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으나, 전쟁의 그늘이 짙게 밴 모스크바 새해맞이
코로나 팬데믹은 끝났으나, 전쟁의 그늘이 짙게 밴 모스크바 새해맞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2.31 0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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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연말 연시 분위기는 한마디로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에 투입된 정규군 병사와 동원된 예비역 군인들이 전투 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연말 분위기가 과거처럼 떠들썩하기는 애초부터 힘들다. 모스크바 등 각 지자체는 새해 축제 예산을 줄여 특수 군사작전에 동원된 군인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절에도 새해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모스크바시는 곳곳에 '축제 마당'을 열고 시민들을 응원했다. 시민들에게는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낼 장소가 필요하기도 했다. 올해도 비록 규모는 축소됐지만, 시민들이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과 함께 즐길 축제 행사장들은 이미 문을 열었다.

모스크바의 새해 맞이 축제 행사장 모습/현지 TV채널 영상 캡처

모스크바의 한 교민은 "코로나에 전쟁에 새해 축제다운 축제를 즐긴지가 한참 된 것 같다"며 "그래도 시내에 나가면 새해 맞이 축제 분위기는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새해 맞이는 12월 31일 밤 12시 크렘린의 스파스카야 탑(Спасская башня) 종소리(우리식으로 보신각 타종 행사)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러시아인들이 적지 않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마지막날 밤에 붉은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을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 소망을 빌고, 샴페인을 터뜨리고 폭죽을 터뜨린다. 

모스크바시, 새해 전야 붉은 광장 진입 금지/현지 매체 rbc 웹페이지 캡처

그러나 올해도 코로나 팬데믹 시절과 마찬가지로 붉은 광장 접근이 금지된다.
현지 매체 rbc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당국은 신종 코로나 예방 조치의 일환으로 31일 저녁 5시부터 1일 오전 7시까지 붉은 광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 방역을 위한 행동 제한 조치가 거의 해제된 모스크바에서, 29일 하루 확진자(30일 발표)가 1,420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붉은 광장의 폐쇄를 단순한 방역차원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했던 새해 축제를 예년처럼 뻑적지근하지는 않더라도 오랜만에 '대면 새해맞이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물론, 스파스카야 탑의 종소리가 올해의 마지막날 밤에 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스파스카야 시계탑 종소리는 밤 12시에 12번 울린다. 12월 31일 밤 12시나, 다른 날 밤 12시나 똑같이 12번 울린다"는 게 현지 매체 전언이다. 

모스크바도 새해 맞이 행사 준비에 앞서 고민이 적지 않았다. 3년 만에 코로나 팬데믹의 그늘에서 벗어났는가 했더니, 우크라이나 '피바람'이 몰아닥친 탓이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시민들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벌였고, 설문에 응한 시민들 중 절반 이상이 대규모 거리 행사를 취소하자는 의견을 냈다.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새해 연휴 행사 장소 추천. 2023을 새긴 불빛 장식이 사진 속에서도 화려해 보인다/현지 매체 메트로 웹페이지 캡처

현지 매체 메트로에 따르면 소뱌닌 시장은 "올해는 새해 불꽃놀이와 대형 콘서트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여론을 따르면서도, 1941년 나치 독일과 싸우던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새해 맞이 행사가 열렸다며 행사의 취소는 거부했다. 붉은 광장에 '아이스 링크'가 들어섰고, 그 주변에는 '성탄과 새해로 가는 축제' 무대가 꾸며졌다. 그는 28일 개인 블로그를 통해 새해 연휴에 어디에서 가족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는지 행사 장소를 추천하기도 했다.

최근 쏟아진 폭설로 눈덮인 모스크바 시내 곳곳은 화려한 루미나리에 장식으로 밝게 빛나고, 그 사이사이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사진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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