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우크라이나의 백신 확보 고민, 중국산 백신이 유일한 희망?
깊어가는 우크라이나의 백신 확보 고민, 중국산 백신이 유일한 희망?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09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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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백신의 도입에 부정적인 젤렌스키 행정부에 친러 의원들 총공세
총리와 의회 보건 상임위원장의 '백신 밀수' 스캔들 터져, 도덕성 치명타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구입)전쟁'에서 소외된 국가들은 서럽다. 백신 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한 예상 피해보다 백신 접종에 따른 이득이 더 크다면 서둘러 백신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데, 국내외 여건이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그 중의 하나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8일부터 24일까지 2주간 더욱 강화된 '사회적 격리두기' 조치, 즉 '록다운'(локдаун)에 들어갔다. 국내 언론 표현으로는 셧다운, 즉 봉쇄 조치다.

우크라이나, 2주간 엄격한 격리조치 돌입/얀덱스 캡처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연말 거리 풍경/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이번 '록다운'은 지난달 초에 일찌감치 결정됐다. 봉쇄 조치를 아예 새해 연휴 뒤에 붙여 시행함으로써 민생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거세지는 코로나 감염의 확산을 막으려면, 지난해 12월 초부터 당장 시작되어야 했으나, 연말은 소위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가장 높은 시기여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조치로 지난해 봄 지하철까지 운행을 중단한 '완전 봉쇄조치'에 이어 두번째로 식료품과 약국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이미 나이트클럽 등 유흥시설과 호스텔과 같은 밀집 숙박시설 등이 폐쇄된 상태에서, 아파트 주변 카페와 헬스장, 대학교 등이 추가로 영업을 중단하는 것이다. 레스토랑도 영업시간이 단축됐고, 야간에는 포장및 배달만 가능하다.

그나마 지난해 봄에 내려졌던 '록다운'과 비교하면 많이 완화된 편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는 물론, 식료품과 약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고, 각급 학교는 온라인 교육으로 전환됐으며, 국내외 항공편이 완전히 끊기고, 수도 키예프에서는 지하철마저 운항을 중단했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록다운'의 다음 조치는 코로나 백신의 접종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백신 확보 전쟁'에 나라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나서야 할 판에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백신 도입을 놓고 안팎으로 혼란만 가중되는 상황이다. 

우선 유력한 정치 지도자들의 '백신 접종' 스캔들이 터졌다. 총리와 의회 담당 상임위원장 등이 해외로부터 비밀리에 화이자 백신을 들여와 접종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 코로나 백신 밀수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 지시/얀덱스 캡처
백신 밀수 스캔들을 터뜨린 우크라이나 온라인 매체 '옵저버'/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6일 '백신 밀수' 스캔들에 대한 사실 확인을 수사 당국에 지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누군가가 정말로 비밀리에 백신 수입 관련법을 위반해 개인적으로 접종을 받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러시아 백신의 구매 여부를 놓고 친 러시아-반 러시아 세력간에 갈등이 첨예한 판에 고위급 인사들의 '백신 스캔들'은 젤렌스키 행정부에게는 큰 악재가 될 게 분명하다.

'화이자 백신의 밀수'를 폭로한 이는 우크라이나 유력 인터넷 매체 '오보즈레바텔'(옵저버라는 뜻, www.obozrevatel.com)의 미하일 브로드스키 편집장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아직 승인되지 않은 화이자 백신을 비밀리에 들여와 개인적으로 접종한 고위 인사들이 있다"며 데니스 쉬미갈 총리와 미하일 라두츠키 의회 보건상임위 위원장을 지목했다.

폭로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은 전세기에 실려 키예프 공항에 도착한 뒤 별도의 통관및 검역 조치없이 개인 수화물로 들여왔다고 한다. 비용은 2천500 유로(약 334만원)이 소요됐다. 

언론 폭로에 두 사람은 "말도 안되는 가짜뉴스"라며 펄펄 뛰고 있다. 브로드스키 편집장은 두 사람을 향해 "항체 검사를 받고, 항체 형성이 확인되면, 즉각 사임하라"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위로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화이자 백신/ 출처:각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 보건당국은 일부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백신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늦어도 2월까지는 백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지만, 화이자나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구입이 쉽지 않는 상황이다. 궁여지책으로 중국의 시노백과 백신 180만 도스(1회 접종분) 구매 계약을 체결한 뒤 서방 제약사들과도 구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의 구매 여부다. 중국산 백신마저 구매해야 하는 판에 '스푸트니크V'를 정책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게 친러 세력의 주장이다. 

우크라이나의 백신 구매를 전담하는 국영기업 '우크라이나 의료구매' 대표 아르센 쥬마딜로프는 지난 3일 "러시아 백신을 주문할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며 '스푸트니크 V'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 싸고 효율적이며 믿을 수 있는 백신들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스푸트니크V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된 '벡터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존슨 제약사에도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보건부,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등록 배제/얀덱스 캡처
우크라이나 제약사 '비올릭', 보건부에 러시아 백신의 등록 신청/얀덱스 캡처

이에 의회내 친러 세력은 대형 제약사 '비올렉'이 보건부에 '스푸트니크V' 백신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검증 후 승인을 촉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보건부 측은 승인 신청 접수 사실은 확인하면서도 "아직 3단계 임상 3상이 끝나지 않은 백신을 승인할 수 없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에 관한 한 정치 안보적 판단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친러 의원들은 "미국에 아부하려는 짓"이라고 비판하며 "구소련의 백신 개발 능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승인된 백신 가운데 3상 시험을 제대로 끝낸 백신은 아직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백신 확보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서방측 백신의 구매가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고위급 인사들의 도덕성 논란에 러시아 백신의 구입에 관한 친러와 반러 세력간의 갈등까지 증폭되면, 이를 지켜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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