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으로 3년간 지은 러 대사관 난감?-주간조선
행정수도 이전으로 3년간 지은 러 대사관 난감?-주간조선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07.1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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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일본 대사관은 요즘 신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를 빠짐없이 본국 정부에 보고하고 있다.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수도 이전이 이뤄지고 청와대 등 주요 기관이 옮겨가게 되면 우리도 (이전을) 검토해야 할지 모른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아직 대사관 내부에서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고 본국에 상황만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화통화 도중 “다른 나라 대사관들은 어떻게 한다고 하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주한 미 대사관도 수도 이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수도 이전 최종 방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간다, 아니다고 얘기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청와대나 외교통상부가 이전한다고 하면 우리도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수도 이전 문제는 서울의 외교가에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도가 이전돼 정부 기관들이 옮겨갈 경우 각국 공관들도 이전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국 공관들로서는 이전이 만만치 않은 문제다. 기존의 공관 신축이나 이전 계획 등이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보안이나 비용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외교 관계가 오래된 각국 공관들은 건물 자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도 적지 않다.

수도 이전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은 미국 대사관이다. 덕수궁 터(구 경기여고) 내 대사관 신축이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대체 부지 제공 문제가 한ㆍ미 간 현안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다시 수도 이전이라는 변수까지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부 대사관 관계자들은 수도를 옮기겠다는 한국 정부가 서울 용산에 미 대사관 신축 부지를 제공하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말도 한다.

한ㆍ미 양국은 지난 5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 8차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 회의에서 용산기지 내 캠프 코이너에 대사관을 신축하는 문제를 놓고 첫 공식 협상을 벌인 바 있다. 당시 덕수궁터(9800평)보다 훨씬 넓은 2만여평 정도의 부지를 우리가 제공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했었다.

하지만 수도 이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이 방안의 실효성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용산기지에 미 대사관을 지을 경우, 착공 시기가 향후 7~8년 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2012년부터 정부 기관의 입주가 예정된 신 행정수도에 새 대사관을 짓는 게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 대사관 측은 최근 우리 정부에 ‘대사관을 신축하는 게 바람직한지, 아니면 수도가 이전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은지’를 물어온 것으로 알려졌고 내부적으로 ‘수도가 실제로 이전된다면 서울 용산에 대사관을 지어서 어떻게 하겠느냐’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공식적으론 경기여고 터의 대체 부지를 어디로 지정해줄 것인지 한국 정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며 “용산 기지의 대체부지 방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대사관 뿐 아니라 ‘하비브 하우스’로 불리는 서울 정동의 대사관저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주목거리다. 조선왕실이 외국에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인 대사관저는 1884년 한국에 온 최초의 미국 외교관인 푸트(Lucius Foote) 공사가 개인 돈 2200달러를 들여 매입했다가 자국 정부에 되판 건물로, 미국 정부가 애정을 쏟은 건물이다.

일제식민통치와 6ㆍ25 전쟁을 겪으면서도 고유한 조선의 건물 형태를 유지해온 하비브 하우스는 1960년대부터 붕괴 위험이 있어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대사관의 건의가 수차례 본국 정부에 전해졌지만 ‘한국의 유적지’라는 이유로 해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3년 건물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살리는 조건으로 재건축을 지시했다.

이 공사를 담당한 하비브 대사는 당시 남대문을 복원한 신영훈씨와 인간문화재인 이광규씨 등 한옥 건축가를 초빙해 전통 건축양식을 되살리면서도 현대 건축 기술을 접목시킨 지금의 하비브 하우스를 완성시켰다.

중국 대사관도 수도 이전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 대사관은 2001년 명동 대사관터(3000평)에 25층과 11층짜리 대사관 건물 2개를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금은 대사관 신축 계획을 연기해 놓은 상태.

명동의 중국 대사관 자리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군의 주둔지였던 곳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만 대사관이 들어섰다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 대사관으로 바뀌었다. 대사관 건물이 낡은 데다 한·중 교류가 폭증하면서 중국 대사관 측은 건물을 현대화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올해 말까지 신축 건물을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행정수도 이전 등과 맞물리면서 계획이 중단된 상태다. 중국 대사관은 공사를 위해 2002년 5월부터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4층 건물을 임시 대사관으로 쓰고 있다.

중국 대사관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 수도이전 계획을 명확히 한 만큼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며 “아직 대사관 이전과 관련해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명동 대사관 공사가 중단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며 행정수도 이전과 직접 연결시키지 말아 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동의 러시아 대사관도 수도 이전이 실제 추진되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2002년 정동 옛 배제고 터에 들어선 러시아 대사관은 건립 당시부터 주목을 받은 건물. 1896년 고종과 태자가 파천(播遷)했던 아관(러시아 공사관) 자리에서 100여m 떨어진 이 건물은 한국과 러시아 간의 6년여 줄다리기 협상 끝에 탄생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에 시가 3000억원짜리 배재고 터와 현금 200억원을 얹어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끝냈고, 러시아는 새 부지에 장장 3년에 걸쳐 마치 성(城) 같은 4동짜리 대사관 건물을 신축했다.

러시아는 이 대사관 건물을 지을 때 철통 보안으로 화제를 뿌렸다. 삼성물산이 이 건물의 뼈대와 골조 공사를 담당했는데 본국에서 온 보안 요원이 모든 건축 자재를 검사할 뿐 아니라 시멘트 버무리는 것까지 옆에서 감시할 정도였다. 당시 “건축 자재에 도청 장치를 설치할지 모르는 미국 CIA를 의식한 일종의 정보전”이라는 말도 나왔다.

러시아 대사관 건물은 정성을 들여 지은만큼 ‘기능’이 대단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내부 전파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한 일종의 ‘철갑’ 시설을 두른 것으로 알려졌고 기존의 대(對) 아시아 정보전의 거점 공관이었던 도쿄 대사관을 대신해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정보 기관 관계자들의 말이다.

러시아로서는 이처럼 중요한 건물을 용도폐기하고 다른 건물로 옮겨간다는 것이 난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어떻게 할지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 대사관도 예상외로 빨리 추진되는 수도 이전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역시 한국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오래 걸리는데 한국은 참 빨리 결정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검토해야 된다”고 말했다. 1965년 수교시 제공받은 종로 중학동의 건물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일본 대사관은 3년 전 내부 수리를 끝내고 단장을 새로 한 상태. 일본 대사관으로서는 문화원 신축 문제도 고민거리다. 한 관계자는 “대사관과 떨어져 있는 문화원은 건물 자체가 너무 오래돼 신축 계획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며 “하지만 어떻게 할지 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사관 부지를 옮겨 문화원과 합쳐진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는 것은 비용 문제 때문에 본국에서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대사관은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도 포기하기 아까운 건물이다. 대지만 3000여평에 달하는 성북동 대사관저는 내부에 50여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딸린 대형 저택이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은 “주요 행사 때마다 요긴하게 쓰이는 이같은 대형 저택을 다른 데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한다.

성북동에는 일본 대사관저 외에도 20여개의 대사관저가 몰려 있다. 서울 도심에서 가깝고 전망과 환경이 좋아 1970년대부터 하나씩 대사관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독일 대사관저(1만2100여평)로 독일은 1970년대 초 가장 먼저 땅을 구입해 관저를 건립했고 그 뒤를 일본, 호주 등이 이었다. 이곳에 있는 20여개의 대사관저 중 절반은 소유, 절반은 임대 형식이다.

만약 서울이 옮겨가게 되면 각국의 고급 대사관저들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또 성북동과 함께 대표적인 외교 타운으로 평가받는 한남동에서도 줄줄이 대사관저가 매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신 행정수도 추진과 관련해 외교 공관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아직 딱 부러진 입장이 없다. 신 행정수도 추진 자체가 유동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신 행정수도 건설 추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외국 공관들의 이전은 신 행정수도가 탄생한다고 해도 우리 정부가 강요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정부 기관이 모두 옮겨가면 외국 공관들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겠느냐”며 “신 행정수도에 대대적인 외교단지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개인 의견이긴 하지만 획일적인 외교단지를 조성해 놓고 모두 이곳으로 옮기라고 하면 자율과 개성을 중시하는 유럽식 사고방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대사관 수는 모두 98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중 80여개가 서울 종로구 세종로와 신문로 등 광화문 일대에 몰려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외교부, 주요 언론사 등 한국의 ‘심장부’ 역할을 하는 곳과 가까이 있어야 업무상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만약 정부기관들이 신 행정수도로 이전해갈 경우 광화문 일대의 외교 타운이 공동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자체 대사관 부지를 갖고 있는 미ㆍ중ㆍ일ㆍ러 등 수교 역사가 오랜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대사관들은 빌딩에 임대 형식으로 들어서 있다.

특히 세종로 교보빌딩 내에는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해 7개 대사관이 들어서 있다. 이런 빌딩 임대형 대사관들은 자체 부지를 갖고 있는 나라들보다 수도 이전에 따른 고민이 적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임대료가 너무 비싼 서울 시내보다는 신 행정수도의 임대료가 쌀 것이 아니냐”며 은근히 이전을 기대하는 말도 한다.

지난 6월 현재 외교통상부에 주한 외교단 소속으로 등록한 각국 인사는 외교관 700여명, 행정ㆍ기능직 직원 400여명으로 모두 1100여명 정도. 이들에게 딸린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2800여명이 외교 사절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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