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푸틴 대통령의 '한국의 우크라 무기 지원' 발언이 다시 생각나는 이유
우크라 뒤집기) 푸틴 대통령의 '한국의 우크라 무기 지원' 발언이 다시 생각나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1.1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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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10월 27일 발다이 포럼)이 거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그의 발언은 한달 전(9월 29일)에 나온 체코 일간지 '믈라다 프론타 드네스'(Mladá fronta DNES)의 보도를 근거로 한 추측(?)으로 여겨졌으나, 2주일여가 지난 지금, 한-미 양국은 이미 그 전에 큰 틀에서 '무기 우회(?) 제공'에 합의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우회 제공'을 보도한 체코 일간지. 구글 번역본/캡처

그 근거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10일 보도다. 이 신문은 한국은 한미간 비밀 무기 합의를 통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에게 갈 포탄을 미국에 팔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비밀 합의 내용을 잘 아는 미국 관리들은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155㎜ 포탄 10만 발을 구매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AP 통신도 미 국방부의 한국산 포탄 10만 발 구매 방침을 확인했다.

WSJ와 체코 일간지의 보도가 같은 '무기 거래'를 의미하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체코를 통해 지원되는 무기외에 또다른 거래가 있는지, 같은 무기 거래가 뒤늦게 미국에서 확인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제 3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유중인 구 소련제 군사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대가로 나토(NATO) 측으로부터 최신 무기를 받기로 한 체코가 미국 자금으로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기로 한 계획이 언론에 폭로되자, 이를 철회했을 가능성이다. 체코를 통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여의치 않자 미 국방부가 직접 나섰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의 반응은 한결(?) 같다. 체코 일간지 보도를 부인했고, 푸틴 대통령의 '한러관계 파탄' 경고성 발언이 나오자,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최종 사용자가 미국'이라는 조건을 달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러시아 언론들도 연합뉴스를 인용, 국방부 발표를 전했다.

연합:한국 국방부, 서울은 우크라이나에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안타깝게도 이 논리는 미 국방부에 의해 '눈 감고 아웅한 격(?)'으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마티 마이너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미 국방부는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며 "한국의 비정부 방산업계로부터 포탄을 사들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들인 뒤 우크라이나에 제공한다'는 직접적인 발언만 없을 뿐, 전후 문맥상 '우크라이나 제공용'이라는 사실이 짐작 가능하다. 

우리 국방부가 계약서에 최종 사용자를 명시하더라도, 수출국(한국)이 실제 사용처(우크라이나 제공)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점과 설사 미국이 최종 사용자 조항을 어기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다. 

그렇다면 '우회 지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으로 보아야 할까?
WSJ는 아예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로 포탄을 보내는 것은 한국 정부가 한국의 중요한 대북 억지 동맹인 미국을 도우면서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문자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해석했다. 체코 일간지가 한국의 우회 지원 방식을 옹호한 바로 그 논리다.

미국의 M777 곡사포/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국으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8월 기준, 155㎜ 포탄 재고가 우려할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진 미국으로서는 쓸 만한 포탄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155㎜ 곡사포 142문과 함께 155㎜ 포탄 92만4천 발을 지원했거나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2017~2021년 전 세계 무기 수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무기 수출 10대 강국은 점유율 39%에 이르는 미국을 선두로 러시아(19%)·프랑스(11%)·중국(4.6%)·독일(4.5%)의 순이다. 영국과 스페인, 한국, 이스라엘, 이탈리아가 그 뒤를 잇는다. 러시아와 중국, 나토 회원국들을 제외하면 한국과 이스라엘이 남는데, 이스라엘은 이미 우크라이나의 공식 무기 지원 요청을 수차례나 거부한 바 있다. 한국은 또 자주포와 포탄에 강점을 지니고 있다. 

WSJ에 따르면 한-미 기본 합의는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장관 사이에 이뤄졌다. 이 장관은 지난 3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오스틴 장관과 안보 현안을 논의한 바 있다. 

SCM를 마치고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이종섭 국방장관과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사진출처:국방부

그러나 군 소식통들은 "포탄 구매 협상은 이번 SCM을 계기로 한 것은 아니다"며 "이미 1~2개월 전부터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미국은 조만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독일내 미 공군기지인) 람슈타인 접촉그룹 7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온라인으로 회의를 주재하며, 50개국이 참여한다. 한국도 1차 회의 때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내용을 또 공개하며 참여국들을 압박할 터인데, '한국의 포탄 구매'도 압박 카드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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