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문화유물, 작품이 한국서 한국 독자를 만난다
톨스토이의 문화유물, 작품이 한국서 한국 독자를 만난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12.0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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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문화유산이 한국 문학도들을 만난다. 오는 10일부터 2005년 3월27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서출판 인디북과 서울역사박물관 주최로 열리는 ‘살아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 톨스토이展’을 통해서다. 인간 영혼의 정점을 탐험한 작가이자 인류의 교사(교육자)였으며, 위대한 사상가이자 행동하는 실천가가 살아 생전에 그가 남긴 작품과 유품으로 부활(復活)해 한국을 찾는 셈이다.

톨스토이는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마당에서 가장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며 한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인류에게 엄청난 마음의 땅(문화유산)을 남겼다.

사실주의 문학의 백미이자 전쟁문학의 최고 걸작인 ‘전쟁과 평화’(1864∼1869)를 비롯해 ‘안나 카레니나’(1875∼1877), ‘부활’(1889∼1899), ‘인생독본’ 등 톨스토이가 남긴 100여권에 이르는 문학작품들은 그 방대한 양 뿐만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너무나 풍요로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전시회를 앞두고 미리 공개된 전시 목록에는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일리야 레핀의 회화 6점이 포함돼 있어 19세기 러시아의 문학·예술·교육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세계 최초로 러시아 톨스토이박물관에서 공수되어온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의 친필원고는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단순히 거장의 작품을 친필로 만난다는 차원을 넘어 그의 고매한 정신세계와 접속함으로써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전시회에는 에디슨이 톨스토이에게 선물한 축음기를 비롯해, 그의 생애가 담긴 기록사진, 육성 녹음테이프, 톨스토이 작품 러시아어 초판본, 초상화, 관련 유화, 스케치 등 총 600여점의 유물이 선보인다. 전시는 인간 톨스토이, 작가 톨스토이, 톨스토이와 친구들, 교육자 톨스토이, 사상가 톨스토이 등 5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인생 최대의 화두를 남긴 톨스토이의 삶과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도서출판 인디북 손상목 대표(40)는 “이번 전시는 톨스토이를 중심으로 보여지는 19세기 러시아 문화와 더불어 당대의 러시아 최고 화가인 레핀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러시아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실 톨스토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다. 20세기 초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폈을 때는 물론, 5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 현재까지도 그의 작품은 폭넓게 한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디북에서 펴낸 ‘톨스토이 단편선1,2’는 벌써 200만부의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말하자면 시공을 초월해 정신적 목마름을 갈구해온 독자들에게 지식과 지혜의 단비를 내려주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는 1935년 ‘조광’ 창간호에 실은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통해 “톨스토이는 예술가였으나 그것이 그의 본령은 아니었다. 그는 사회와 인생의 비평가였으나 그것이 그의 본령은 아니었다. 그는 인류의 모든 불행이 악에서 오는 것을 믿어 이 악을 분쇄하여 지상에 인류의 이상향을 세우는 것으로 본령을 삼았다”고 말했다.

그렇다. 톨스토이는 세상의 위선과 타락, 형식에 얽매인 종교와 국가를 철저히 거부했다. 1901년 러시아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을 만큼 형식에 얽매인 ‘국가’ 그리스도교와 ‘교회’ 그리스도교의 위선과 타락을 비판한 뒤 그는 ‘원시’ 그리스도교를 제창하면서 산상설교를 중심으로 한 자기완성의 고행을 계속해 나갔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여든 두 살 때 톨스토이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가정의 품을 떠나 진리와 생활의 대조화를 향한 유랑의 길에 올랐다. 해마다 200만섬을 수확할 수 있는 농지를 세습 받았던 제정러시아의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부처럼 간소한 무소유의 삶을 살기로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 몰래 집을 떠난 며칠 뒤 톨스토이는 한 시골역에서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철저하게 ‘인류를 위해’, ‘인류와 함께’, ‘인류의 안’에서 살려고 한 거장의 몸부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 같은 톨스토이의 삶에 대해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가 남긴 산문은 영원(永遠)의 깊이에서 우러나와 자연(自然)처럼 나이도 없이 모든 시대를 산다”고 평했고, 작가 막심 고리키는 “톨스토이는 그의 이름 ‘레프’ 그대로 사자(獅子)의 삶을 살면서 용감했으나 완고했고, 야성적이었으나 어린아이 같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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