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 사는 기업 주재원들은 한결같이 기후는 변하지 않았지만, 소비환경이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는 시베리아 상권을 중국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이 잡는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바닥상권은 이미 중국인들에게 넘어간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스크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쇼핑몰 등 하이퍼마켓은 서방 자본이다. 이 쇼핑몰이 그간의 쇼핑 문화를 바꾸고 있는데, 변화의 큰 흐름이다. 특히 시내 곳곳에 들어서는 자동차 딜러숍, 고급 의류상점, 미용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등은 도심의 모습마저 바꾸고 있다.

이금하 KOTRA 노보시비르스크 관장은 한 언론 기고에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평범한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이런 소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패스트 푸드점인 카를로스주니어의 가장 저렴한 햄버거 세트가 169루블(6800원)이다. 현지인 3~4명과 맥주 한잔하며 저녁이라도 먹으면 한국 돈으로 20만원은 쉽게 들어간다. 이런 식당도 금요일 저녁에 예약 없이 방문하면 퇴짜 맞기 십상"이라고 전한다.

또 길거리에서 케밥과 비슷한 샤우루마 1개는 100루블(4000원)이니 러시아의 평균 임금이 약 2만1500루블(86만원)이라는 점에서 보면 무지하게 비싸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평균급여는 약 1만8600루블(75만원)이라니 어떻게 먹고 살지 궁금하게 한다.

물론 공식 통계만 따질 건 아니다. 노동자들은 개인소득세 감면을 위해 실급여보다 적게 신고하고, 지하경제로 버는 소득 또한 상당하다. 공식통계보다 소득은 30~50% 더 높은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또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가구당 소득은 평균 임금의 2배 플러스 알파로 봐야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백만원에 달하는 스마트 TV, 태블릿 PC 등을 어떻게 거리낌없이 구입하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날씨가 추운 만큼 한겨울에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전기, 난방 등 기본적인 아파트 관리비가 약 3000~5000루블(12만~20만원) 정도 든다. 여러 생활비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인은 어떻게 과소비가 가능할까? 우선 러시아인은 저축 없이 대부분의 소득을 지출한다. 2010년 기준 러시아 전체 인구의 14.6%만이 소액이라도 저축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월급을 소비에 쓰는 것이다. 특히 과거의 경험으로 은행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그래서 집안에 현금을 보관하거나 자동차, 부동산 등 추후 현금화가 가능한 물건 구입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인플레가 심하던 1990년 후반부터 현금보다 물건을, 또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는 환율이 높아지자 자동차 구입에 적극 나섰던 것은 현명한 소비행태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없었던 대출 문화의 활성화도 소비 문화의 또 다른 요인이다. 각종 생활 안정 등을 명목으로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주택에 이르기까지 은행 대출을 통한 구입이 활발하다. 근무 경력과 급여에 따라 이자율은 연 14~40% 수준으로 높은 편이지만 2010년 기준 러시아 전체 인구의 43.28%가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