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러시아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펀글=러시아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09.20 0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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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다. 주변 4강 중 맨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 방문의 우리 측 주요 관심사는 정치적으로 동북아 안보에 대한 러시아와의 협력,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야 협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중요한 국가 과제임에는 분명하나, 과연 이 문제를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러시아에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우리 정부 측에 얼마나 잘 돼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북핵 사태 이후 한국에서는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국가로 러시아를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고, 또 지금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애원은 러시아를 방문하는 한국 인사들의 단골 메뉴가 됐을 정도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세번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어떤 수준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또 어느 수준의 대화 채널이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나 한번 해보고 그런 애원을 했으면 한다.

러시아가 북한과 모종의 대화가 있다 한들 우리는 이를 러시아와 공유할 변변한 외교적 라인도 없고, 또 미국의 입김에 춤추는 한국 외교에 대해 근본적인 신뢰감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인 게 러시아 외무부의 입장이라는 점도 우리는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안타깝지만 이게 한.러 관계의 현주소다.

대 러시아 에너지 외교도 마찬가지다. 불안한 중동에 에너지 공급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를 정부는 늘 외치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에너지 공급처가 될 수 있는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 분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초보 수준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극동은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미국.중국.일본의 전쟁터다. 한국은 뒷전에 밀려나 가끔 전황이나 살피는 수준이다. 에너지 분야 중 특히 석유.천연가스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러시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변변한 체계적 연구가 없는 상태니,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해봐야 과실을 기대하기는커녕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그저 어린 꼬마가 대학생에게 매달리며 떼쓰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한국 정부뿐 아니라 우리 국민 사이에 퍼져 있는 러시아를 별볼일 없는 하류 국가로 보는 시각이다. 그저 소련 붕괴 후 생필품이 없어 허덕이는 나라로, 돈이 없어 한국으로 매춘하러 오는 댄서들만 가득한 나라로, 또 국제적 상 관행도 통하지 않아 장사하기도 힘든 그런 나라로만 치부되는 상황이다.

또 한국의 전체 교역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2% 남짓밖에 안 되는데 과연 러시아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10~15년 전 러시아에 대한 기억으로 지금의 러시아를 봐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단순 교역 상대국으로만 보는 것은 더더욱 잘못된 시각이다.

러시아는 우리의 단순한 교역.투자 파트너가 아니다. 러시아는 우리 경제의 장기적 발전에 필수적인 각종 천연자원을 종합세트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말로만 러시아를 자원 강국이라고 하지, 러시아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라인이 거의 없다. 자원의 보고 시베리아에 영사관을 개설해 자료 조사와 라인 형성에 주력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러시아어 속담에 '이성으로는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는 특수성.예외성이 많다. 또한 비록 최근 들어 많이 변하고는 있지만 러시아어를 모르면 활동이 어려운 곳이 바로 러시아다.

때문에 대 러시아 사업에서 작은 결실이라도 보려면 오랜 기간의 지속적인 연구와 인내력,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관심, 기본적 러시아어 구사 능력이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전문가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사람 한명 없이 대부분의 러시아 관련 부서가 돌아가는 현실이다 보니 여기서 전략적 사고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말로만 동북아 시대를 외칠 것이 아니라 러시아 전문가를 요소에 배치해 지속적 연구를 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 정부와 기업은 러시아 정책의 핵심을 읽어야 한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뭘 해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영일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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