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녀를 러시아로 보낸 기러기 아빠의 한
아내와 자녀를 러시아로 보낸 기러기 아빠의 한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01.16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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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에서 펀글입니다. 러시아로 유학보낸 한 기러기 아빠의 한스런 삶을 어렵게 적었네요.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1990년대부터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 아빠'의 길을 선택하는 이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부부가 몇년씩 떨어져 지나다 보면 차츰 멀어지게 마련이고 결국 어느 한쪽이 변심해 가정파탄에 이르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결혼한 ㄱ씨와 ㅇ씨는 아이들이 한창 커가던 94년 중대한 결심을 했다. 예능에 소질을 보이는 아들과 딸을 해외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 부인 ㅇ씨는 그 해 9월 두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로 떠났다.

당초 아내는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아이들이 자리를 잡는대로 귀국하려 했지만 이후 계획은 조금 수정됐다. 아무래도 부모 가운데 한명이라도 아이들 옆에 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남편은 모 은행 지점장직에서 퇴직한 뒤 제조업체 경영에 참여한 상태였고 아내 역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수입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두 집 살림'을 해도 큰 무리는 없겠다는 판단한 것이다. 졸지에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이 외국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듬해 현지에 아파트를 구입해줬다.

가족의 위기는 남편 ㄱ씨의 사업이 삐걱거리면서 시작됐다. 경영진으로 참여한 제조업체가 부도나는 바람에 남편은 투자금도 회수하지 못한 채 1995년 4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곧바로 다른 회사에 임원으로 취업했지만 1997년 말 이 회사마저 부도로 폐업하게 됐다.

'기러기 아빠' 신세로 서울에서 악전고투하던 ㄱ씨는 어려운 와중에도 1998년까지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에게 모두 2억4000여만원의 유학비용을 송금했지만 거기까지였다. IMF 탓에 창업은 고사하고 일자리 하나 얻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해 ㄱ씨가 더이상 유학비용을 보내지 못하자 부인 ㅇ씨는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이때 부인은 남편에게 "더 이상 서울에서 이러지 말고 함께 가족이 있는 외국으로 나가자"고 권유했다. 남편이 국내에서 그나마 남은 재산을 탕진할까 우려해 건넨 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다니던 회사와 민사소송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인의 청을 거절했다. 대신 남아 있던 재산인 아파트를 부인에게 명의이전하고 은행에 맡겨둔 예금 등 1억원도 부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그해 3월 남편에게 "당신을 풀어줄 테니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대로 하라"며 다시 서울을 떠났다. 남편이 다른 여성을 만나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5년 동안에 걸친 '별거'로 남편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가 사라졌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머나먼 외국과 서울에 따로 떨어져서 치열하게 살았다. 부인 ㅇ씨는 남편으로부터 더이상 생활비를 지원받지 못하자 현지에서 하숙을 치거나 관광가이드, 통역 일을 하면서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했다.

남편은 또 남편대로 부인이 다시 외국으로 떠난 이후 형의 집에서 거주하거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운 삶을 이어나갔다. 일정한 직업을 갖지는 못했지만 택시운전이나 대리운전 등을 하면서 딸에게 매달 6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냈다.

이런 가운데 부인 ㅇ씨는 1999년 7월 다시 귀국해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때까지도 자녀들의 공부가 끝나면 부인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이미 전 재산을 넘겨준 상황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혼하자는 부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자 부인은 남편과 상의 없이 자신의 주민등록만 친정으로 옮겨놓은 뒤 다시 서울을 떠났다.

남편은 이듬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는 2003년 6월까지 부인과 재회하려는 어떤 적극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본인의 근황을 알리고 가족과 재회를 희망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수 차례 보냈을 따름이었다. 어쩌면 그가 짊어진 삶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부부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2001년 즈음이었다. 머나먼 외국에서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부인 ㅇ씨가 아들의 지도교수인 현지인과 동거를 시작한 것. 남편은 이 사실을 지난해 말 귀국한 딸을 통해 전해듣고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자 아내 역시 "1998년 이미 사실상 이혼에 합의했고 재산분할도 모두 끝났다"면서 남편의 경제적 무능과 허황된 행동 등을 혼인 파탄의 책임으로 물어 이혼 및 위자료 5000만원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이 부부의 팽팽하던 감정싸움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이강원 부장판사)가 1월 2일 "부부관계 파탄의 원인은 어느 한 쪽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오래 떨어져 있는 사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두 사람이 혼인생활을 회복하려는 별다른 노력없이 별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라며 "두 사람은 이혼하되 그 책임이 서로 대등하므로 부인은 남편에게 재산의 50%인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결국 자녀들에게 좀더 나은 교육을 위해 감행한 '기러기 부모'들의 선택이 자녀 교육보다 더 중요한 가족의 해체를 낳은 셈이다. 재판부는 "부부가 서로 '섬'처럼 떨어져 살아 외로울 때 쉽게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 같다"면서 "기리기 아빠나 엄마의 경우 이런 갈등은 봉합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이혼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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