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러 비즈니스 전략 (하) - 버티자니 힘들고, 떠나자니 피해가 막심하고.. 진퇴양난?
대러 비즈니스 전략 (하) - 버티자니 힘들고, 떠나자니 피해가 막심하고.. 진퇴양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5.0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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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니스 전략 점검 -우크라 전쟁 장기화에 '플랜B' 가동? 에서 계속

◇ 조선·건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몇 년간, 대형 쉐빙 LNG(액체천연가스) 운반선 수주를 발표했던 조선 3사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에 고민하고 있다. 발주처를 직접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북극항로 운항을 목표로 한 러시아측 주요 해운사들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베리아 야말반도의 가스전에 LNG 변환 공장이 들어서면서 러시아측으로부터 대형 LNG 운반선 발주 물량이 크게 늘어났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발주처로부터 수주한 선박 20척 중 3척만 건조 공정을 진행 중이다. 나머지 17척은 설계에 들어가기도 전에 작업을 멈췄다. 공정에 들어간 3척도 8억6000만 달러 가운데 잔금 2억5000만 달러가 아직 미수금으로 남아 있다.

가스프롬의 LNG 운반선(위)와 대우조선해양의 쉐빙 LNG 운반선 명명식 모습/사진출처:가스프롬,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과 조만간 '한화오션'으로 새출발할 대우조선해양도 건조 여건은 삼성중공업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20년 6월 야말반도 가스전 개발(야말 프로젝트)을 주도하는 러시아 민영가스 회사 '노바텍'으로부터 LNG 바지선 2척을 수주하는 등 쇄빙 LNG 가스운반선 수주에 공을 들여왔다.

조선업계와 비교하면, 수주 규모 자체가 미미한 건설업계도 내심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의 러시아 수주는 2018년 31억4천100만 달러, 2019년 3억2천800만 달러, 2020년 1억1천800만 달러, 2021년 17억8천400만 달러, 2022년 11억6천200만 달러 등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건설 수주 현황/출처: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

30억 달러를 넘긴 지난 2018년에도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건설 총 수주액 320억 달러의 10%에 불과했다. 2014년엔 56억4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수주액을 기록했는데, 그 해 해외건설 수주 총액은 660억 달러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8년 러시아 뉴스트림JSC로부터 3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설비공사를 수주하고, 2021년에도 7천500만 달러의 가스처리 설비 공사를 수주했지만, 두 건 모두 발주처 사정으로 취소됐다. 현재 진행 중인 공사는 없다고 한다.

DL이엔씨가 수주한 '발틱 케미칼 콤플렉스'의 소개 페이지/홈페이지 캡처

전쟁을 전후해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2021년 13억2천400만 달러, 삼성엔지니어링이 2022년 11억4천200만 달러의 공사를 수주했다. 발주처는 '발틱케미컬콤플렉스(발트 화학 단지)'로 동일하다. 두 회사는 현재까지 공사 현장에서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설계, 구매, 시공으로 구성되는 EPC공사에서 설계(E)와 구매(P)만 담당하고 있어 외부적 요인에 따른 위험도가 낮다. 

특히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2월 발주처와의 계약방식을 럼섬(Lum Sum) 방식에서 럼섬과 컨버터블 방식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공시했다. 럼섬 계약방식은 예기치 못한 비용도 모두 건설사가 부담해야 하지만 컨버터블 계약에서는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전후 복구사업 참여나 가즈프롬와 노바텍 등 기존의 러시아 에너지 기업, 발틱케미컬 컴플렉스 등 대형 프로젝트와의 협력 전망에 대한 우려는 계속된다. 한-러 양국간의 불편한 관계는 이미 수주한 기본설계(FEED)가 후속 EPC공사로 이어지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DL이앤씨는 지난 2021년 2건의 FEED 공사를 수주했고, 가즈프롬과도 여러 건의 계약을 체결해 둔 상황이다. 

◇ 통신·종합상사 

KT는 러시아 인터넷 데이터센터(IDC) 건립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4월 중순 중순 러시아 당국에 'KT 연해주(프리모리예) IDC' 법인 청산을 신고했다. 청산 기간은 2024년 4월 3일까지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는 등 상황이 개선되면 모르나, 그렇지 않을 경우, IDC 건립은 물건너 갈 전망이다.

KT는 연해주 이동통신 사업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2월 러시아 통신기업 모바일텔레시스템즈(MTS)와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현지 IDC를 공동 구축하기로 했다. 또 △인공지능(AI) 기반의 영상 및 음성 솔루션 기술협력과 △미디어 콘텐츠 교류와 지식재산권(IP) 확보 등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지난해 5월에는 러시아 연해주에 IDC 사업을 담당할 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고, 아쉽지만, 약 1년 만에 청산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KT측은 그러나 러시아에 진출한 법인 전체 청산은 아니라고 했다. KT 측은 “IDC 법인 청산은 다양한 환경 요인에 따른 의사 결정”이라며 “앞으로도 글로벌 사업 개발을 위한 검토는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라고 밝혔다. 

KT와 러시아 연해주 투자청 회의 장면. 위는 연해주 투자청 사이트로, '한국 투자자는 연해주에 데이터센터와 호텔, 병원을 짓는다'는 제목을 달았다/캡처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에 지사를 두고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러시아 현지 인력을 대폭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사의 지위도 연락사무소 급으로 낮췄다. 파견 직원 없이 현지 채용직원 2명만 일하고 있다. 모스크바 지사에도 주재원 1명과 현지 채용직원 3명이 명맥만 유지하는 중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현재 러시아 측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한 상태다. 

우리 정부가 지난달 28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기계·자동차·화학제품 등 741개 품목을 추가로 러시아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포스코인터내셔널과 같은 무역 거래 중재업(옛 종합상사)의 업황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 우리 정부의 전략물자 수출입 고지 

우리 정부는 군용 목적으로 전용 가능성이 큰 기계·자동차·화학제품 등 741개 품목의 러시아 수출을 4월 28일부터 추가로 금지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2월 24일 서방의 대 러시아·벨라루스 제재 확대에 맞춰 이들 국가로의 수출 시 정부 허가를 필요로 하는 품목을 기존 57개에서 798개로 확대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8일부터 러시아·벨라루스를 상대로 한 '(수출) 상황 허가 품목’을 기존 57개에서 798개로 확대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시행에 들어갔다. '상황 허가 품목'은 전략물자는 아니지만.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재래식 무기의 개발·생산·운반·보관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어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물품들을 말한다. 기존의 상황허가 품목 57개는 대부분 전기·전자 제품이었으나, 이번에는 일반기계와 화학제품, 컴퓨터 등으로 영역이 크게 확대됐다. 

대표적으로 기존 컴퓨터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 군용 암호해독 등에 쓰일 수 있는 양자컴퓨터와 민수용 운송수단 제작에 널리 쓰이는 베어링 등 일반 기계 부품, 레이저 등 광학제품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사파이어·루비 같은 보석류도 수출 금지 품목에 들어갔다.

자동차도 유사시 무기와 병력을 운반하는 데 쓰이거나 주요 부품만 떼어 내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수 있어 수출 통제를 받는다. 다만 자동차의 경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정한 ‘5만 달러 초과’ 기준을 적용하가로 해 대부분 5만달러 이하인 국산 중고차의 수출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고시 시행 이후부터는 기존 계약분을 수출하거나 한국 법인의 100% 자회사로의 수출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상황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해당 품목이 제3국을 우회해 러시아나 벨라루스로 유입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 금융업계

국내 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이 확대됨에 따라 금융기관들도 러시아로 진출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다. 현지 진출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양국간 교류가 축소되면서 우리·하나은행의 러시아 비즈니스도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러시아법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60억원, 당기순이익은 12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2021년)의 130억과 50억원과 비교하면, 각각 176%와 140% 늘어난 것. 총자산도 2021년 말 기준 5천220억원에서 지난해 말 7천860억원으로 50% 이상 증가했다.

하나은행 러시아법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63억원으로 전년(63억원) 대비 158% 늘어났고, 당기순이익은 139억원으로, 전년(56억원)과 비교하면 148% 증가했다. 총자산은 같은 기간 7천256억원에서 1조2천81억원으로 66%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예상치 못한 성과는 러시아 은행들이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되면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러시아법인에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운용수익이 크게 늘어났다. 러시아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2월 무려 연 20% 수준까지 올랐다가 현재 7%대를 유지 중이다. 

우리은행 러시아 법인 홈페이지/캡처

우리은행은 지난 2008년 1월 국내은행 중 가장 먼저 러시아법인을 설립했다. 한국계 기업과 주재원, 교민은 물론 일부 현지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쳐왔다. 지난해 말 기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2곳에 지점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무소 1곳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옛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금융 글로벌화를 지향하고,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에게 금융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2014년 9월 러시아법인의 문을 열었다.

전쟁 장기화로 우리·하나은행 러시아 법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쟁 장기화에 대응해 러시아 현지법인의 자산 확충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은행의 해외법인 설립 취지가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이나 주재원, 교민, 학생들의 금융지원에 있다"며 "현지 상황이 악화하더라도, 은행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서방 기업들의 동향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몇몇 연구 기관들의 조사 결과를 인용, 전쟁 직후 러시아를 떠나겠다고 약속한 수백 ​​개의 외국 기업 중 소수만이 실제로 러시아를 떠났다고 지난 4월 중순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키예프(키이우) 경제 연구소는 러시아에 있는 3,000개 이상의 외국 기업 중 211개만이 러시아를 떠났다(7%)고 주장했다. 또 468개 브랜드는 '애프트 서비스'(A/S)를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세인트 갈렌(St. Gallen)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G7과 유럽연합(EU) 기업의 9% 미만이 러시아를 떠났다. 미국 예일대 경영연구소는 1,600개의 외국 기업에 대한 정보를 조사한 결과, 1,022개가 문을 닫거나 운영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발표 기관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기업 철수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철수한 이케아를 본딴 러시아 브랜드 '스웨드 하우스'(위)와 이케아의 과거 모스크바 매장/사진출처:인스타그램, 텔레그램

WP는 외국 기업들이 철수를 주저하는 것은, 러시아를 떠나지 않는 편이 '기업 브랜드'가 입는 피해보다 더 작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에서 큰 시장 점유율을 차지해온 많은 기업들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한다고 말한 뒤에도 거래를 계속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본다.

일부 기업은 러시아 자산의 매각을 약속했지만 아직 구매자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인들은 외국 기업 철수에 따른 불편함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외국 기업은 앞으로 러시아를 떠나는 게 더 어려워진다. 철수를 미루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 재무부는 지난 3월 27일 외국인 투자자(기업)의 자산 매각 관련 조항을 개정, 발표했다. 한국을 포함한 ‘비우호국’ 투자자들이 사업체를 매각할 경우, 시장 가치의 최대 10%를 ‘출국세’ 형태로 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러시아 당국이 외국인 투자자 측에 자발적으로 기여금을 내든지, 매각 대금을 분할로 받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으나, 일률적으로 5~10% 강제 기부로 변경됐다고 한다.

따라서 비우호국 기업이 현지 자산을 매각할 경우 △최소한 시장 가격의 50%를 할인해 주고(절반 가격 이하로 팔고) △할인율이 90%이상 10%, 90%이하 할인시는 5%를 세금 명목으로 러시아 정부에 내야 한다. 

◇ 버티기냐, 철수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해도,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완전히 단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 팀장은 “러시아는 기초과학에 강점이 있는 나라다. 한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서방 기업들의 '엑소더스'(탈출)를 지켜보면서도 쉽사리 철수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연결되는 러시아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 진입의 문턱도 높은 곳이라, 한번 철수하면 재진입에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점도 작용했다. 

과거의 버티기 경험도 '학습효과'로 유용했다. 지난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 지불 유예) 선언 당시, 소니 등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할 때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기업은 거꾸로 사업을 확장해 러시아의 '국민 브랜드'로 가는 기초를 닦았다. 또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의 대러 제재 조치와 국제 유가의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졌던 2014, 2015년에도 미국의 GM과 유럽 일부 자동차 회사들이 공장을 폐쇄하거나 철수했지만, 현대차는 끝까지 시장에 남았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의 현지 점유율이 전체 2위, 수입차 기준 1위로 올라섰다. 

문제는 전쟁이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의 법인·공장이 영업과 가동을 멈춘 사이, 중국 기업들이 그 자리를 재빠르게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땅한 '플랜 B'도 준비된 게 없으니 속앓이만 늘어난다. 현지 진출 기업의 관계자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을 위해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힐 뿐이다.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다. 

일각에서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받게 될 악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다행스럽다. △한국이 러시아의 주요 교역국이고, △주요 서방국 기업들이 서둘러 철수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현지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며 △양국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할때 단절로 인한 타격이 러시아 측의 더 클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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