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년후-15, 16일) 흑해 상공의 미 정찰드론 MQ-9의 격추가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
전쟁 1년후-15, 16일) 흑해 상공의 미 정찰드론 MQ-9의 격추가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3.18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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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흑해 상공에서 벌어졌다. 러시아 크림반도를 정찰하던 미국의 정찰 드론 MQ-9 리퍼(Reaper)가 러시아 전투기들의 긴급 이륙 이후 추락했다. 미군 유럽사령부에서 즉각 러시아 전투기들이 고의로(?) MQ-9 리퍼와 충돌하는 비열한 방법으로 국제 공역에서 자국 드론을 격추시켰다는 발표가 나왔다.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미-러시아 간의 직접 충돌이고, 모두가 우려했던 시나리오였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러 대리전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판에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할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 정찰 드론을 러시아 전투기가 공격했으니, 전쟁의 판이 바뀌는 것은 한순간일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측이 당장 러시아의 행동은 '전쟁의 판돈'을 키우기 위한 의도적인 공격이라며 오히려 판을 키우려고 나섰지만, 미-러 당사국들은 거센 입씨름 공방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EUCOM(미군 유럽사령부):러시아 수호이-27 전투기, 흑해상공에서 미 MQ-9 드론과 충돌/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5일 "미국과 소련(러시아)은 그같은 작은 충돌에 대한 경험이 많아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이 사건이 미국에서 더 큰 파장을 불러왔다"며 미 CNN 보도를 소개했다.

CNN에 따르면 미 공화당은 사건 직후 바이든 미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너무 과하게 지원하다가 미국을 러시아와의 핵전쟁 위기로 빠뜨렸다고 주장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 유력한 두 공화당 후보는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하고 당장 전쟁을 끝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이 위태로워지고, 전쟁은 푸틴 대통령의 조건에 의해 끝날 수도 있다고 CNN은 내다봤다. 또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 대선 후보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원들이 무려 80%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MQ-9 리퍼의 직접적인 추락 원인을 놓고 미-러 당국간에 입씨름이 계속되자, 미국은 16일 당시 영상을 전격 공개했다.

스트라나.ua는 이날 "(공개된 영상을 보면) 당초 미국에서 주장한 대로 러시아 수호이(Su)-27 전투기가 드론 아래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로 두 번 비행했다"고 분석한 뒤 "영상이 끊겨 미국 측이 주장하는 물리적 충돌의 순간을 볼 수는 없지만, 구부러진 프로펠러 블레이드를 마지막에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국 측은 드론 추락 직후 첫번째 설명에서 수호이-27 전투기가 드론의 후방 로터에 부딪혀 드론이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2대의 러시아 전투기가 드론 주위를 비행하며 항공 연료를 뿌렸고, 드론은 이로 인해 통제력을 잃고 추락했다고 설명을 바꿨다. 영상에서는 러시아 전투기가 연료를 뿌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다.

수호이 전투기가 연료를 뿌려(위) 드론의 시야를 방해하는 장면/현지 매체 영상 캡처

러시아 측은 "미국의 무인기(드론)는 특수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설정된 공역 제한 상공을 응답기를 끈 채 들어왔다"며 "침입자를 식별하기 위해 전투기가 이륙했으나, 무기를 사용하지도, 드론과 접촉하지도 않고 무사히 귀환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MQ-9 드론이 떠 있던 곳은 크림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75마일(약 120㎞) 떨어진 흑해 상공이었다. 미 뉴욕 타임스(NYT)는 "이 드론에는 국제 공역에서 크림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특수 카메라와 기타 장비들이 장착돼 있으며, 한대 가격이 5천만 달러가 넘는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특수 군사작전 중 이같은 첨단 정찰드론의 정보 수집 활동을 막기 위해 흑해상 국제 공역에 비행 제한 구역을 설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비행 제한을 무시하고, 정보 수집을 위해 첨단 정찰 드론을 띄웠다가 격추된 셈이다.

실제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사건 직후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핫라인'을 가동해 사건 확대를 막았지만,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국제 공역)은 어디든 비행하고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러시아의 비행제한 구역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이에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가 특수 군사작전을 위해 선언한 비행 제한 구역을 준수하지 않은 미국의 행동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도발에는 계속 대응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추후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 CBS 방송의 '긴급 뉴스' 방송 중에 나온 정찰 드론 MQ-9의 모습/캡처 

우크라이나 측이 주목한 것은 미-러 양국의 재빠른 사건 수습이다.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에 의한 미국 드론의 격추는 지난 1년간 모두가 두려워했던 시나리오인 미-러 직접 충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건 확실하다. 그러나 양 측이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번 사건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이번 사건을 고리로 미국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들이려던 우크라이나 측은 머쓱해진 느낌이다. 

미국 측은 러시아 측을 향해 '전투기의 무모하고 비열한 기동'이라는 언어를 구사하며 비난했지만, 즉각 핫라인을 가동해 오스틴-쇼이구 국방장관, 밀리 합참의장-게라시모프 총창모장 접촉을 가졌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양국 관계가 매우 나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했을 뿐, "국방부가 충분히 설명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더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CNN은 미-러 간에 충돌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례를 들어가며 양국은 이번 사건도 그렇게 매듭짓고 있다고 분석했다. CNN이 든 사례는 한국전 당시 미-소 전투기 조우에서부터 지난 2018년 시리아 폭격 사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지난 2018년 2월 미군은 시리아 동부지역에서 반군을 쫓는 러시아군과 용병 부대 '와그너 그룹'에 공습을 가해 수십명의 '와그너 그룹' 전사들이 사망했다. 이 전투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군과 러시아 무장세력 간의 가장 큰 충돌이었지만 더 이상 확대되지는 않았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용병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한국전쟁에서도 미국 전투기는 소련 미그기와 조우했다. 그러나 서로 피해갔다. 지난 1960년에는 소련 상공에서 정찰하던 미국 정찰기 'U-2'기가 격추됐다. 미국에 큰 당혹감을 안겨준 사건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기밀로 유지됐다. 언론에 기사화되지도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밀이 해제되지 않은 사건 중 하나가 구소련의 아르메니아 공화국 상공에서 격추된 미국 정찰기 C-130기다. 이 사건으로 탑승한 요원 17명이 사망했다. 미 CNN은 "1945년~1977년에 소련에 의해 격추된 미 정찰기는 40대가 넘는다"며 "이번 사건도 '정보 전쟁'의 일환으로 누구도 사건의 확대를 원치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미-러 양국이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지점은 추락한 드론의 인양 이후다. 미국 측은 추락한 드론의 '기밀 소프트웨어'(촬영 영상 등 수집 정보)를 원격으로 파괴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러시아 측은 영상보다는 드론의 엔진과 각종 전자 장치에 관심을 갖고 드론 인양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양국이 원하는 게 서로 다를 수 있다. 

러시아는 흑해에서 추락한 미 드론의 잔해 인영을 시도한다

러시아 일각에서는 러시아 함대가 추락한 MQ-9 리퍼의 행방을 이미 파악했다는 미 확인 정보도 나온다. 크림반도 지역매체 포포스트(ForPost)는 소식통을 인용해 "해저 로봇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60㎞ 떨어진 해저 850~900m 깊이에서 드론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드론 인양을 위해서는 이전에 침몰한 잠수함 '쿠르스크'(2000년 8월 북극 바렌츠 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잠수함) 인양에 사용됐던 장비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사령부 측도 "흑해 드론 추락 현장 인근에는 러시아 잠수함과 함선 외에도 장비를 실은 배들이 미 드론 인양을 위해 몰려 있다"고 주장했다. 

반추해볼 것은 미 국무부에 초치된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의 발언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미국 정찰 드론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과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데 이용할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며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러시아의 정찰 드론이 나타났다면, 미 공군과 해군의 반응은 어땠을까"라고 했다. 과연 미국은 어떻게 했을까? 

◇ 오늘(15, 16일) 주요 뉴스 요약

-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5일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위한 서방 협의체인 람슈타인 연락그룹(UDCG) 회의에서 "9개국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드 탱크 150대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15, 16일 람슈타인 회의에서는 △노르웨이가 2개의 나삼스(NASAMS) 방공 시스템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독일이 마르스2(MARS II) 다중 발사 로켓 시스템용 포탄 5,000개(우크라이나군의 일일 소비량) 와 탄약을, △폴란드가 미그(MiG)-29 전투기 4대를, △스웨덴이 레오파드 전차 10대를, △캐나다가 약 8,000개의 155㎜ 탄약과 방공 대공 미사일 12기, 레오파트1 탱크의 훈련용 포탄 1800개 이상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기로 했다. 

- 유럽연합(EU)의 대러 석유 금수조치로 러시아의 2월 석유 수출액이 1년 새 거의 반토막 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5일 발간한 월간 석유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2월 석유 수출로 116억달러(약 15조원)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2월의 200억달러(약 26조원)에서 42%, 지난 1월의 143억달러(약 19조원)에서 18% 줄어든 액수다. 

IEA는 또 러시아의 2월 석유 생산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 수준에 근접했지만, 수출은 하루 50만배럴(bpd) 이상 줄어 750만bpd가 됐다고 추정했다. 특히 대EU 수출은 76만bpd 감소한 58만bpd에 그쳤다. 

- 영국과 독일 전투기들이 나토 회원국 에스토니아 영공 근처에서 러시아 항공기를 요격했다고 BBC가 15일 보도했다. 양국 전투기들이 합동으로 러시아 항공기 요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BC에 따르면 영국왕립공군(RAF)과 독일 공군 전투기 각 1대가 나토(NATO) 합동 순찰 비행 도중 에스토니아 영공에 접근하던 러시아의 Il(일류신)-78 미다스 공중급유기를 발견, 차단했다. 

- 러시아 국방부는 15일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이 미국 측 요청으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미-러 국방장관 접촉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3번째로, 가장 최근 통화는 약 5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2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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