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크렘린을 겨냥한 드론 공격 -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나?
모스크바 크렘린을 겨냥한 드론 공격 -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나?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5.0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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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모스크바 '크렘린'이 3일 새벽 드론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국기가 펄럭이는 크렘린의 돔(정확하게는 원로원 궁 지붕·крыши Сенатского дворца)을 향해 내려꽃히던 물체(드론)가 격추된 듯, '번쩍'하는 폭발 순간과 함께 붉은 화염이 목격됐다. 날이 밝은 뒤 그 곳의 보수 작업도 이뤄졌다.

러시아 매체 rbc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크렘린을 향해 날아온 드론 두대 중 적어도 한대는 격추됐다. 크렘린 측은 "두 대의 무인 항공기(드론)가 크렘린을 겨냥했으나, 군과 보안당국의 신속한 대응 조치로 무력화됐다"며 "파편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또 "우리는 이를 러시아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의도적인 테러 행위로 간주하며, 적합한 시기와 장소에 보복할 권리를 갖는다"고 경고했다. 

모스크바 크렘린 위 폭발 순간/사진출처:스트라나.ua

 

크렘린:키예프가 푸틴 대통령 거주지 공격을 시도했으나, 드론은 무력화됐다/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나중에 "푸틴 대통령은 당시 크렘린에 없었으며,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 오가료보'에 있는 관저에 머물고 있다"며 "예정된 일정을 변경하지 않고 평소처럼 업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크렘린에 대한 드론 공격은 이날 새벽 3시쯤 한 텔레그램 채널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그러나 크렘린은 이날 오후(14시 35분)에서야 이를 확인했다. 스트라나.ua는 "아무리 새벽 시간에 일어났다지만, 오랜 시간 보안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며 "크렘린의 공식 발표 후, 텔레그램 채널에는 드론 공격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크렘린 앞 붉은 광장은 지난달 27일부터 전승절(9일) 군사 퍼레이드 준비를 위해 전면 봉쇄된 상태다. 그러나 크렘린의 모스크바 강 건너편 주민들은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고 전했다.

영상을 보면 크렘린 돔 근처서 드론이 폭발한 후 타워에 불이 붙은 듯하다. 실제로 이날 저녁 무렵에는 돔의 타워 수리 영상도 공개됐다. 

보름달의 왼쪽 위쪽에서 물체(드론)이 날아와 
러시아 삼색기 바로 왼쪽에 다달았다.
뒤이어 큰 폭발음과 함께 폭발했고,
불꽃이 돔 지붕위에서 타오르고 있다/러시아 매체 rbc 영상 캡처
크렘린 돔 위를 수리하는 장면/영상 캡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핀란드 방문중 기자들의 질문에 "우크라이나는 푸틴(대통령) 또는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싸운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니키포로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변인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개입설을 부인했으나,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은 마치 '우크라이나의 연루'를 확인이나 하듯 SNS에 불꽃 이미지 3개를 올렸다가 내렸다.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방어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러시아 영토에 있는 물체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크렘린에 대한 공격 보도와 동시에 크림반도에서 사보타주(비밀 파괴공작) 용의자가 체포된 것은 수일 내 러시아의 대규모 테러 도발을 예고하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가짜 깃발' 작전(상대방이 먼저 공격한 것처럼 조작해서 공격의 빌미를 만드는 것)을 펴고 있다는 뉘앙스다. 유리 이그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도 "적어도 나에게는 (이 사건이) 이상하게 보인다"며 "그들(러시아)의 연쇄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이 올린 불꽃 이미지/캡처

러시아 측의 반발은 거세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의장은 "젤렌스키 정권과는 어떤 협상도 불가능하다"며 "우크라이나 테러 정권을 멈추고 파괴할 능력이 있는 무기를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 공산당 빅토르 보솔레프 하원 의원은 "마지막 '레드 라인'을 넘었다"며 "키예프(키이우)의 정책 결정 센터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정의당' 당수 세르게이 미로노프는 "우리는 그들의 벙커를 타격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히틀러도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제거를 입에 올렸다. 

향후 러시아의 대응은 공격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해군 분석센터의 무인항공기 전문가 사무엘 벤데트는 "이번 공격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며 "두 번째 드론은 얇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드론 전문가가 9,500달러 상당의 중국산 '무긴-5 Pro'와 같은 드론으로 공격했다는 뜻이라고 스트라나.ua는 지적했다. 최근 크림반도의 흑해함대 기지 세바스토폴 연료 기지를 공격한 드론도 '무긴-5 Pro'이라는 설이 제기됐다.

다른 분석가들은 '무긴-5'와 비슷한 속도와 비행 거리를 지닌 우크라이나산 UJ-22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짧은 영상속 이미지만으로는 '무긴-5 Pro'인지, 'UJ-22'인지 정확한 식별이 불가능하다. 

중국산 무긴-5 Pro 드론 소개/홈페이지 캡처

주목할 것은 이번 공격이 러시아 본토나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잇따라 발생한 일련의 '사보타주'(극비 파괴공작)와 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전승절을 앞두고 지난 1주일 사이에 크림반도 세바스토폴과 타만의 유류 저장고에 드론 공격이 가해졌고, 우크라이나 접경 브랸스크 지역의 철도는 두 번 폭파됐으며, 그곳의 비행장도 사보타주 공격을 받았다. 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더 작은 규모의 폭파 사건들은 이미 여러 건 발생했다.

그런 면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드론 공격설'은 일단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다. 크렘린에 대한 직접 공격은 국내외에 안겨주는 심리적 효과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거꾸로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는 기회도 된다. 스트라나.ua는 "오래 전에 예고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계속 지연되고, 그 시간적 공백을 메울 화끈한 뉴스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렘린에 대한 드론 공격은 아주 적절한 이벤트"라고 지적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많이 격추되기는 했으나, 최근 모스크바를 향해 날아온 드론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군은 '드론 특수 부대'를 만들겠다며 대놓고 운영자들을 모집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크렘린만한 공격 목표가 없다. 예르마크 대통령 실장도 사건 직후 텔레그램 채널에 불꽃 이미지를 올렸다가 내렸고, 아레스토비치 전 대통령실 고문은 최근 우크라이나 드론이 이미 크렘린 근처에서 비행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크렘린 반대편 거주지역의 한 '소식'지가 올린 크렘린 공격 순간/캡처

물론, '가짜 깃발' 작전과 같은 러시아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새벽에 촬영된 영상이 오후에 공개됐는데, 우크라이나 측이 공격했다면 그렇게 늦어질 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기술적으로는 최고의 경계 대상인 크렘린 근처에서는 아마추어 드론마저도 전자파의 간섭으로 날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모스크바 근처에서 발견된 드론은 격추된 게 아니라 전파 방해에 의해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스트라나.ua의 추정이다. '짜고 치는' 판이 아니라면 드론이 돔 위로 날아 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크렘린의 대우크라 강경 대응을 부추기기 위해 러시아내 '전쟁 옹호파'들이 꾸몄다는 음모론도 있다. 이들은 즉각 '눈에는 눈'이라며 '젤렌스키 거주지'에 대한 즉각 폭격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경우든 러시아측의 강력한 보복은 벌써부터 예상된다. '반코바야'(Банковая, 은행거리라는 뜻이지만, 우크라이나 언론은 크렘린이나 백악관처럼 권력의 중심지라는 뜻으로 쓴다/편집자)나 최고라다(의회), 키예프의 정부 청사 등에 대한 보복 공격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러시아는 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을 공격 목표로 삼은 적은 없다. 이 곳을 방어하는 방공망을 두려워한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현재 방공 시스템은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반코바야'가 아닌 키예프의 지하 벙커에서 지내지만, 공격 못할 곳은 아니다. 지하 벙커는 소련 시대에 핵 공격에 대비한 곳이어서 러시아 측도 잘 알고 있는 시설이다.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그래서 나온다.

2021년 10월 당시 베넷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

스트라나.ua는 "개전 이후 2~3개월 간 양측의 협상이 이뤄졌고, 그 후에도 푸틴 대통령은 베넷 이스라엘 전 총리와 만나 젤렌스키의 생명을 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그러나 이같은 약속도 크렘린에 대한 공격으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전술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높아졌다. 러시아 반정부 인권단체 '굴라구'(Gulagu.net)은 시베리아 중부 엥겔스와 샤이코바 공군기지에 Tu-22M의 출격 태세 명령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다른 증거는 아직 없다. 강경 러시아 종군 블로거(텔레그램 채널)도 "드디어 크렘린이 강력한 대응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가능성은 있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는 크림대교 폭파 사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보복'에 나섰다"며 "크렘린에 대한 드론 공격 발표가 늦춰진 그 시간에 크렘린에서 중요한 일부 결정이 내려졌을 수도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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