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 흔들리는 기업들의 대러 비즈니스 전략 -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플랜B' 가동?
(점검) 흔들리는 기업들의 대러 비즈니스 전략 -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플랜B' 가동?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5.07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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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생활및 산업용 화학제품 전문기업인 독일의 헨켈이 최근 러시아 사업의 매각을 완료했다고 4일 발표했다. 러시아 철수를 선언한지 1년여만이다. 러시아에 대규모 투자한 글로벌 기업이 사업을 현지 파트너에게 넘기고 철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기 않다는 것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책없이 길어지면서 현대·기아차와 삼성, LG 등 국내 기업들도 버티기냐? 철수냐를 놓고 선택의 순간으로 빠져들고 있다. 비록 전제는 달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사업 전망은 더욱 불확실해졌다.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나, 선택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하나 더 늘어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처한 형편을 분야별로 국내외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2회에 걸쳐 정리한다/편집자 주

◇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 현황

우리나라에게 러시아는 10위권의 교역국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지난해 교역 규모 15위로 떨어졌지만, 전쟁 전만해도 10위의 교역 상대국이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에서 석유제품·원유·석탄·천연가스 등을 수입하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가전·소비재 등을 팔았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러시아 교역(수출+수입) 규모는 전년(273억 4000만 달러)보다 22.6% 줄어든 211억 4000만 달러에 그쳤다. 특히 수출은 99억 8000만 달러(약 12조 9340억원)에서 63억 3000만(약 8조 2036억원)으로 36.5% 급감했다. 주요 대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상품을 제대로 못 팔았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서도 한국의 대러 수출과 수입이 각각 20.0%, 52.2% 급감했다. 러시아의 올해(1~3월) 교역 순위는 17위로 2단계 더 추락했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160여 개사에 달한다. 주요 대기업은 러시아에 법인·생산거점을 함께 두고 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76개 주요 기업의 러시아 법인은 지난해 기준 63곳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법인이 18개로 가장 많고, 삼성과 롯데도 각각 9개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LG(8개), CJ(3개), SK(2개), 두산(2개), KT&G(2개), HMM(2개) 등도 복수의 법인을 현지에 두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롯데, 오리온, 팔도 등은 현지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세웠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은 러시아 현지 공장을 매각하거나 사업을 철수했다. 서둘러 '탈러시아'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 기업들은 러시아 공장의 가동을 멈추거나 구조조정을 했지만, 선뜻 '철수 카드'를 뽑지는 않았다. 인건비와 관리비, 유지비 등을 떠안으며 현지에서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사진출처:현대차

◇ 자동차와 부품업체

가장 의욕적으로 러시아에 투자한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현지 법인(18개)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올해 1분기 러시아 판매량은 총 800대에 그쳤다. 1월 200대, 2월 250대, 3월 350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1분기(3만520대)와 비교하면, 집계 자체(97% 감소)가 민망할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연 23만대 생산 규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이하 상트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3월 가동을 중단했고, 러시아로의 수출마저 중단했으니, 판매할래야 판매할 차가 없었다. 러시아의 수입 자동차 판매 1위가 무색하게 시장 점유율은 현재 한 자릿 수로 뚝 떨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사실상 상트 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다. 서방 자동차 기업들과 달리, 카자흐스탄에 있는 현대차 합작사(아스타나모터스)에 공장을 매각한 뒤 CKD(Complete Knock Down, 반조립 생산)용 자동차 수출 허브로 탈바꿈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CKD는 한마디로, 완성차 생산에 필요한 많은 부품들을 1차 부분 조립한 뒤, 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해 그 나라에서 완전히 조립하는 생산 방식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때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다. 현대·기아차도 한국에서 부분 조립된 자동차 부품 덩어리(반제품)들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 현지에서 완전 조립하는 CKD 수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상트 공장의 매각은 카자흐스탄으로의 CKD 수출 거점을 한국에서 러시아로 바꾼다고 보면 된디.

현대차 상트공장/사진출처:홈페이지

1년 이상 가동이 중단됐지만, 상트 공장에 남아 있는 재고 부품들을 기반으로, 부족한 부품을 한국과 터키 등에서 공급받아 CKD 수출용 자동차 반제품을 만들고, 이를 카자흐스탄으로 보내 완성차로 조립한다는 '플랜 B'의 가동이다. 인근에는 엔진 생산 공장인 '현대위아' 등 부품 단지가 있어 '플랜 B' 가동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현대위아'의 러시아 공장도 ‘개점 휴업’ 상태다. 현대차 생산라인이 멈췄으니 당연한 결과다. 현대위아 측은 “가끔 기계에 기름칠을 하는 개념으로 공장을 돌린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의 '플랜 B'가 본격 가동하면, 현대위아 측도 공장을 재가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위아측은 아직 유급 휴직과 교대 근무 등으로 생산 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자및 가전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과 가전, TV·디스플레이 사업에서 성장성이 높은 러시아 시장 개척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현지법인의 공장 가동과 판매를 사실상 전면 중단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州)에 있는 TV·모니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LG전자도 가전과 TV를 생산하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을 지난해 8월 멈춰세웠다.

삼성전자 칼루가공장(위)와 LG전자 루자 공장/사진출처:홈페이지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러시아 법인 매출은 2020년 3070억 루블(5조원), 2021년 3610억 루블(5조 870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순이익도 935억 3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48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순간에 적자 기업으로 바뀐 것이다. 

시장 점유율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트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2021년 35%에서 지난해 12월 2%로 고꾸라졌다. 그 틈을 탄 샤오미 등 중국 브랜드들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40%에서 95%로 치솟았다.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행 제품및 부품 선적을 중단한 뒤 현지 공장 가동을 멈추면서 나타난 시장 변화다. 

LG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전인 2021년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서 거둔 매출은 2조 335억원이다. 그해 LG전자 전체 매출의 2.7% 수준으로, 전년(2020년) 대비 성장률은 22%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 법인 매출은 9445억원으로 반토막났고, 23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적자 전환한 것이다. 

삼성 스마트폰 야외 광고판/사진출처:삼성전자

전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시장 재진입에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철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회견 등 예상치 못한 악재까지 돌출해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사업 재개에 대비해 현지 거래선을 유지하며 고객 관리를 하는 게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이다. 

◇ 식품업체 

러시아 시장에서 'K푸드'는 지난 30여년간 '전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컵라면 '도시락'과 '초코파이'가 대표적이다. 도시락의 팔도와 초코파이의 오리온을 비롯해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 CJ 등이 러시아에서 한국의 맛을 넓혀가고 있다. 오랜 경험과 비즈니스 전략에 따라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현지화 전략을 펼쳐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K푸드'는 꺾이지 않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서방 측이 의약품과 식료품, 생필품 일부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993년 러시아 시장에 출시된 오리온 '초코파이'는 이제 현지에서 ‘국민 간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맛을 다변화(14종)하고, 생산 라인(제 3공장)을 증설해 지닌해에도 판매 호조를 보였다. 오리온 러시아 법인의 매출은 전년(2021년)보다 79.4% 늘어난 2,098억원에 달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워낙 오래 전에 현지 시장에 진출했고 내수기업으로 자리잡은 만큼 전쟁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팔도 도시락의 라멘스키 공장 모습. 도시락 고야는 팔도의 러시아 법인 이름
트베리주에 새 공장을 짓기로 한 오리온/사진출처:라멘스키 시, 오리온 

초코파이보다 앞선 지난 1991년 러시아에 컵라면 '도시락'을 소개한 팔도는 현지 용기면(컵라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60%)을 자랑한다. 지난해 팔도 러시아 법인의 '도시락' 6종 매출은 전년(2021년) 대비 2.9% 늘어난 3천여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팔도는 지난해 10월 스페인 글로벌 식품기업 GB푸드의 러시아 사업 부문을 수백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팔도 관계자는 “도시락이라는 라면 브랜드가 현지에선 국민 브랜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롯데웰푸드의 러시아 법인 매출이 지난해 53% 증가했다. 전쟁 중에도 현지 사업이 호조세를 보이자, 롯데웰푸드는 올해 초 러시아 법인에 340억원을 투자해 초코파이 생산 라인과 창고 건물을 증축했다. 

◇ 제약 바이오 업체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의 대 러시아 협력은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러시아의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를 국내서 위탁생산하고, 러시아에서의 임상시험 시도 및 확대, 코로나 신속 검사기의 대량 수출, 기존 의약품의 수출및 기술이전 등 협력 범위는 넓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되고 전쟁 발발로 어렵게 뚫어놓은 교류협력및 수출의 길이 막히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나마 의약품은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서방의 대러 제재 대상에서 빠져 있다. 

한국코러스가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 시제품을 선적하는 모습/사진출처:한국코러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제약업체는 일양약품과 동아쏘시오홀딩스, 한미약품, 휴온스바이오파마, 이수앱지스,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이다. 의약품 수출과 인허가, 현지 업체로의 기술이전 등으로 발을 디뎠다. 

일양약품은 러시아 제약사 '알팜'과 지난 2014년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2016년에는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놀텍'에 대한 독점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알팜은 연 1조 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러시아 상위권 제약사다. 의약품 제조는 물론, 임상시험과 판매 마케팅 등 유럽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다는 평가다.

러시아 제약사 알팜(위)와 파마신테스/사진출처:페북 홈페이지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 2017년 러시아 제약사 '파머신테즈'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앞서 지난 2011년부터 결핵 치료제의 원료 의약품인 싸이크로세린과 테리지돈, 숙취해소제 모닝케어를 거래한 파트너 제약사다. 앞으로는 일반의약품과 '템포' 등 소비 제품, 동아에스티의 전문의약품과 원료의약품, 디엠바이오가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 등을 계속 공급할 계획이다. 또 일부 품목의 기술 이전도 추진할 방침이다. 파머신테즈는 러시아 10대 제약사 중 하나로, 항결핵제, 항생제, 에이즈치료제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판매하고 있다. 

파머신테즈는 또 이수앱지스와도 협력을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이수앱지스의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 후보물질 'ISU305'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수앱지스는 또 지난해 현지 제약서 '페트로박스'에 희귀질환 치료제 '파바갈'을 기술이전 했다. 파바갈은 희귀질환인 파브리병의 치료제다. 또 올해 초에는 '알팜'과 면역관문억제제 '옵디보' 바이오시밀러 'ISU106'을 기술이전하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2021년 현지 파트너사 '사노피'를 통해 고혈압·고지혈증 치료 3제 복합제 '아모잘탄큐'(러시아명 트리스타니움)의 러시아 허가를 획득했다. 사노피는 러시아 현지 품목 허가와 마케팅, 판매를 전담한다.

휴온스바이오파마는 지난해 보툴리눔톡신 제제 '휴톡스(국내명 리즈톡스)'를 러시아 보건당국으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았다. 러시아 에스테틱 전문기업 인스티튜트오브뷰티 피지에를 통해 '노바큐탄 BTA'라는 이름으로 현지 진출을 추진중이다.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지난 3월 러시아 '팜아티스 인터내셔널'에 골관절염 '아셀렉스' 초도 물량 180만 캡슐을 보냈다. 팜아티스 인터내셔널 측은 아셀렉스의 판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후 이른 시일 내에 러시아 공식 발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흔들리는 러시아 전략-하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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