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외교장관은 최근 벨라루시의 수도 민스크를 찾은 자리에서 "미국의 도청 파문이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협력이 중단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도청을 이유로 미국을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그 대열에서 빠져 있다”고 전했다. 독일·브라질이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유엔 차원의 반(反)도청 결의안에도 21개국이나 참여했지만 러시아는 그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
스노든의 임시 망명 허용으로 얼굴을 붉히기 된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는 일이 화급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원천적으로 러시아는 미국과 같은 입장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 역시 도청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상대를 공략하고 정보를 빼내기 위해 치열한 스파이 공작을 벌였다. 거기에는 도청이 빠질 수 없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을 짓던 시절, KGB의 도청 장치 설치를 막기 위해 인부마저 외국에서 데려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금도 러시아는 도청 같은 스파이 공작을 주요 정보기관을 통해 계속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 러시아는 지난 7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러시아대사관 등 외국 공관들을 상대로 도청을 해온 사실이 폭로됐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미국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경우 그 불똥이 누구보다 먼저 자국으로 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셈이다.
외신은 미국 전직 정보기관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수년 전부터 미국 정부 관리들은 중국과 러시아로 출장 갈 때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놔두고 가도록 지침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그만큼 정보 유출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자칫 도청문제가 자국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과 같은 행태, 미국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천봉쇄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스노든의 임시 망명을 허용한 건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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