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들어서다(9) 쉬꼴라에 입학하다
러시아에 들어서다(9) 쉬꼴라에 입학하다
  • Kossia
  • sysop@buyrussia21.com
  • 승인 2013.10.27 20:55
  • 댓글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에서는 9월이면 각 학교의 학기가 시작된다. 아이들을 입학시키려고 학교를 알아보았다. 대학 부근에 김나지야(гимназия)라는 쉬꼴라 (школа )가 있었다. 학교 이름으로 미루어보아 원래 체조학교였다가 시간이 지나며 학교의 성격이 바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인터내셔널 쉬꼴라로 불리고 있었다.

그곳은 외국인 영어 선생님과 외국인 학생들이 조금 다니고 있는 듯하였다. 우리 아이들도 그곳에 입학을 시켜보려고 찾아갔지만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다. 한국교수님들의 자제들은 편입을 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우리는 출신성분 미달인지 기부금을 챙기지 않아서 그런지 입학이 되지를 않았다.

사서 뛰어든 타국의 거친 필드이기에 상황을 만들고 비켜가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상황에 정면 돌파하며 맞바람을 맞기로 다짐을 한 터였다. 방법은 쉽게 있었다. 우리 사는 아파트 5분 거리에 바로 학교가 있었다. 그곳에서 입학은 순조롭게 허락되었다. 둘 다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2학년, 3학년 막 올라가던 차에 러시아행을 하게 된 것이다. 학년을 찾아 편입을 안 하고 1학년 신입생으로 입학하게 되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이 되었다. 편입한 다른 한국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말을 더 빨리 배워 나가기 시작하였다. 처음 알파벳부터 배워나가니 쓰기 읽기와 발음에서부터 탄탄하게 기초를 쌓아나갔다. 학과에도 흥미를 붙이고 러시아 친구들도 잘 사귀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조금 지나자 러시아말로 토닥거리며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제한된 어휘였지만 유창한 대화를 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 지나니 자연 아이들은 나의 통역자가 되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러시아 생활 6년을 마칠 즈음에는 까레이스키 교포아이들로 여겨지고 있었다.

쉬꼴라의 입학식은 축제를 방불케 하였다. 의례에 따른 예식보다는 춤과 노래가 이어졌고 아이들의 표정도 잔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거의 새 옷을 입고 남아들은 특별히 양복 차림이 많았다. 아이들을 입학시키니 뿌듯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한국의 초등학교는 지역명을 많이 써서 불려지지만 러시아의 쉬꼴라는 번호로 불려지는게 특이하였다. 5번 쉬꼴라, 이런 식으로 불려지는데 그 어감에서 오는 뉘앙스가 꼭 어떤 원시 부족사회를 연상시켰다. 큰 돈 안들이고 알뜰하게 아이들도 제3세계를 경험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곳 학교도 입학금과 학비 같은 것은 없었다. 아이 둘은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다. 책은 학교에서 중고로 받은 기억이 난다.

쉬꼴라를 입학시키며 아이들을 오후에 진행되는 음악학교에 입학시켜 보려 하였지만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러시아에는 예능학교들이 따로 독립되어 있어 일반학교의 정규 수업 시간 외에 운영이 되고 있었다. 음악학교 교장은 1년을 개인레슨을 받으면 그 후 입학을 시켜준다고 하였다. 큰 아이는 트럼펫을 배우고 작은 아이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큰 아이 선생님은 트럼본을 전공하신 선생님이었는데 음악학교 지하실에서 바이올린 및 여러 악기 수리를 수리하고 있었다. 작은 아이 선생님은 한국교포 선생님이었고 이름은‘라리사’라고 하였다. 그 선생님은 바로 옆에 있는 음악 우칠리쉬(училище)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블라디보스톡 음악대학에서 쟈오치니(일년에 한 번씩 두 달 정도)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레슨비는 한국 대비 많이 쌌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실속있는 것들을 얻고 싶었다.

우칠리쉬에는 교포 교수님 미하일(오oo)이라는 음악과 학과장이 계셨다. 이 분과 친분을 많이 갖게 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얻고 교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 개인교습 1년 후 음악학교 입학은 특별한 이유 없이 허락이 되지를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진희 2013-10-29 05:10:19
제가 기억하기로 90년대 후반 김나지야는 당시 사립학교, 혹은 분야별 특수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영어특별학교, 물리특별학교..이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의 영재나 성과가 없으면 입학이 안되었던 것같아요. 물론 학비는 공짜가 아니었구요.

아이들은 말을 빨리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쉬콜라에서 6년간 수학했으면 아이들은 거의 교포아이로 기억될만하네요. 개인적으로 아이들은 1년반 정도면 또래 아이들 단어는 거의 배우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정도면 전화기를 들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학교 숙제를 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든 쉽든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음악을 배울 생각을 했다니 정말 괜찮은 생각같습니다. 전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주재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사이에 러시아어라도 완벽하게 해서 돌아가자는 생각에..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선생님들과는 그렇게 교류를 못했고, 아이들은 깊게 교류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 혼자서 모스크바 여행을 가, 한달씩 체류하다고 오기도 했지만..

직업상 모스크바에서 교포분들과 어울릴 일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아마 그런 격동기가 아니었으면 교포분과 어울릴 시간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문하영 2013-12-04 11:27:03
어느지역 학교였는지 궁금하네요!
저희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톡 위에 잇는 호롤로 이민가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 학교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진희 2013-10-29 05:10:19
제가 기억하기로 90년대 후반 김나지야는 당시 사립학교, 혹은 분야별 특수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영어특별학교, 물리특별학교..이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의 영재나 성과가 없으면 입학이 안되었던 것같아요. 물론 학비는 공짜가 아니었구요.

아이들은 말을 빨리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쉬콜라에서 6년간 수학했으면 아이들은 거의 교포아이로 기억될만하네요. 개인적으로 아이들은 1년반 정도면 또래 아이들 단어는 거의 배우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정도면 전화기를 들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학교 숙제를 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든 쉽든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음악을 배울 생각을 했다니 정말 괜찮은 생각같습니다. 전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주재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사이에 러시아어라도 완벽하게 해서 돌아가자는 생각에..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선생님들과는 그렇게 교류를 못했고, 아이들은 깊게 교류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 혼자서 모스크바 여행을 가, 한달씩 체류하다고 오기도 했지만..

직업상 모스크바에서 교포분들과 어울릴 일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아마 그런 격동기가 아니었으면 교포분과 어울릴 시간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문하영 2013-12-04 11:27:03
어느지역 학교였는지 궁금하네요!
저희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톡 위에 잇는 호롤로 이민가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 학교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진희 2013-10-29 05:10:19
제가 기억하기로 90년대 후반 김나지야는 당시 사립학교, 혹은 분야별 특수학교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영어특별학교, 물리특별학교..이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그 분야의 영재나 성과가 없으면 입학이 안되었던 것같아요. 물론 학비는 공짜가 아니었구요.

아이들은 말을 빨리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쉬콜라에서 6년간 수학했으면 아이들은 거의 교포아이로 기억될만하네요. 개인적으로 아이들은 1년반 정도면 또래 아이들 단어는 거의 배우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정도면 전화기를 들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학교 숙제를 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든 쉽든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겁니다.

러시아에서 음악을 배울 생각을 했다니 정말 괜찮은 생각같습니다. 전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저는 주재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사이에 러시아어라도 완벽하게 해서 돌아가자는 생각에..많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선생님들과는 그렇게 교류를 못했고, 아이들은 깊게 교류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 혼자서 모스크바 여행을 가, 한달씩 체류하다고 오기도 했지만..

직업상 모스크바에서 교포분들과 어울릴 일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아마 그런 격동기가 아니었으면 교포분과 어울릴 시간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