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의 러시아 문학기행을 뒤쫒아가 보니^^
교보문고의 러시아 문학기행을 뒤쫒아가 보니^^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3.10.09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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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 러시아 문학기행은 최근 마무리됐다.

교보문고 독자 25명 등으로 구성된 문학 기행 일행은
모스크바에서 고려인 3세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의 강연을 듣고
알렉산드르 푸시킨·안톤 체호프 박물관을 방문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배경지를 견학하고
모스크바 인근에 있는 톨스토이 생가를 방문하는 일정 등으로 진행됐다.

이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뚜렷한 이미지를 남기는 톨스토이가 살았고 묻혀있는 야스나야폴랴냐 방문이 언론에 실렸다.

이 언론에 따르면 기행단은 지난 6일(현지시간) 톨스토이가 태어나 자라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곳.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툴라시 인근의 작은 마을 야스나야폴랴나를 방문했다.

야스나야 폴랴냐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세 시간여를 꼬박 달려가야 도착한다. 넓은 평원을 마음껏 달려가지만, 풍경의 변화가 별로 없어 감흥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 코스다.

그리고 도착한 톨스토이 생가는 높고 긴 은빛 자작나무 행렬이 맞이한다. 그 옆에는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개량했던 100여종의 사과나무 사이로 말들이 순하게 풀을 뜯고 있다.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출신이다. 그래서 19세때 어머니에게 이 땅을 물려받아 60년간 산 터전이다. 현재는 전체 면적이 4㎢로 줄어들었지만 톨스토이가 상속받았을 당시에는 12㎢에 이르렀으며 하인만 330여명을 거느렸다고 한다. 여기서 19세 때 첫 소설 ‘유년시절’을 발표했으며 걸작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등 대부분의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독자들을 안내한 모스크바국립대 김진성(36·러시아 문학 전공) 박사는 “야스나야폴랴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 등이 줄지어 찾은 곳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 불안이 팽배했던 세기 말,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2층짜리 흰 저택에는 유품 4000여점을 그대로 보존돼 있다. 15개 언어를 구사했던 톨스토이가 소장했던 책은 39개 언어 2만 2000여권에 이른다.

2층 응접실에는 러시아 유명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와 일리야 레핀이 각각 그린 45세, 59세 때의 톨스토이 초상화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집필실에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이 쓰여진 책상과 눈이 나빠 182㎝의 장신을 한껏 구부리고 앉았던 작은 의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층 저택을 나와 숲길을 헤치고 가면 사람 하나가 누우면 꼭 맞을 크기의 장방형 봉분이 솟아 있다. 그의 무덤이다. 안내자는 그가 최대한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는 그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어릴 적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의 푸른 지팡이가 이 골짜기에 묻혀 있다'는 큰형의 '지팡이 이야기'에 매료돼 야스나야폴랴나를 떠나지 않았고, 한 간이역에서 죽기 전에 '푸른 지팡이가 묻혀 있다던 그 골짜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농노들을 위해 저택을 팔고, 말년에는 저작권과 재산 소유권까지 사회에 환원하려 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객사’라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82세이던 1910년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간이역의 역참지기 집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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