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CIS토크) 우크라 전쟁의 불편한 진실, 네오나치(Neo-Nazi)-서방은 왜 외면하나?
러시아CIS토크) 우크라 전쟁의 불편한 진실, 네오나치(Neo-Nazi)-서방은 왜 외면하나?
  • 바이러시아
  • buyrussia21@buyrussia21.com
  • 승인 2023.03.06 2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 기획기사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많은 의혹들을 제시하면서 "이 전쟁은 2015년 민스크 협정, 돈바스 전쟁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유로마이단 사건, 소련 붕괴, 1917년 혁명, 1654년 페레야슬라프 라다(제정 러시아 황제에 대한 우크라이나 코사크족의 충성 맹세 회의) 등 층층이 쌓인 역사에서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분석했다. 슬라브족 계통의 '루스'에 같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역사적 갈등이 전쟁으로 터져나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특히 유로마이단 사건과 돈바스 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의 '네오나치' 성향은 러-우크라 갈등에 기름을 부었고,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공격) 명분이 됐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3년 제 3호(2023년 3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명분이 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역사와 '불편한 진실'을 다뤘다. 홍성우씨(석박사통합, 러시아·CIS정치 전공)가 쓴 '네오나치(Neo-Nazi):우크라이나 사태의 '불편한 진실'이다.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2022년 2월 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공습하는 등 주권 국가를 상대로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왜 전쟁이 아닌 작전'이라고 표현했을까?

푸틴 대통령은 군사작전 개시의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와 '러시아인 보호'를 내세웠다.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세력에 의해 학살당하고 비인간적 대우를 받았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우크라이나에 실제로 네오나치가 존재한다는 것인가? 사실이 아니라면, 왜 이런 주장을 펴는가?

◇ 스테판 반데라,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원조

진실은 항상 불편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우크라이나 나치의 출현은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 1909~1959)가 원조다. 그는 1929년 독일 나치의 후원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 OUN)을 만들었고, 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이를 '우크라이나 혁명 민족주의자 조직'(OUN-B)으로 재편했다. OUN-B는 1943년 갈리치아 지역 출신의 부역 의용군들을 중심으로 나치 무장친위대(SS) 산하에 이른바 ‘갈리치아 부대'를 창설했다. 당시 이들은 나치의 완장을 차고 유대인과 폴란드인, 심지어 러시아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역사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이들에게 생명을 잃은 희생자 수는 최소 5만 명에서 최대 1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갈리치아 부대는 나치독일의 패망 직전까지 히틀러의 나치와 운명을 함께 했으며, 이들이 바로 러시아 특별 군사작전의 명분으로 삼는 '네오나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나치에 의해 희생된 소련인이 2천만 명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가 네오나치의 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반데라 초상화를 크게 내건 유로마이단 시위대의 모습/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에서 네오나치 세력이 표면화된 것은 2004년 ‘오렌지혁명'부터다. 이 혁명 직후 탄생한 자유당은 스테판 반데라의 후예를 자처했고 산하에 ‘요제프 괴벨스 정치연구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서부 르보프(르비우)에 근거지로 두고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조금씩 결사체로서의 조직을 갖추기 시작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사건이 바로 '유로 마이단'이다. 2013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의 친러 행보에 반기를 든 친서방 시위대가 격렬하게 정권 퇴진을 요구한 반정부 시위다. 

유로마이단이 처음부터 유혈시위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평화로웠던 시위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우익진영'과 '자유당' 계열의 시위대가 정부와 야당의 합의안을 거부하고, 키이우 시내를 무력으로 장악하는 과정에서 총격사태가 벌어졌고, 급기야는 유혈사태로 번졌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야반도주했고, 정권 전복에 성공한 네오나치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일례로 자유당의 핵심 인물인 안드리 파루비(Andriy Parubiy)는 국가보안국 국장이 되고, 네오나치로 분류할 수 있는 조국당의 아르세니 야체뉴크(Arseniy Yatsenyuk)가 총리직에 올랐다. 사태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온 크렘린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친러 성향의 대통령을 내쫓고, 쿠데타(서방은 시민혁명)로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한 네오나치 세력이 러시아계 주민들을 탄압한다는 주장은 전혀 엉뚱한 궤변이 아닐 것이다.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발상지

갈리치아는 역사적으로 폴란드 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를 일컫는 지명으로, 르비우가 그 중심지다. 앞서 언급한 자유당과 우익진영 '조국당'이 모두 르비우에 근거지를 두고 탄생했으며, 이 갈리치아 일대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의 온상이다.

그렇다면 갈리치아가 왜 반러시아 극우민족주의의 본거지가 됐을까?
이 역사적 대서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족이 분화한 13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40년부터 1480까지, 약 240년간 동슬라브 민족이 킵차크한국(汗國)에 예속당한 ‘몽골-타타르의 멍에'시기다. 1240년이 기점이 된 이유는 몽골의 침공 당시, 키예프 대공국을 비롯한 일련의 루스 공국이 몽골타타르 칸에게 항복하고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예프 루스의 일원이었던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만은 끝까지 몽골에 저항했고, 이후 폴란드 왕국에 흡수됐다. 1654년이 되어서야 이 지역은 코자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의 탈(脫)폴란드 독립운동과 이것이 추동한 '페레야슬라프 조약'(1654년 1월)을 통해 러시아에 재편입됐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 과정에서 러시아와 헤어져 폴란드 치하에 있었던 400여 년간의 긴 역사가 갈리치아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와 정체성이 형성된 배경을 이룬다.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와와 중심 도시 르비우

◇아조프(아조우) 연대, 21세기 네오나치 논란의 중심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트려야 비로소 바른 것을 드러낼 수 있다. 현재도 우크라이나에서 네오나치가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근거가 바로 '아조우 부대'이다. 아조우 부대는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분쟁에서 태동한 대대급 부대로, 같은 해 11월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입됐다. 2015년에는 연대급으로 승격됐다.

문제는 이들이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차용 문양을 부대의 공식 깃발로 사용하고, 공공연하게 히틀러를 추종한다는 점이다. 아조우 연대의 창설 주역인 안드리 빌레츠키(Andriy Biletsky)는 백인 우월주의,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인물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목표는 열등한 유대인에 맞서 '십자군 원정'을 벌이는 것이라며 스스로 나치의 추종 세력임을 숨기지 않았다.

아조우 부대원들. 아조우 부대의 옛 깃발과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 나토 깃발을 내세웠다. 
아조우 부대의 옛깃발. 현재는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아조우 연대가 확대되면서 극우민족주의 색깔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하켄크로이츠'를 차용한 부대 깃발을 사용하는 작태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행태에 미국과 서구는 왜 눈을 감고 있는가? 

2014년부터 시작된 돈바스 분쟁 기간에 아조우 부대가 러시아계 주민들을 학살 및 약탈하고 비인간적 대우를 한 것이 밝혀지면서 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2017년에는 미군이 네오나치 조직인 아조우 부대를 훈련시키고 무기 및 기타 군사물품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 역시, 러시아의 제국적 야망 억제를 위해 네오나치를 이용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비난에 대한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도, 미국도 먼저 네오나치 세력의 준동을 근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의 준동을 묵인하는 서구

러시아가 내세운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제거 명분은 단순히 침략의 구실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명분이 실리와 유리(遊離)되는 것은 아니다.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자행했던 스테판 반데라 추종세력을 우크라이나는 단절은커녕, 오히려 격려했고, 그 피해자였던 유럽과 미국마저도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주의 세력을 부추겨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이용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유령이 출몰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금기시해온 서방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문제에 애써 눈 감아왔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네오나치라는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릴 때, 러시아가 일으킨 침공 명분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과 서구는 왜 아조우 연대의 러시아인 학살에 침묵하고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문제를 외면하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