉐빙선의 도움없이 북극항로를 단독 운항한 러시아 국영 선사 소브콤플로트 소속 LNG 운반선 '크리스토퍼 더 마르줴리'(Кристоф де Маржери)호. 사진은 2017년 진수 장면/출처:유튜브 캡처

 

◇ 러시아에게 북극항로의 의미는?

대러 제재가 지속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푸틴 정권의 러시아가 북극항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북극항로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다변화를 위한 핵심 루트이기 때문이다.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EU국가들에 맞서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 다변화에 집 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극항로는 러시아가 자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 완전히 자리잡고 있고 서방과 동방을 가로지르는 해상로이기 때문에 물류 루트의 다변화를 위해서 운용의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그 다음으로 군사 안보적 차원이다. 최근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나토)에 가입함으 로써 러시아를 제외한 북극연안국 전부가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지리상 미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 북극이고, 동시에 미국을 필두로 한 북극 연안국과 옵서버 국가들이 최근 북극지역에서 자주 군사훈련을 실시해 군사 안보적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크렘린이 북극항로의 개발과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신(新) 경제 성장 동력의 확보 차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북극항로는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기조가 지속되는 시기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 항만 개발, 자원 발굴, 에너지 수출 증대 등 경제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간이다. 러시아는 이를 인지하고 북극항로를 단순한 선박의 이동 경로가 아닌 자국과 세계경제를 연결하는 길로 여기고, 나아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북극항로가 서방이 아닌 동방과의 협력 확대를 위한 중심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대러 제재에 가담하지 않은 터키, 인도, 아랍에미리트 등과 다수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북극 개발 및 항로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 대러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에 동쪽으로 눈을 돌린 러시아에게 북극항로 개발 사업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에 추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북극항로와 수에즈운하의 항로

 

◇ 한국에 주는 시사점

러시아는 불리한 대외적 환경 속에서 동방과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협력 확대를 희구하면서 아시아 주요 국가에게 협력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나친 의존도 피하고 싶은 러시아에게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러시아가 원하는 속도와 원하는 수준의 북극개발 투자 및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러시아의 적극적인 구애의 손짓에도 물류산업의 하위 가치사슬이라고 할 수 있 는 화물 운송선 건조 분야에만 진출한 실정이다.

북극항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제도적 기술적 환경적 요인이 많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이 불명료하고, 한미 동맹의 구조 속에서 한국이 북극 개발에 적극성을 보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극항로의 연중 운항이 가능해질 시기가 언젠가는 도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극항로의 활성화가 제공해주는 거대한 '기회의 창'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북극에 대한 열린 사고와 관심 제고, 철저하게 국익 관점에 기초한 정치(精緻)한 북극 전략의 강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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