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4일 '이스턴 드림호'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러시아 출신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은 4일 '이스턴 드림호'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1.04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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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 러시아 희생자 4명, 카자흐스탄 1명의 안타까운 사연들 자세히 소개

서울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석했다가 압사사고로 숨진 러시아 여성 4명의 시신(화장후 분골·粉骨함 포함)은 4일 동해항에서 출항하는 '이스턴 드림'호로 러시아로 송환될 것으로 전해졌다.

콤스몰스카야 프라우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 나와 있는 러시아 외무부의 안드레이 브로바레츠 대표부 대표는 한국과 러시아 간에는 직통 항공편이 없어 이르면 4일 동해항을 출발하는 '페리'(이스턴 드림호)편으로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 4명, 페리호를 타고 연해주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간다/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또 카자흐스탄 여성의 시신은 3일 알마티를 거쳐 고향인 악토베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사망자의 소식은 러시아 언론을 통해 일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CIS권 출신으로 이태원에서 안타깝게 희생된 이는 러시아 4명,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각 1명이다. 

러시아인 사망자 4명 중 2명은 극동 연해주 출신이다. 이들의 주검은 4일 저녁 출발해 이튿날 아침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는 '이스턴 드림'호를 통한 송환에 큰 장애물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비행기로 각각 9시간,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서시베리아의 노보쿠즈네츠크(케메로보주) 출신 여성들은 서울에서 장례(발인)및 화장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서시베리아 출신의 여성(크리스티나 가르데르)은 화장한 것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연해주 출신 율리아나 박(25)과 옥사나 김(25)은 고려인이다. 현지의 한 매체는 "한국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디아스포라(동포) 공동체를 배려하는 특별한 법률 체계를 갖고 있어 연해주 고려인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갖고 한국에서 돈을 벌고 사는 것을 선호한다"며 "일각에서는 연해주 고려인의 절반 이상이 특별한 한국 출입국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가 굳이 재외동포비자(F-4 비자)까지 거론한 것은, 고려인 여성 2명은 다른 희생자 2명과 달리 학생 신분이 아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려인 여성 2명의 희생을 다루는 현지 언론들의 태도는 유족들이 신원 공개에 개방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율리아나 박(이하 율리아나)이 옥사나 김(이하 옥사나)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다뤄지는 이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율리아나는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1년 전 한국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국으로 왔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은 위험하고 즉흥적이었으나 지금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는 글을 남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연방대학을 나온 그녀는 고려인이 모여 사는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 있는 유치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만족스러운 한국에서의 삶을 SNS에 가감없이 드러내며 즐겼다. 그러나 연해주에 홀로 남은 어머니 때문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사진출처:개인 SNS
텔레그램 캡처

한 친구는 "율리아나가 핼러윈 축제에 간 것을 알고 있었다"며 "그날 밤 (사고) 뉴스를 보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도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친구들이 뒤늦게 듣고 주변 병원들을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같이 사는 가족이 경찰로부터 율리아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유족 측은 현지 언론에 “율리아나(의 시신)를 러시아로 데려가 장례를 치르고 싶다"며 “한국 정부가 1만 달러를 지원해 준다고 하지만, 장례 절차 등을 마무리한 뒤에야 받을 수 있어 (장례)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러시아 커뮤니티에는 그녀의 아버지 이름으로 모금이 진행됐고, 40만 루블(약 900만원) 이상을 모았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든 비용 4,200달러(약 580만원)를 우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고 말했다. 

쁘리마코바 따띠아나 러시안커뮤니티협회장은 '한겨레' 신문에 “유족 중 한 분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입원했다. 한국에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금 지급까지 기다리기 어려워 커뮤니티에서 (주검 송환 비용 마련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금운동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율리아나 아르투로브나. 우리 모두 너를 기억할거야. 넌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거야”라고 적혀 있다. 아르투로브나는 아버지 '아르투르 박'을 이름을 딴 부칭(러시아 특유의 중간 이름)이다. 아래에 아버지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사진출처:한겨레

그녀의 한국식 장례식은 3일 함박마을에서 열렸다. 그녀는 한복을 입고 입관했다. 아버지는 "우리 딸이 사교적이고 친구가 많아 모든 문제를 잘 해결했다"며 "한국 시민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모금한) 제 계좌에는 1천원부터 50만원까지 후원금이 들어왔다"며 "금액에 상관없이 위로의 마음을 보내 준 것에 정말 감사한다"고 했다. 

김 옥사나/사진출처:MKru

옥사나는 4년 전 한국에 와 서울에서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여동생이 비극이 있은 다음 날 영안실에서 옥사나를 발견했다. 사고 당시 옥사나와 함께 있던 한 친구는 “나와 또다른 여자친구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지만 옥사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옥사나의 유족은 “고향에서 장례를 치를 것”이라며 “모금을 통해 장례 비용을 마련했다. 한국 정부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했지만 빨리 이뤄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 가르데르/사진출처:SNS

현지 언론이 가장 많이 다룬 크리스티나 가르데르(26)는 서시베리아 케메로보주 노보쿠즈네츠크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K-애니메이션과 K-팝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화장품까지도 K-뷰티를 애용했다고 한다. 고향에서는 K-팝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친구들과 K-팝 커버 댄스팀을 만들어 공연하고,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뛰어난 외모와 남다른 헤어스타일로 공연 때마다 인기를 끌었다. 그녀가 남긴 SNS의 사진을 보면, 일부 애니메이션 여주인공과 매우 흡사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읜 탓에 고향에서 아버지와 할머니와 살다가 한국에 먼저 온 이모 덕분에 서울에 올 수 있었다. 올해 어학 과정 1년을 마치고 정식으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그 사이에도 '브콘탁테'(VK, 러시아 SNS)에 K-팝에 관한 글을 올리고, 러시아에서는 금지된 인스타그램에 한국을 소개하기도 했다. 2,000명이 넘는 SNS 팔로워를 가진 그녀는 비극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한국어로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들어갔다"는 글을 올렸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게시물이 됐다.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크리스티나는 한국에서는 축제를 어떻게 즐기는지를 경험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그 친구는 부상을 당해 병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티나의 여동생 발레리아는 '언니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지난 2일 노보쿠즈네츠크를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장례 절차'는 모두 끝났다. 그녀의 추도및 발인식에는 약 70명이 참석했는데, 이모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고 한다.

사진출처:MKru, 여동생 발레리아가 제공했다고 썼다

발레리아는 현지 언론에 "한국으로 가는 비용(항공권과 숙박비)이 24만 루블(약 550만원)이나 들지만, 한국에서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면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며 "지원금을 가능한 빨리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이태원 참사 외국인 사망자 유가족에게 항공권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발레리아에게도 도움이 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녀가 아시아나 항공을 타야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다리아/사진출처:bloknot.ru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에 다니는 다리아 트베르도클렙(21)는 성균관대의 가을학기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유족들은 항공편으로 그녀의 시신을 인계받기 원하지만, 양국간에 직항편이 없어 화장한 뒤 페리호 편으로 송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탓으로 현지 언론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한 매체는 "그녀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지난 10월말 서울로 갔다"며 "대학 홈페이지에는 학업 성적도 좋고, 똑똑하고 재능있는 학생으로 소개돼 있다"고 전했다. 한국 체류 기간이 짧은 탓인지 그녀의 흑백 사진 한장만 현지 언론에 공개됐다. 서울시 쪽은 “유족은 항공편을 원하는데 직항편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카자흐스탄 여성 마디나 셰르니야조바(26)는 악토베 출신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고 당일, 연락이 닿지 않자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언니 다미라는 "잘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계속 그녀의 메시지를 기다렸다고 했다. 언니는 "사고가 났다는 기사는 봤지만,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카자흐스탄인에 대한 희생자 정보도 없었다"고 말했다. 

캡처3-이태원 카자흐httpskazlenta.kz
사진출처:kazlenta.kz

그러나 얼마 후 그녀의 아버지가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으로부터 딸의 죽음에 대해 연락을 받았다.

언니의 기억에 마디나는 어릴 때부터 한국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쉬꼴라(초중등학교) 8학년(우리 식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악토베에서 쉬꼴라를 졸업한 뒤 러시아의 카잔연방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어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지난 2015년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 왔고, 2017년 한국의 한 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언니는 "여동생이 어느 날 한국의 만화에 꼽혀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았고, 꿈을 찾아간 한국에서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지난 여름 카자흐스탄을 다녀가면서 새해 축제를 즐기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동생이 최근 새 가구를 구입하는 등 한국에서 새 삶을 준비했는데,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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