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과제(2) - F-16 전투기의 우크라 이전 기대, 전투력은 너무 부풀려졌다
젤렌스키 과제(2) - F-16 전투기의 우크라 이전 기대, 전투력은 너무 부풀려졌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5.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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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얻어낸 가장 큰 성과는, 역시 F-16 전투기다. 미국이 F-16 전투기를 언제 얼마나 키예프(키이우)에 인도할 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물꼬를 튼 것만은 확실하다. 미 행정부나 미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독립후 30년 이상 소련(러시아)식 공군 전력 체계를 유지해온 우크라이나 시장이 호박덩굴처럼 스스로 굴러들어왔으니 내심 만세를 부르고 싶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섣부른 전투기 제공은, 러시아와 직접 충돌 위험을 높이기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F-16 전투기 제공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F-16 전투기/사진출처: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오늘 바이든 미 대통령을 만났다"며 "F-16 전투기 제공이 이 자리에 핵심 의제로 올랐고, 바이든 대통령은 3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새로운 군사 원조 패키지를 발표했다"고 G7 정상회의 참석의 성과를 요약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4세대 전투기(F-16)에 대한 우크라이나군 조종사 훈련 계획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통보하고, △키예프가 F-16 전투기를 러시아 본토 공격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받았으며 △다가오는 우크라이나 반격 작전에 F-16 전투기의 참전을 기대하지 않고, 바흐무트 위기 대처에도 도움이되지 않을 것 등으로 정리했다.

F-16 전투기 제공에 대한 미국의 청사진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 발언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단독 회담을 갖는 젤렌스키-바이든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현 시점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우크라이나 조종사 훈련이 끝난 뒤, 미국이 F-16 전투기를 몇 대나 넘겨줄 것이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동이 끝난 뒤 "전투기가 몇 대나 언제 올 지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는 그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첫 인도분으로 12~18대를 원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스트라나.ua는 "서방 파트너가 아직 인도 날짜나 수량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모든 게 기대 수준"이라며 "조종사 훈련에는 최소한 몇 달이 걸린다는 점에서 일러야 10월 쯤 명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리 샤크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고문도 "우리는 9월 말이나 10월 초 F-16 전투기의 수령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는 않았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일 "훈련이 몇 개월간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전투기를 언제, 누구에 의해, 얼마나 전달할지 결정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뜸을 들였다. 또 "우리는 (우크라이나 공군 전력을) 장기적으로 4세대 전투기로 전환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며 F-16의 조기 이전에 대한 기대를 차단한 뒤, "지금 당장 F-16 전투기가 전투에 적합하지(필요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전망은 더욱 야박하다. 그는 G7 정상회담에서 "F-16 조종사 훈련과 관련된 것(우크라이나 인도)은 장기 프로젝트"라며 "미국은 훈련이 끝나면 어떻게 할 지 아직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정(우크라이나 조종사 훈련)은 러시아가 장기 소모전을 벌이더라도 승리할 수 없을 것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정의했다. 모스크바가 서방이 전투기를 전장에 보내기 전에 중단하라는 경고성 발언이다.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를 제공하도록 미국에 압력을 가한 영국-네덜란드 중심의 '국가 연합' 참여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상 거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결정이 F-16이나 다른 전투기를 조종사 훈련이 완료되는 즉시 공급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수 군사작전에 참전한 러시아 수호이(Su)-25의 기동 모습/사진출처:러시아 SNS ok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미국의 F-16에 목을 맨 것은 공군력의 절대적인 열세 탓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개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실전 투입이 가능한 전투기가 소련제 구형 전투기 120대 수준에 불과했다. 올 2월에도 올렉시 레즈니코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어떤 군사 원조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전투기 사진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와 나토(NATO)간 직접적인 대결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 자국 방어에 전투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거부했다. F-16 전투기를 이전할 경우 대당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지원 비용도 미국이 간과할 수 없는 요소였다.

미국이 히로시마 G7정상회의를 앞두고 F-16 제공에 동의한 것은 유럽 동맹국들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다. AP 통신은 "미국은 이번에도 유럽 동맹국과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 시스템과 에이브럼스 M1 주력 전차(탱크) 등 첨단 장비 제공 과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시하다가, 국제사회(유럽 동맹국)의 여론에 못 이겨 지원에 나서는 모습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 중에 '(전투기 제공을 위한) 국가 연합' 형성을 직접 요청했고, 이를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받아든 모양새다.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G7 회담 참석을 계기로 보따리를 풀 수 밖에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석한 G7 정상회의/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F-16 전투기는 '파이팅 팰컨'(사나운 매)으로 불린다. 미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1970년대에 출시한 경량 전투기로, 1979년 실전에 처음 배치됐다.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주요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현재 25개국에서 3천대 이상이 운용되고 있다. F-16 전투기는 M61 벌컨포를 탑재하고 AIM-9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미사일과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으로 무장한다. 최대 2천400㎞/h의 속도로 3천200㎞ 이상 비행할 수 있다. 

미국과 주요 우방국에서는 F-16이 5세대 전투기 F-35에 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가성비 좋고 수출 조건도 까다롭지 않아 최근까지도 수요가 큰 '4세대 스테디셀러 전투기'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까? 인도 시기가 관건이겠지만, 러시아 측의 반응만으로 유추해 볼때 '아직은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방공시스템 S300(위)와 오사(Osa)-AKM 시스템/사진출처:러시아 SNS ok

하지만,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저스틴 브롱크 연구원은 "러시아의 강력한 방공망은 전투기의 근접 공중 공격을 어렵게 만든다"며 "서방 전투기 지원에 따른 우크라이나군의 이점은 점증적(incremental)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세를 뒤바꿀 '게임체인저' 급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현재 전장에 투입된 미국의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를 대체하는 추가 옵션이 될 수 있는 정도라고 브롱크 연구원은 덧붙였다. 

F-16 전투기 제공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미 의회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하원)은 오는 9월까지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예산을 확정한다. 넉넉잡아 4개월여가 남아 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가 봄-여름 반격에 실패하거나 사소한 성공에 그친다면 미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예산을 거부할 수 있다"며 "F-16 전투기 제공은 반격 작전의 결과와 평화협상이 시작될 것인지 여부에 따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오늘(21, 22일)의 주요뉴스 요약

-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 벨고로드주(州)에서 22일 무장단체들과의 교전이 발생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에 의한 군사작전이라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부인했다. 러시아 반체제 단체 '러시아자유군단(Легион Свободная Россия)'은 자신들이 벌인 일이라며 "이제는 크렘린의 독재를 끝낼 때"이라고 반박했다.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 벨고로드 주지사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의 '사보타주'(파괴공작) 그룹이 '그라이보론' 지역에 침투했다"며 "러시아군과 국경수비대, 연방보안국(FSB)이 적을 섬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포격 등으로 최소 3명이 부상했고, 주거건물 3채와 행정 건물이 손상됐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이번 공격에 전차와 헬리콥터, 대포 등이 동원됐다는 증언과 함께 헬리콥터가 저공 비행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포됐다.

벨고로드주 상공에서 포착된 헬기/영상 캡처

이번 사건은 지난 3월 초 스스로를 '러시아 자원의용군'(Русского добровольческого корпуса, RDK)이라고 부르는 단체가 우크라이나 접경 브랸스크주를 공격한 것과 유사해 보인다. 벨고로드주나 브랸스크주는 인근 쿠르스크주와 함께 우크라이나 국경과 접하고 있어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당하는 곳이다. 지난 3월에는 사건 발생 직후 푸틴 대통령이 지방 방문(일부 언론은 북카프카스 스타브로폴 방문으로 보도) 일정을 전격 취소했으나, 이번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정이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리는 이번 '사보타주'가 바흐무트 함락에 따른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여론을 분산시키기 위한 공작으로 본다"고 말했다.

- 덴마크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제안한 소위 '7월 글로벌 서밋'(평화정상회의)을 주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이사회에 참석한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가 적절한 회의 개최 시기를 찾는다면, 환상적일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21일)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끝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오는 7월 이를 위한 '글로벌 서밋'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작년 12월에도 유사한 형태의 국제적 회의 개최를 제안했지만, 실제 실현되지는 않았다.

-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룰라 다실바(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간의 회동이 불발됐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일정이 늦어지면서 계획했던 회담이 성사되지 못했다"며 "약속이 있어서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정상의 문제로 룰라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나 외교 의전상 큰 결례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6개국(세네갈, 이집트, 콩고, 우간다, 잠비아) 정상들로 구성된 '아프리카 대표단'이 내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양국 지도부와 회담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도 '아프리카 대표단'과의 회동을 수락했으며, 미국·유럽연합(EU)·유엔·중국 등도 이 계획을 승인했다고 AP통신이 22일 전했다. 아프리카 대표단과 러-우크라 지도자 간 회담 주선은 1980년대 후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종식 협상을 중재했던 프랑스 출신의 국제협상가 장 이브 올리비에가 맡고 있다. 그는 이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난 6개월간 노력해왔다. 아프리카 대표단은 러-우크라 방문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이해가 걸려 있는 우크라이나 곡물과 러시아 비료의 수출 제한을 해제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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