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토크-새해 첫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평화적 해결은 가능한가?
러시아CIS토크-새해 첫호)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평화적 해결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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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08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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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소련의 해체후 영토분쟁이 본격화한 곳은 두 곳이다. 현재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있는 '크림(크름) 반도'와 벌써 두어차례나 큰 전쟁을 벌였던 카프카스 지역의 '나고로노-카라바흐'다.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정교회 주민이 다수인 아르메니아 사이에 끼여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구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자치주였다.

두 영토 분쟁의 근본 원인은 주민들의 의사에 반한 행정구역 획정이 아닐까 싶다. 크림반도의 경우, 흐루시초프 전 소련공산당 제1서기가 1954년 러시아 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전격적으로 행정구역을 변경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의 경우, 스탈린이 내전 직후, 주민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귀속시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림반도의 주민은 러시아계가 다수이고,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주민 구성도 아르메니아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언제든 분쟁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소련 붕괴와 함께 사실상 독립을 선언했다. 아직 국제적으로는 승인을 받지 못한 '아르차흐 공화국'이다.

푸틴 대통령, 대통령령으로 바르다냔의 러시아 국적 포기 승인/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지난해 1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전쟁) 와중에도 rbc 등 러시아 언론에는 작지만 특이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러시아 부자 순위 110위권에 속하는 재벌인 루벤 바르다냔(Рубен Варданян)의 러시아 국적 포기를 푸틴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기사다. 그는 러시아를 떠나 고향인 나고르노-카라바흐로 가 미승인국가 '아르차흐 공화국'의 총리를 맡으면서 러시아 국적을 포기했고, 이를 푸틴 대통령이 공식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가 러시아에서 지금까지 쌓은 부와 명예를 버리고 고뇌 끝에 총리직을 맡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새해 첫 호(2023년 1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토 분쟁을 다뤘다. 조현준씨(석사,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평화적 해결은 가능한가?'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평화적 분쟁 해결의 신호탄으로서 ’프라하 성명'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위치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카프카스 지역에서 대표적인 분쟁의 지뢰밭이다. 작년 10월 6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 분쟁의 당사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과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가 평화를 찾기 위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 모임은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이사회 의장(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재로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고, 상호 영토 보존을 인정하기로 약속하는 소위 ‘프라하 성명'을 채택, 발표했다. 국제 사회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프라하 정상회담이 양국의 관계 정상화와 갈등의 종식을 향한 길목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한다.

'프라하 성명'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유엔 헌장과 '알마아타 조약'(Alma-Ata Protocol)의 준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알마아타 조약은 구소련 국가들(발트 3국과 그루지야 제외)이 소련의 해체를 공식화하는 가운데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고 서로의 영토 보전과 주권을 인정한 문서다.

프라하 회담 참석자들, 좌측부터 샤를 미셸 EU이사회 의장,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사진출처:파시냔 총리 인스타그램 @nikolpashinyan_official

주지하듯, 지난 2020년 11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국경(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중심)을 따라 대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영유권을 둘러싼 제 2차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제 1차 전쟁에서 장악했던 분쟁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빼앗겼다. '프라하 평화회담'은 제 2차 전쟁 이후에 열렸기 때문에 상호 영토 보전및 인정에 관한 '프라하 성명'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영유권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 체제 구축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유혈 충돌을 지속해오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평화적 해결의 출구로 향하는 '프라하 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요인 1. 아르메니아의 패전(敗戰)

2020년 11월 아르메니아는 제 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고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러시아의 중재 하에 양측은 종전에 합의했고, 아제르바이잔은 1994년 제 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때 빼앗긴 영토를 모두 수복했다. 뿐만 아니라 역외영토(Exclave)인 나히체반 지역과의 육로회랑을 연결할 수 있도록 아르메니아 영토의 통과 권한도 얻었다. 

또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역에서 아르메니아군이 철수하고, 최소 5년간 러시아와 튀르키예(터키) 평화유지군이 이 지역을 공동 관리 감독하기로 했다. 휴전협정의 체결로 아르메니아는 더 이상 아제르바이잔과의 군사적 충돌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영토 협상력도 현저히 약화됐다. 

반면, 제 2차 전쟁의 승리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영토 권리에 대한 협상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계속 아르메니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전쟁)으로 카프카스 지역에서 러시아의 세력 공백이 발생한 틈을 이용해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공습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힘의 우위를 앞세운 무력 시위로 아제르바이잔은 2022년 4월 10일 아르메니아가 양국의 현재 영토를 인정하고, 향후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겠다는 법적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패전에 따른 힘의 열세가 아제르바이잔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는데, 여기서 파시냔 총리가 '프라하 성명'에 합의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제 2차 전쟁 이후 양국의 점령 지역

◇ 요인 2. 아르메니아 니콜 파시냔 총리의 정치적 입지 강화

2020년 제 2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사실상 패전이 확정되자, 니콜 파시냔 총리는 반대세력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비판을 가하는 주요 세력은 2018년 '벨벳 혁명'으로 파시냔 총리에게 정권을 넘겨 주어야 했던 카라바흐 출신의 코챠리안과 사르키샨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소위 '기득권 세력'이었다.

그러나 파시냔 총리는 반대 세력들의 거센 공세에도 물러서지 않고 정공법으로 정치적 반격을 가했다. 전쟁 패패의 원인을 기득권 세력에게 돌린 것이다. 그는 아르메니아가 좀 더 유화적인 외교적 접근법을 취했다면 군사적 충돌은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하며, 전쟁을 피하는 방법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지위를 포기하고 영토를 반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前) 정권과 기득권층의 부정부패가 국가를 파탄나게 하고 전쟁 대비도 어렵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역공을 가했다. 그의 이같은 주장이 어느 정도 여론에 먹혀들어갔고, 그래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 대한 파시냔 총리의 온건한 접근 방식이 '프라하 성명'에 반영될 수 있었다. 만약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기하는 대가로 아제르바이잔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면, 그동안 파시냔 총리의 정치적 행보를 비난해왔던 카라바흐 출신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나고르노-카라바흐 포기 주장과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2021년 6월 20일 파시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시민계약당'이 조기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아르메니아 국민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보다 정치 개혁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웅변한다. 파시냔 총리의 이런 정책 기조가 정치적 반대파, 즉 카라바흐 출신의 기득권 세력을 제거하고 동시에 아르메니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데 중요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터키와의 관계 정상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 요인 3. 협상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아제르바이잔의 전략적 포석

한편, 아제르바이잔이 '프라하 성명'에 합의한 배경에는 앞으로의 협상 단계에서 우위에 서려는 전략적 포석이 자리잡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입장에서, 파시냔 총리의 유연한 외교적 행보가 좌초되어 아르메니아에서 보수 강경정권이 탄생하게 될 경우, 지금껏 유지해 왔던 협상의 우위를 잃고 협상 내용을 새롭게 논의해야하는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전략적 판단하에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양보할 마음이 있는 파시냔 정부와 협력하고, 추후 논의될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지위 문제와 아르메니아군 철수 등에 관한 협상에서 '원칙상의 포기'가 아닌 아르메니아의 '완전 포기'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전망

프라하 성명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의 평화적 발전 및 협력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예정되었던 브뤼셀 회담이 결렬되면서 앞날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르메니아를 향해 '프라하 성명'의 엄격한 준수와 함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요구했다. 나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아르메니아계 사람들을 아제르바이잔 국민으로 규정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르메니아는 계속되는 아제르바이잔의 군사·외교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먼저 우방국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되었다. 유럽연합(EU)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지만, EU 역시 1997년부터 이어져온 지지부진한 평화협상으로 이미 피로도가 누적된 상태였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아르메니아의 요청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르메니아의 안보와 이익을 옹호해주는 후견국가가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 비해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부분에서 열세인 아르메니아는 이제 협상과정에서 '을(乙)'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 아르메니아가 뾰쪽한 반격의 카드가 없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굴욕적인 타협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말하자면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의 해결은 아르메니아가 영토 포기를 어느 수준에서 수용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향후 아르메니아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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