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에서 본 우리 한국 -문창극 논설주간
이르쿠츠크에서 본 우리 한국 -문창극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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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2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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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이르쿠츠크 시내에는 '경북 의성군교육청'버스가 다니고 '아름다운 제주 한라산 교통'버스도 다닌다. 내가 타고 다니던 버스도 내부에 '금연과 함께 '휴대폰을 끕시다'라는 한글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버스였던 것이 분명하다.

길거리를 달리는 전차에는 '오리온 쵸코 파이'광고가, TV에서는 '이제 우리도 빡빡한 호밀빵 대신에 국물을 먹읍시다'라는 한국 라면 광고가 나온다.

지난해 1억5000만개의 한국 라면이 수출되었고 올해에는 3억개가 목표란다. 러시아인 1명당 2개씩 한국 라면을 먹는 셈이다. 시내 제일 큰 백화점에는 이 나라 보통 근로자 한달 월급으로도 살 수 없는 삼성.LG 휴대전화가 금은보석처럼 전시돼 있다.

*** 한국 제품이 고구려 땅 덮는다면

모스크바는 이보다 더하다. 옥외광고의 60~70%가 한국 상품 광고다. 삼성.LG는 말할 것도 없고 담배.시계까지 한국 광고다. 장쩌민 중국 주석이 1999년 모스크바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며 옆자리에 탄 러시아 의전관에게 물었다.

"어째서 대국인 중국 광고는 하나도 없고 코리아 광고뿐이냐" 이에 의전관은 "중국도 돈만 내면 똑같이 광고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지난주 한.러 수교 110주년 기념 관훈클럽 해외토론회에 참석했던 주 러시아 정태익 대사의 말이다.

바이칼호가 우리 민족의 시원이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있듯 시베리아와 만주대륙은 본래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다. 인근에 자치령을 이루어 살고 있는 몽고족 일파인 브랴트족의 샤머니즘 의식은 우리와 똑같았다. 제사 때 향불 위에 세번 잔을 돌리는 것과 똑같이 마유(馬乳)잔을 세번 돌리고,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하며 먼저 잡신에게 음식을 던지는 것 역시 똑같았다. 우리 조상은 이 대륙을 뒤로 두고 한반도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 문제도 바로 이러한 우리 조상의 발자취 때문에 빚어지는 일들이다.

나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우리 힘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확신도 얻었다. 한반도 좁은 땅에서 우리끼리 아무리 떠들고 비난해도 중국은 눈썹도 까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같이 작은 나라가 무력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우리의 강점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은 경제력이다. 시베리아인들 손에 우리 휴대전화가 쥐어지고, 우리 차를 타고, 그들의 입맛이 우리의 입맛으로 바뀌고 있듯 고구려의 광활했던 영토에 우리 상품이 구석구석 뻗어 간다면 우리는 이미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이다. 고구려 옛 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시베리아 대륙 끝까지, 아니 세계 구석구석으로 우리 영토를 넓히는 것이다. 이것이 고구려사의 왜곡을 우리 힘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고개가 안으로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오그라들었다. 이 좁은 땅에 오글오글 모여 서로만 쳐다본다면 무엇이 나오겠는가. 옆집 숟가락이나 세면서 옆집 사람도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왜 나보다 잘 살고, 왜 우리 아이보다 공부를 잘하느냐는 자질구레한 비교로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붉은띠를 매고 허구한 날 누구 때려잡자는 데모나 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어째서 옆집 사람 꼬투리나 잡으며 일생을 보내려 하는가.

*** 지도자는 뒤가 아니라 앞을 봐야

안만 들여다 보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한다. 고개가 안으로 향해 있는데 어떻게 앞을 볼 수 있겠는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규명이 바로 그렇다. 우리 안의 잘못만 뒤지려는데 앞이 보이겠는가. 과거에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는 나라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 나라를 네편 내편으로 가르지 않고 '우리'로 인식하게 되면 울타리 안의 시시콜콜한 싸움보다는 울타리 밖의 큰 승부만 보이게 된다. 시선이 밖으로 향하게 되면 자연히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앞을 바라보게 된다.

몽고족인 브랴트족 언어에는 '후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오로지 '앞으로'라는 단어 '우락샤'라는 말밖에는 없다. 후퇴할 때도 "돌아서 앞으로"라고 말한다. 몽골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까닭도 바로 이 '우락샤'때문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말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우락샤'다.

문창극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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