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폭주차량, 이제는 스스로 책임질 때도 됐다
모스크바 폭주차량, 이제는 스스로 책임질 때도 됐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1.05.17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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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의 도로 정체는 악명이 높다. 그 도로에서 중앙차선을 마구 달리는 차량은 경광등을 켠 VIP차량이다. 물론 불법으로 내달리는 차량도 있지만, 경찰측에서는 단속에 머뭇거린다. 그래서 경광등 부착 관용 차량의 횡포에 일반 차량 운전자는 불만이 높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16일 세르게이 쇼이구 비상사태부 장관이 도로에서 길을 비키지 않는 일반 차량 운전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횡포를 부린 자신의 관용차 운전기사를 해고했다고 보도했다.

1994년부터 17년째 각종 재난 사고 수습을 담당하는 비상사태부 수장을 맡아오고 있는 쇼이구 장관은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높아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꼽히는 고위 관료다. 비상사태를 담당하다보니 그의 관용차량은 거의 늘 중앙차선을 달리기 마련이다. 운전기사도 거기에 익숙해있다.

그러나 사고가 생겼다. 주말이었던 지난 14일 차량 혼잡이 심한 모스크바 외곽 순환도로(MKAD)에서 도로가 막히자 자신이 몰던 메르세데스 벤츠 관용차의 경광등을 켜고 앞 차에 옆으로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에도 앞차 운전자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외부용 마이크를 켜고 성난 목소리로 "머리통을 총으로 날려버리겠다 X신"이라며 막말을 했다.

사소한 다툼으로 그쳤을 이 사건은 길을 양보하지 않고 버티던 차량 운전자가 모든 광경을 동영상 카메라로 찍어 유투브에 올리면서 사회 문제로 번졌다. 차량 번호를 통해 문제의 관용차가 쇼이구 장관의 것임을 확인한 네티즌들이 일제히 비난 글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사태부는 수습에 나섰으나 이미 늦었다. 결국 기사를 해고한 것이다.

이 사건은 경광등을 켜고 도로를 질주하는 VIP차량에 대한 일반 운전자들의 불만을 보여준다. 그 분노에 직면한 쇼이구 장관이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VIP차량 운전사가 도로에서 불법적 행동을 한 데 대해 처벌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모스크바 당국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공식적으로 경광등을 부착한 차량은 약 900대 정도. 대부분 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용한다. 이들 차량은 급한 공무가 있을 때 경광등을 켜고 소방차나 응급차 등과 마찬가지로 다른 차량의 양보를 받아 신속히 도로를 주행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피아 등 고급차량 소유주들이 불법으로 경광등을 달고 도로를 폭주한다. 동영상을 찍은 운전자도 문제의 차량을 진짜 장관 차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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