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연해주 고려인 리포트'(김재영 지음/ 한얼미디어/1만2천원)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연해주 고려인 리포트'(김재영 지음/ 한얼미디어/1만2천원)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5.02.11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구든 돌아갈 고향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국적자로 살고 있는 1만여명의 고려인들은 찾아갈 고향이 없다.

연해주 노보네즈너에 사는 허니나 씨는 러시아인이 쏜 총에 아들 을 잃었다.

단지 수박 모종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마을에 사는 왈레라 씨의 스물세살 꽃다운 딸은 러시아 청년들에게 윤간 을 당하고 정신을 놓았다.

하지만 러시아 땅에서 우즈베키스탄 국 적을 갖고 있는 이들에겐 호소할 곳이 없었다.

벌건 대낮에 아들 이 죽고,딸이 윤간을 당해도 보상은커녕 숨 죽이며 살아야 했다.

3대가 함께 사는 로냐 가족은 한 사람이 외출을 하면 모두들 그를 기다렸다가 다음 사람이 외출을 한다.

러시아인들이 모두 다 쓰 고 다니는 샤프카라는 털모자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온몸과 머리에 바람이 들어 골병이 들 정도로 지독한 러시아의 겨울 바람 을 막아줄 모자가 없어 온 가족의 발이 묶였다.

'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연해주 고려인 리포트'(김재영 지음/ 한얼미디어/1만2천원)는 연해주에서 고려인 돕기 자원봉사를 하는 김재영 박정인 부부가 4년 동안 이들과 부대끼며 써내려 간 일지 다.

그런데 읽어내려 가기가 참 괴롭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시 베리아 찬 바람을 맨 몸으로 견디고 있는 고려인들의 이야기가 도 무지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글쓰는 이와 진실과 의 슬픈 간극에 어찌할 줄 모른다.

'아,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 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했거나,먹고 살게 없어 차가운 동토의 땅으 로 내몰렸거나,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겐 그래도 조국이 있었다 . 그런데 이들에겐 돌아갈 조국이 없다.

그게 문제다.

이들은 세 상에서 버림받은 슬픈 유랑자들이다.

세상은 이들에게만 유독 가혹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연해주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됐다 싶었던 1937년 9월,고려인들을 중앙아 시아로 이주시키라는 스탈린의 명령서가 고려인들을 나락으로 몰 아넣었다.

냉동창고 같은 화물열차에 구겨지듯 18만여명의 고려인 들이 실렸다.

준비해 온 식량은 2~3일치에 불과했다.

매서운 삭풍 속을 기차는 쉬지 않고 꼬박 40일 넘게 달렸다.

굶어죽고,홍역과 이름 모를 전염병으로 죽고. 아이들 10명 중 6명이 목숨을 잃었 다.

어두운 밤 잠깐 멈춘 이름 모를 땅에 맨손으로 아이들을 묻었 다.

죽음의 열차는 6천㎞를 달리고서야 멈췄다.

그 40일간 수만명 의 고려인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들이 내 린 곳은 소금 투성이 황무지. 맨손으로 땅굴을 파 그해 겨울을 났 다.

수십년간 고려인들은 그 불모의 땅을 일구며 일벌레로 살았다 . 옛 소련 전역의 노력영웅 1천200여명 중 고려인이 750명이란 수 치는 그들의 흘렸던 피와 땀의 증거다.

그런데. 1991년 옛소련의 붕괴는 또다시 고려인의 눈물을 요구했 다.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살아났다.

중앙아시아 독립국가들은 자 신들의 언어와 종교를 부활시킨 대신 러시아어 사용 자체를 금지 시켰다.

그 땅에서 고려인으로 살아남긴 어려웠다.

부모들이 죽음 의 길로 떠났던 그 땅을 되밟아 6천㎞나 되는 먼 길을 다시 돌아 가야 했다.

그렇게 연해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수도는 물론 난방 조차 되지 않는 군용막사에서,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아파도 병원 한번 가 보지 못하고 다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 고 있다.

그 질긴 유랑을 끝내지 못한 허니나,왈레라,로냐 가족이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서 서럽게 삶의 끄트머리를 잡고 버티고 있다.

중앙아시아 불모의 땅에 버려졌던 한 소년은 스탈린에게 보낸 탄 원서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원하신다면 우리를 죽여 주십시오 . 우리에게는 잘살 것이란 실낱 같은 희망도 없습니다.

' 내일 모 래면 설인데,이들도 설을 맞을 텐데,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

이 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