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러-우크라 협상은 '헤르손'에 달렸다? - 달라진 러시아의 전략 2가지 버전
우크라 뒤집기) 러-우크라 협상은 '헤르손'에 달렸다? - 달라진 러시아의 전략 2가지 버전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1.08 0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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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는 시도 때도 없이 공습 경보가 울려퍼진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3일 밤~4일 새벽 키예프와 남부 니콜라예프(미콜라이우) 등에 공습 경보가 울렸고, 4일 오후 3시쯤에는 북부 수미와 하르코프(하르키우), 폴타바 등에, 오후 5시를 조금 넘어선 시간에는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 지역에 공습 경보가 발령됐다. 주말인 5일에도 오전 11시가 지나자 요란한 경고음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뒤덮었다. 

러시아군이 실제로 공습을 하든 안하든, 공습의 강도가 세든 약하든,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러시아군의 작전은 이전과 많이, 그리고 분명하게 달라졌다. 러시아 당국에 의해 외국 에이전트(대리인)으로 지정된 매체 '로스발트.ru'는 지난 2일 이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러시아의 바뀐 '군사전략 2가지 버전'(시나리오)을 제시했다. 

'러시아의 대 우크라 군사전략 2가지 버전' 제목을 단 로스발트.ru 웹페이지/캡처

군사 전략의 변경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이 러시아 특수 군사작전의 총사령관을 맡으면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는 지난 2017년 10월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총사령관을 맡아 '전쟁에서 공습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잘 알고 있는 지휘관 중의 한명이다.

일부 외신은 아예 그를 '시리아 도살자'로 불렀다. 지난 2019년 시리아 공습 작전의 총사령관을 맡아 시리아 반군의 최후 거점인 '이들립'을 휩쓸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립에는 친 반군 피란민 300만명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반군을 이틀립에서 몰아내기 위해 소위 '초토화 작전'도 불사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을 집중적으로 파괴하는 러시아군의 새로운 작전을 두고, "수로비킨 장군이 시리아에서 써먹은 각본을 우크라이나에서 반복하는 중"(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로비킨 러시아군 사령관/사진출처:ok 영상 캡처 

로스발트.ru가 주목하는 대목도 승리를 향한 그의 거침없는 저돌성과 추진력이다. 우크라이나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을 머뭇거린(군사작전 개시 당시, 푸틴 대통령의 명령도 있었다) 전임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1991년 8월 소련 공산당 강경파의 군사 쿠데타 당시, 출동 명령을 받고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하다 만난 시위대를 거침없이(?) 밀어붙인 (시위자 3명 사망) 혐의로 7개월간 구금되기도 했고(나중에 무혐의 판결), 2004~2005년 제2차 체첸 전쟁에서 지상군을 지휘하면서 러시아군의 '그로즈니'(체첸 수도) 초토화 작전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확인했다.

이같은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수로비킨 총사령관은 본격적인 겨울 강추위를 목전에 두고,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을 일정 수준 이상 파괴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끌여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게 로스발트.ru의 분석이다. 

이 매체는 그러나 서방의 많은 분석가들이 이 작전의 성공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의 비타협적인 자세와 서방의 군사적 지원 등으로 판단할 때, 우크라이나가 올 겨울을 넘기고, 최소한 내년 여름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것. 미국이 비타협적인 젤렌스키 대통령의 자세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미 워싱턴 포스트 5일자), 일정한 성과를 거둘 때까지는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서방측이 기대하는 것은 러시아의 대규모 반전 시위다. 올 겨울을 넘기고 나면, 전쟁 피로도에 지친 러시아인들이 대규모로 거리로 나설 것으로 본다. 우크라이나 측으로서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로스발트.ru는 아주 비극적으로 인식될 만큼 심각한 러시아군 손실이나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삶의 질이 심각한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한, 그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수 군사작전에 대한 반대 집회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하고, 언론의 자유 등에 대한 당국의 통제도 확고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잇단 공습으로 키예프는 촛불을 켜야 할 형편이다/사진출처:@СС0 Public Domain 크레이티브 커먼스 제로

반면, '미사일·드론 악몽'이 시작된 지 불과 3주 만에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 시설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기가 들어오는 지역과 '없는 섬'으로 나뉠 수도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다 못한 일부 지역 주민들이 '불이 있는 곳'으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로스발트.ru는 전망한다. '나삼스'와 같은 미국의 강력한 방공망이 하나 둘씩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하늘 전체를 닫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도 "도시 주민들이 촛불로 추운 겨울을 견딜 수도 있지만, 자녀가 있는 가족의 경우, 꼭 그렇지만 않다"고 인정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전력 공급이 끊어진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측은) 타협이 불가피하고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데 크렘린은 베팅하고 있다. 러시아 일부 군사·정치 분석가들도 키예프가 올 겨울에 저항을 포기하고 모스크바가 내민 평화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본다. 여기까지 가는 데 동원된 예비군 30만명이면 충분하다. 러시아 국방부가 부분 동원령을 조기에 종료를 선언하고, 징병 대상자들의 해외 출국을 허용한 이유다.

전투 훈련을 받고 있는 러시아 동원 예비군들/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

하지만, '동장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키예프가 끝까지 저항하고 반격할 경우, '플랜B'가 가동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에너지가 부족한 도시와 마을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이다. 우크라이나 측도 '강제 이주'라고 비판하는 바로 그것. 그리고 그 빈 지역에는 엊그제 동원된, 특별히 훈련받지 않는 동원 예비군 부대를 주둔시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구사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연상케하는 작전이다. 적(나치군, 우크라이나군)을 도시로 끌어들여 시가전을 펼치는 '배수진'이다. 역사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승패는 독-소 전쟁의 판을 바꿔놨다.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탈환하기 위해 군사력을 집결 중인 '헤르손'이 바로 '스탈린그라드'가 될 전망이다. 

미국이 보는 시각도 별로 다르지 않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전략 커뮤니케이션 조정관은 지난 1일 "미국은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을 원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에서 협상을 통한 해결책을 원한다"며 "우크라이나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나토가 '헤르손 탈환'을 우크라이나의 대러 협상 재개 조건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 보도(아래)와 이를 인용한 러시아 매체 기사 묶음/웹페이지 캡처 

우크라이가가 협상에 유리한 위치는 어디일까? 80년 전의 '스탈린그라드'가 러-우크라 간에 대격돌을 앞두고 있는 '헤르손'이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미국 주요 언론들이 미-유럽, 미-러 비밀 접촉 보도(월스트리트 저널)가 나간 다음날인 7일 '헤르손 탈환, 그 다음은 협상'이라는 제목으로 '헤르손이 러-우크라 협상의 키'가 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온라인 매체 스트라나.ua(러시아어판)가 연일 '러시아군의 이상한(?) 헤르손 철수론'(혹은 소문)을 미-러 접촉, 혹은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키예프 방문과 연결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잇단 '헤르손 철수' 발언에도 우크라이나군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젤렌스키 대통령)는 시각이 팽배하다. 상당기간 교착은 불가피하다.   

로스발트.ru는 결론적으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승리'를 부르짖기 시작하면, 어느 쪽이 더 낙관적인지 분명해진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 아레스토비치 고문등 거의 모든 키예프 사람들이 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협상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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