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러시아 달래기'에 나서야 하는데, 정부는 지금?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러시아 달래기'에 나서야 하는데, 정부는 지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5.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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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 관계는 수교 이후 30여년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과 러·중 간의 진영 대결, 즉 '신냉전 구도'를 심화하는 고리로 작용했으니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도 이에 맞서 한국을 '비우호적인 국가'로 분류했다. 러시아로부터 각종 보복을 당할 수 있는 48개국(비우호국가)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문제는 최근 우리가 한 발 더 나가면서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달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가진 외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민간인 공격을 받을 경우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고 하자, 러시아는 “무기 공급은 전쟁 개입” “적대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통령실은 “대량학살은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은 없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한번 밷은 말은 거둬들이기 쉽지 않다.

러시아 크렘린(위)와 용산 대통령실/사진출처:현지 매체 rbc, 대통령실 페북

러시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교 채널로 우리 측에 계속 항의하고,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괴된 아파트 사진들을 내밀며 "이게 러시아의 대규모 민간인 공격 증거"라며 "무기를 지원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모스크바 현지에서 러시아 당국과 상대할 외교 사령탑인 주러시아 대사도 우연찮게 공석이 됐다. 공관장 회의 참석차 서울에 들어온 장호진 주러 대사가 지난달 7일 갑작스럽게 외교부 1차관으로 임명되고, 본의 아니게 눌러앉게 됐다. 

우리나라는 또 지난달 24일 서방의 대러 제재에 보조를 맞춰 러시아로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를 발표했다.

단기간에 꼬일 대로 꼬인 한러 관계를 서둘러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당국도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한 작업을 물밑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 대사 시절의 장호진 외교부 1차관/현지 TV 채널 영상 캡처

조선일보에 따르면, 공석인 주러시아 대사에는 이도훈(61) 외교부 2차관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3월 김성한 전 대통령 안보실장이 물러나면서 외교 라인의 연쇄 이동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 후임으로 조태용 주미대사가 안보실장에 임명되자 그 자리에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이 내정됐고, 외교부 1차관에는 장호진 주러 대사가 옮겨왔다. 주러 대사는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지낸 이 차관은 맡는다는 그림이다. 외교부 2차관 후임에는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주러 대사가 외교 1차관으로 임명되고, 외교 2차관이 그 후임으로 곧바로 가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 가운데서도 대러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측에 이임 인사도 제대로 못한 장 차관도 이르면 이달 중순께 모스크바로 가 우리 정부 입장을 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러 대사 자격이 아니라, 외교부 2인자 자격으로 이미 안면을 익힌 러시아 외교 당국자들에게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취지 등을 폭넓게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신임 대사에 대한 아그레망도 정중히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로서도 외교부 1차관과 2차관 출신의 대사를 한국의 파트너로 상대하는 구도는 나쁘지 않다. 이례적인 러시아 챙기기라고도 할 수 있다. 

러시아 외무부/출처:홈페이지

외교가에선 장 1차관의 방러 및 러시아 측과 면담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지원 논란과 관련한 고위급 소통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장 차관을 사실상의 대통령 특사로 러시아에 보낸다는 일각의 분석에는 선을 긋는 분위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한-러 관계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사업 불확실성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당연히 양국간 경제 교류도 급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한국의 대(對)러시아 교역(수출+수입) 규모는 전년 대비 22.6% 줄었다. 대러 제재에 앞장선 일본이나 독일보다도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가 더 많이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한국의 대러 수출과 수입은 각각 20.0%, 52.2% 급감했다.

©바이러시아 출처(http://www.buyrussia21.com)를 밝힌 전재나 재배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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