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예술축제 "졸로타야 마스카가 있어 행복해요"
러 예술축제 "졸로타야 마스카가 있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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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4330@empal.com
  • 승인 2004.05.0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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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로타야 마스카(골든 마스크)가 있어 한 달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지난 12일 모스크바 도심 극장광장에 있는 볼쇼이극장 주변이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성장을 한 노부부에서부터 발랄한 차림의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서둘러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올해로 10년을 맞는 러시아 최대의 무대예술 축제인 골든 마스크 시상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볼쇼이극장은 러시아 발레와 오페라의 본산. 바로 옆에는 정통 러시아 연극의 산실인 말리극장과 극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의 동상, 셰프킨 연극대학이 있다. 인근에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도 있어 이 일대의 극장광장은 러시아 무대예술의 중심이다.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들은 모스크바가 ‘세계 무대예술의 수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모스크바에는 연극과 발레 오페라를 공연하는 93개의 크고 작은 극장이 있다. 여름 휴가철을 제외하고 일년 내내 수백여 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영상 시대가 오면서 무대 예술은 위축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러시아인들의 ‘무대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늘 객석은 꽉 차고 평범한 ‘아줌마’가 발레 ‘지젤’의 스토리를 줄줄 외우는 나라가 러시아다. 사랑하는 만큼 까다로운 안목으로도 유명한 모스크비치들이 해마다 가장 행복한 때는 3, 4월이다. 수준 높은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골든 마스크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격년으로 열리는 체호프 국제연극제도 유명하다. 그러나 골든 마스크는 연극뿐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오페레타 뮤지컬 인형극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의 무대 예술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축제다.

또 체호프 연극제는 해외 유명 작품을 초청하는 축제인 반면 골든 마스크는 순수 러시아 작품의 잔치다. 해마다 러시아 전역의 유명 극장이 저마다의 대표작을 들고 골든 마스크 경쟁 부문에 참가한다. 올해도 10개 도시에서 온 40개 작품이 지난달 27일부터 모스크바 시내의 여러 극장에 올랐다.

장르마다 연기 연출 지휘 안무 무대미술 등에 상이 주어진다. 상금은 없고 축제의 이름처럼 황금가면만 준다. 늘 관심을 모으는 여자연기자상이 올해는 출판 하마토바에게 돌아갔다. 하마토바는 영화 ‘루나 파파’와 ‘굿바이 레닌’에 나와 한국에서도 낯익은 배우다.

‘골든 마스크’ 협회의 게오르기 타라토르킨 총재는 “누가 상을 받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노보시비리스크 등 러시아 각지에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아도 수준이 높은 작품이 많다. 골든 마스크는 이런 ‘숨은 작품’을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골든 마스크를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예술가와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나 공연했던 현대 발레의 거장인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그는 96년과 97년 연거푸 골든 마스크를 받았다. 볼쇼이와 키로프 발레로 대표되는 러시아 클래식 발레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그의 작품 세계는 골든 마스크를 통해 인정받았다.

‘찰리 채플린 이후 최고의 광대’로 불리는 슬라바 폴루닌이 그 유명한 ‘스노 쇼’를 처음 선보인 것도 골든 마스크 무대였다.

올해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서거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골든 마스크 무대에도 ‘바냐 아저씨’와 ‘벚꽃 동산’ 등 체호프의 작품이 많이 올랐다. 그러나 연극부문 작품상은 뜻밖에도 니콜라이 고골의 ‘검찰관’이 차지했다.

무대 위에서 숱한 명대사가 오고가는 골든 마스크 축제 기간 중에는 유행어도 많이 탄생한다. 올해는 “진실도 좋지만 행복은 더 좋다”는 말이 유명해졌다. 아쉬워하며 극장 문을 나서던 공연 애호가들은 내년을 기대하며 다시 행복에 젖는다. 내년에는 골든 마스크가 끝나자마자 5∼7월에 체호프 연극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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