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네프로 댐 붕괴) 판이 흔들린다 - 카호프카댐 붕괴가 우크라 전쟁에 미치는 영향?
드네프로 댐 붕괴) 판이 흔들린다 - 카호프카댐 붕괴가 우크라 전쟁에 미치는 영향?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6.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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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최악의 자연 재난이 닥쳐오고 있다. 러시아군이 헤르손주(州)와 자포로제(자포리자)주를 점령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드네프르강이 범람하면서 하류 지역의 생태계에 '재해 비상'이 걸렸다.

드네프르강의 수위를 안정적으로 조절해온 6개의 댐 가운데, 가장 하류 쪽에 있는 카호프카(카호우카) 수력발전소의 댐(이하 카호프카 댐)이 6일 붕괴됐다. 카호프카 댐은 높이 30m, 길이 약 500m, 저수량이 182억㎥에 이르는 다목적댐. 소양강댐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소양호의 6배가 넘는 엄청난 물을 가둬놓고 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무너진 댐을 통해 쏟아지면서 드네프로강 하류 지역 10여개 마을이 침수되고, 주민들의 대피가 잇따랐다. 현지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드네프르강 양안(兩岸)의 접경 마을 35~37개가 침수될 것으로 우려된다.

카호프카 댐의 붕괴로 쏟아진 거센 물살에 집이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영상 캡처
드네프르 강변의 침수 혹은 침수 예상지역/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6일 일일 전황 분석에서 "오늘의 주요 사건은 카호프카 수력 발전소의 파괴"라며 "이번 전쟁에서 가장 큰 인도주의적 재난이자, 인간이 만든 재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드네프르강 양안의 자연과 주민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댐의 유출량은 7일 아침 최고조에 달하고, 주택과 도로, 농경지를 핥은 물은 적어도 열흘이 지나야 흑해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누가 왜 댐을 무너뜨렸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댐의 붕괴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돌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댐 붕괴 소식에 "카호프카 댐을 통제하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막기 위해 고의로 댐을 폭파했다"고 즉각 비난했다.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로의 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러시아군의 헤르손 공격을 막기 위해'(쇼이구 국방장관) 우크라이나가 '사보타주'(비밀 파괴공작)를 저질렀다고 반박했지만, 설득력은 우크라이나 측에 비해 떨어진다.

문제는 댐을 폭파시킨 배후 세력을 규명할 증거 영상이 없다는 점이다. 댐의 중간 부분에서 뭔가 폭발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유포됐지만, 폭발의 원인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댐이 폭파될 경우, 드네프로강 동·서 양안을 나눠 각각 장악하고 있는 러-우크라 측이 똑같이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 득실을 따지기도 쉽지 않다. 군사전략상이나 정치적 동기, 심리적 효과 등을 살피는 게 보다 현실적이다.

카호프카 수력발전소 댐에서 폭발 섬광(위)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 영상의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캡처 

일각에서는 카호프카댐이 그간 누적된 포격 피해를 버티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무너졌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폭발 영상이 올라오면서 일단 쑥 들어갔다. 이날 SNS에는 섬광과 폭발, 댐 파손 상황 등을 담은 영상이 올라왔는데, 우크라이나 당국은 "거짓 정보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당연히 영상의 진위 여부도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은 간단하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네프르강을 건너 러시아 점령지(헤르손주와 자포로제주)를 향해 진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 측이 댐에 지뢰나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국방안보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카호우카수력발전소 댐의 파괴는 그들(러시아군)이 '테러집단'이고, 우리(우크라이나) 땅 구석구석에서 추방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확인시켜줬다"며 "댐의 붕괴가 반격작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호프카 댐은 러시아 측에도 꼭 필요한 수자원이다. '북크림 운하'를 통해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에, '드네프로-크리비리흐 운하'를 통해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러시아 점령지 포함)에 물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측은 지난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자 '북크림 운하'의 물길을 막았다. 지난해 2월 특수 군사작전을 개시한 러시아는 곧바로 북크림 운하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크림반도로 향하는 물길을 텄다. 페스코프 대변인이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로 향하는 물길을 막기 위해 댐을 사보타주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군사작전 개념으로는 러-우크라 어느 쪽이든 다리를 통하지 않고 기계화부대를 드네프르 강 건너편으로 보내는 것은 어렵다. 지난해 가을 러시아군이 전격적으로 드네프르강 동쪽으로 후퇴한 것도, 드네프르 강의 안토노프스키 대교와 카호프카댐 위의 도로가 끊어질 경우, 퇴로가 막히고 고립될 것을 극히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리아나군은 지난해 가을 반격을 앞두고 카호프카 댐 위의 도로를 파괴하기 위해 다연장로켓포(MLRS) 공격을 단행한 바 있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해 가을에도 포격으로 댐을 파괴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했다"며 "현장에서 폭발물 설치하는 것 외에는 댐을 무너뜨릴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가을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드네프르 강을 가로지르는 안토노프스키 대교가 끊어지자(위) 헤르손시 주둔 러시아군이 안토노프스키 대교 아래에 임시 부설한 부교를 통해 철수하고 있다/사진출처:SNS 영상 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각 전선에서 방어전략으로 전환했고, 우크라이나군은 반격 시점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댐의 붕괴는 러시아군의 방어 전략상 이점이 크다는 점에서 러시아측의 우크라이나 사보타주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다만, 러시아측도 드네프로 강을 건너는 우크라이나군의 격퇴를 위해 지난 6개월간 강변에 방어요새를 구축해 왔다. 이 방어 진지들은 댐의 붕괴로 한꺼번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측으로서는 상당한 손실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댐의 폭파를 선택한 이유를 미 블룸버그 통신은 이렇게 분석했다. "댐이 붕괴되면 드네프르 강 하류 지역의 우크라이나군 공격은 아예 불가능하다. 러시아군은 이 지역의 병력과 장비 등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철수한 바흐무트 등으로 돌릴 수가 있다."

이 분석대로라면,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을 코앞에 두고 러시아군이 기존의 판도를 의도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달갑지 않는 전선의 출렁거림이다. 

위성으로 드러난 드네프르 강 동쪽의 러시아군 방어요새(위)와 강변의 방어 진지 시설물. 이 방어요새는 카호프카댐 홍수로 모두 유실됐거나 될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출처:스트라나.ua 

장기적으로 정치적 효과를 노린 측면도 없지 않다. 스트라나.ua는 러시아가 댐 붕괴에 나선 동기의 하나를 우크라이나 전쟁의 위험을 전 세계에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찾았다. 카호프카댐 파괴 다음에는 '자포로제 원전'이라는 무언의 협박이라는 것이다. 이는 협상을 통해 전쟁을 빨리 끝내도록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스트라나.ua는 내다봤다. 

◇ 댐붕괴에 따른 피해는?

카호프카 댐의 물이 하류로 쏟아지면서 이미 상당한 지역이 침수되고 마을 주민들이 대피했다. 알료쉬키 마을 등은 완전히 잠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외신과 SNS에는 주로 우크라이나측 침수 피해 사진과 영상들이 올라오지만, 러시아측도 홍수 비상이 걸린 상태다.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 드네프르강 동안 지역 주민들도 대피를 시작했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카호프카 댐 붕괴로 강변 14개 마을, 주민 2만2천명이 홍수 위험에 처했다고 전했다.

마을 침수와 주민 대피는 앞으로 열흘 정도 지나면 자연적으로 끝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카호프카 댐의 붕괴로 하류지역이 물에 잠긴 모습
침수지역에서 급히 인명구조에 나서고
크림반도로 향하는 국도에 물이 가득찬 모습/영상 캡처
카호프카 수력발전소 댐이 일부 무너져 있는 모습/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농업정책부는 카호프카 댐의 수량이 크게 줄면서 헤르손주 관개시설의 94%, 자포로제주 74%,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 30%가 물부족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범람한 지역은 늪지대로, 우크라이나 풍요로운 대초원은 사막으로 변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수력발전소에서 유출된 윤활유 등 각종 석유제품(기름)과 화학 물질, 쓰레기 등은 드네프르강을 오염시키고, 흑해로 유입되면서 물고기의 떼죽음 등 흑해 생태계가 파괴될 가능성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러-우크라 양측이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강변에 설치한 수많은 지뢰들이 거센 물살에 씻겨 내려가 앞으로 몇년 동안 언제 어디서 나타나 인명을 살상할지 모른다.

카호프카 댐의 물부족이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로제 원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포로제 원전은 냉각수를 이 댐에서 조달한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카호프카 댐이 일부 무너졌다는 보도를 보고 있으며, 아직은 방사능 위험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스트라나.ua는 "댐의 붕괴에 따른 재난은 이번 전쟁이 수십 년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카호프카 댐은 인근에 자포로제 원전과 화학산업 기업, 암모니아 파이프 라인 등이 있어 드네프로강의 다른 댐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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