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슬란 인질극 이후 푸틴의 대응을 보면
베슬란 인질극 이후 푸틴의 대응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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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0.0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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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오세티야 베슬란의 학교 인질사건이 러시아 치안부대의 돌입과 어린이 350명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지 며칠 뒤 나는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1999년 9월 모스크바 아파트 폭파사건 직후 제2차 체첸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 1년 뒤 푸슈킨 광장의 지하도 폭발사건 직후에도 현장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제단을 두 눈으로 봤다.

모스크바에서 테러는 극장 점거, 지하철 폭발로 악화일로를 걸어 이번 모스크바행 직전에는 공항을 출발한 국내선 여객기 2대의 동시폭발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베슬란 사건은 어떤 사건보다도 훨씬 두려운 것이었다.

모스크바는 긴장하고 있었다.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적으로 추모기간이 선포돼 〈이즈베스티야〉는 “전국이 상복을 입고 있다”고 1면 머릿기사로 전했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신문〉도 “러시아 충격, 눈물, 슬픔”이라고 큰 제목을 달았다. 〈코메르산트〉도 “최초의 장례”로 162명의 장례 모습을 사진들과 함께 보도했다.

이날 시내엔 5시부터 열리는 집회 안내문이 배포됐다. “우리들은 승리한다…모두의 문제다”라는 제목이었다. 국영텔레비전 1채널은 크렘린 부근 광장에서 열린 그 국민집회를 밤 9시부터 오랫동안 보도했다. 10만명이 참가한 집회에는 “푸틴, 우리들은 당신을 지지한다” “모두가 하나가 될 때” 등 관제 구호를 담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엔 모스크바 성당에서 기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방영됐다. 이후 ‘국제 테러리스트 세력’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의 발언이 일반적 인식이 돼, 테러리스트를 돕는 ‘제5열’(간첩)을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3일 연설에서 중요한 제안을 했다. 그는 테러세력이 “나라의 통합을 해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러시아를 해체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 “국가의 단결이 테러에 승리하는 중요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나라를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집행권력의 제도적 통일”이라며 위부터 아래까지 행정집행자의 통일을 위해 사실상의 지방자치단체장 임명제를 제안한 것이다.

〈독립신문〉은 14일 “러시아는 다른 나라가 됐다. 우리들은 선전포고를 당해 전쟁상태에 있다”는 세르게이 미로노프 연방의회(상원) 의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복고”라는 커다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의회도 신문도 모두 대통령 제안을 지지했다. 진보적 신문 한두 개와 야당 야블로코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게 고작이다. 야블로코당은 의회 주변에서 피켓을 들었지만 원내의석이 전혀 없다.

나는 오랜 친구인 아르세니 로긴스키가 이끄는 역사교육단체 ‘메모리얼’을 방문했다. 그는 1970, 80년대의 반체제 단체(이론파) 인사로 브레즈네프 시대에 투옥당한 적이 있다. 87년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에 탄생한 메모리얼은 스탈린의 테러에 희생당한 이들을 조사·기록해 지원하는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쳐온 조직이지만, 한편으로 지금의 체첸사태를 러시아의 인권억압 문제로 일관되게 다뤄왔다.

내 친구는 없었지만 사무국 책임자인 여성이 나에게 책 3권을 건넸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는 인간이 살고 있다-체첸 폭력의 연대기〉다. 이 책은 푸틴 대통령이 제2차 체첸전쟁의 승리를 선언한 뒤인 2000년 7월부터 12월까지 반년 동안 점령하 체첸의 마을에서 러시아 군대에 살해당한 주민 489명에 대한 조사와 증언 기록이다.

브레즈네프의 소련에서 이론파가 체포되거나 문서를 압수당한 사건의 일지가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다. 그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책을 내는 대가는 이전엔 투옥이었지만, 지금은 더 심각하다고 적혀 있다. 푸틴 정권에서 이런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테러가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이 책에는 심각한 폭력행위들이 묘사돼 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군이 저지른 행위를 능가하는 것이다.

제2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군과 싸운 것은 체첸 반군 지도자 샤밀 바샤예프의 군대였다. 그는 이번 베슬란 학교 습격사건을 지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 샤밀은 19세기 전반 47년 동안 계속된 카프카스 전쟁의 체첸쪽 종교군사 지도자의 이름이다. 어린이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명령을 내렸던 바샤예프는 이미 인간의 마음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낸 부대원들은 인간이었다. 죽은 남편·형제·자식의 복수를 위해 자폭테러를 하는 여성을 러시아에선 ‘샤히트카’라고 부르며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번 부대에도 여성이 몇명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죽이라는 지휘관의 명령에 반발했다고 한다.

혼자 살아남은 크라에프는 형과 함께 이번 사건에 참가했는데 모든 것을 진술했다. 그는 지휘관이 저항한 대원 한명을 사살했고 여성대원 2명은 폭살했다고 말했다.

나는 94년 12월12일 〈한겨레〉 칼럼에서 제1차 체첸전쟁은 어떠한 해결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게릴라전과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러시아 지도자는 “체첸 독립을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인과 체첸의 이슬람인들은 함께 살아가야 하고 군사력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푸틴이 가는 길로는 체첸의 수렁에서 러시아를 구할 수 없다. 체첸의 수렁은 러시아의 수렁이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경계를 당부하는 지하철 방송을 들으면서 러시아인들이 체첸인들과 함께,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나는 기원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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