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대러 제재를 무력화한 '병행수입' 제도 - 우리나라도 중앙아 수출 급증했다
서방의 대러 제재를 무력화한 '병행수입' 제도 - 우리나라도 중앙아 수출 급증했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4.15 0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의 수출이 크게 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북방 수출 전략이 러시아와 CIS지역(중앙아시아)을 한 묶음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의 교역 축소가 주변 국가와의 확대로 일정 부분 상쇄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조치에 맞서 '병행 수입' 제도(비 상표권자의 수출을 합법화하는 제도)를 도입, 주변 국가들로부터 제재 대상 물품을 대거 흡입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사실상 중단한 삼성전자나 LG 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러시아의 '병행수입' 제도를 활용하면, 중앙아시아를 통해 러시아로 물건을 실어보내는 '우회 무역'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이같은 가설은 우리나라의 수출입통계에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의 대러 수출은 5억1,418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4.8% 줄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서방의 대러 제재조치로 대러 수출 규모가 거의 반토막난 것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위)와 슈퍼 마켓 메가/바이러 자료사진

그러나 카자흐와 키르기스와 같은 CIS국가로의 수출은 폭증했다. 카자흐와 키르기스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회원국이다. 그들끼리의 교역에는 장벽이 없다고 보면 된다.

지난 2월 대키르기스 수출액은 7,180만 달러(943억원)로, 전년 2월(1,034만 달러)보다 6배 가까이 늘어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인 작년 2월까지만 해도 월 1.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이 작년 7월엔 2,971만 달러, 10월 6.385만 달러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 2월에는 스마트폰 수출액은 무려 294배, 치약은 6.6배, 온도 조절 장치(자동제어 장치의 일종)는 8배 급증했다. 

러시아가 '병행수입' 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4월이었으나, 품목과 브랜드 분류 등을 거쳐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지난해 초여름부터다. 현지 매체 rbc에 따르면 지난 한해 병행수입을 통해 러시아로 통관된 물품은 240만톤(t)으로, 2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자동차와 기계·장비 등 생산 라인에 필요한 제품이었지만, 민생과 관련된 경공업 제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례로, 애플은 러시아에서 아이폰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주문도 차단했지만, 러시아 소비자들은 현지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신 아이폰을 주문하면 2시간 만에 배송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지 쇼핑몰이 '병행수입'을 통해 최신 아이폰을 미리 확보해 놓고 있다는 뜻이다.

애플 아이폰/사진출처:홈피

지난 2월 우리나라의 대카자흐 수출도 2배 증가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이 카자흐를 당분간 대러 수출 전초기지로 활용하기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카자흐 수출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카자흐 정부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제 2차 제재)를 우려해 대러 수출 품목 통관을 엄격히 통제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악재로 보인다.

CIS 국가들 중 친러 정권의 그루지야(조지아)에 대한 수출도 2배 안팎, 친러 성향의 아제르바이잔과 우즈베키스탄 수출도 각각 87%, 50% 늘었다.

수출 관련 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인접국가를 거쳐 러시아로 들어가는 품목과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주변국으로 수출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상당수 품목이 '우회 경로'를 통해 러시아로 들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