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모스크바) 중앙아 강제이주로 제한된 '고려인의 복권' 뒷이야기 - 30주년 행사
김원일의 모스크바) 중앙아 강제이주로 제한된 '고려인의 복권' 뒷이야기 - 30주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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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4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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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곳곳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 혹은 카레이스키) 동포사회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조치다. 스탈린은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연해주에 이미 정착한 조선인(고려인)들을 강제로 열차에 태워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내려놓았다. 연해주의 풍요로운(?) 땅에서 강제로 쫓겨난 고려인들은 그 곳에서 다시 생활의 터전을 닦아야 했다. 한동안 정치·경제적 권리도, 시민권도 제한됐다.

한맺힌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93년 4월에야 러시아에서 강제이주의 위법성이 인정되고, 고려인에 대한 정치적 복권(정치적 복권을 위한 법률 채택)도 이뤄졌다.

지난 1일로 고려인의 정치적 복권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달 31일 모스크바의 러시아민족회관에서 조촐하게 열렸다. 행사에는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 부가이 니콜라이 러시아 역사학자. 송 잔나 교수, 엄 넬리 교장 등이 참석했다.

고려인 복권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주요 참석자들 
주제 발표를 맡은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

관심을 끈 것은 30년전 고려인 복권을 위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관련 위원회에서 법안 마련을 주도했던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의 주제 발표다. 그는 고려인 문제를 주로 연구해온 역사학자다. 그는 "아직까지도 고려인 강제이주가 단행된 주된 이유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당시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는 고려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라, 독일인과 체첸인, 칼미크인, 타타르인 등 많은 소수민족들도 이주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고려인 이주는 1937년 맨 먼저 진행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강제이주의 배경으로 1937년 시작된 일본의 중국침략을 지목하면서 "작고한 고려인 출신 역사학자 박 미하일 박사도 강제이주는 일본과의 갈등 요인을 없애기 위한 소련 당국의 고육지책이었음을 주장했다"고 회고했다. "특유의 단결력과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진 조선인들이 한반도 가까운 지역(연해주)에 집단 거주하는 것에 대한 소련 당국의 정치적 부담이 강제 이주의 주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거론됐다. 당시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린 중앙아시아 지역에 특유의 성실함과 농작물 재배 기술을 가진 고려인들을 화급하게 투입해야 할 만큼 경제적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가이 니콜라이 박사는 이날 발표에서 약 6개월 동안 진행된 위원회 활동에 관한 뒷이야기들도 공개했다. 위원회에는 자신외에 김영웅 교수, 김 게오르기 교수 등 고려인 동포 출신의 학자들이 참여했는데, 위원회 사무실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자주 모여 밤을 세워가며 협의를 진행했다고 들려줬다. 당시 자주 모인 곳은 사할린 출신으로 소련 최고인민회의 의원(우리 식으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웅 교수 집이었다고 했다. 

정치적 복권은 강제이주 이후에 제한된 고려인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본 권리를 완전히 되찾는 조치였다. 강제이주 후, 고려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가 금지됐고, 소련군에 징집되지도 않는 등 '수용소'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같은 제한은 1956년과 1957년 흐루시초프 공산당 제1서기의 '스탈린 격하운동'으로 많이 해제됐으나, 여전히 고려인들에게는 '넘지 못할 벽'으로 남은 것들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1993년 정치적 복권 이전에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고려인이라도 장군 진급은 아예 불가능했다. 복권 이후에야 고려인 출신 장군이 9명이나 나왔다. 1년을 넘긴 러시아의 대(對)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의 부사령관에도 이름을 올렸다.

또 고려인 동포들이 주도하거나 참여하는 각종 단체들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지원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고려인 이주 140년, 150년 기념 행사들도 성대하게 치렀다.

김 모이세이 고려인연합회 고문단 의장
왼쪽 세번째가 필자

고려인 동포 지도자들 중에는 1960년대를 전후해 모스크바로 유학와 눌러 앉은 분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 작고한 이일진 선생이 대표적이다. 그래서인지 주제 발표후 자유 토론 시간에 고려인 동포사회에 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려와 관심에 대해 감사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또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매번 고려인 동포에 대힌 정책도 달라지는 면이 있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큰 울림은 "고려인들이 러시아를 사랑하지만, (역사적) 조국을 잊지 않고, 잊을 수도 없다"는 발언이었다. 

글·사진: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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