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겨울 모스크바에선
92년 겨울 모스크바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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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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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애가 마치 이 숭고한 입맞춤과 같은 것이기를 바래요. 가장 아름다운 입맞춤은 자연과 아이들,산책일 것이고,가장 힘든 입맞춤은 일이나 사회 생활이겠죠. 연인들 사이의 언쟁들도 이 입맞춤과 같은 형상일 거예요. 만약 이 입맞춤이 충만함과 영원한 결핍을 함께 포용할 수 있다면,모든 것을 얻는 것이 아닐까요?

-크리스티앙 보뱅(1951∼)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에서

세상 끝의 입맞춤을 본 적이 있다. 눈 덮인 2월의 하늘밑,모스크바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푸시킨 공원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입을 맞추고 있었다. 1분,2분…5분. 아마도 입맞춤은 5분을 족히 넘겼을 것이다. 양 팔로 서로의 어깨를 감싼 채 그들은 서로에게 열중해 있을 뿐 남이 보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따금 비둘기 몇 마리가 벤치 등걸로 날아들어 이들의 입맞춤을 멀뚱멀뚱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노부부가 입술을 뗀 것은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갯짓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잠시 입술을 뗀 채 외투 주머니를 뒤져 종이에 싸온 흘레브(흑빵) 조각을 잘게 부순 뒤 벤치 옆의 마른 땅에 뿌려주었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떼는 순식간에 날아들어 빵 조각을 쪼아댔고 할아버지의 입술은 다시 할머니에게 포개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겨울에 목격한 장면이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연인들끼리 나누는 에로틱한 입맞춤의 불꽃과는 달리 이들의 입맞춤에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흘러갈 것 같은 어떤 숭고함이 숨어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연금생활자들은 빈궁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흘레브 몇 조각으로 가난한 아침 식사를 한 뒤 식탁에 떨어진 빵가루를 손바닥으로 훑어 창틀에 뿌려놓곤 했다.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 비둘기를 불러모으던 러시아 노인들의 눈동자는 유난히 물기가 많았다.

기온이 급강하한 겨울날,거리를 걷다보면 모이를 찾지 못해 동사한 비둘기의 사체가 자주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비둘기 동사체를 지나치면서 “골루비보다 못한 고르비”라며 혀를 찼다. 러시아어 ‘골루비’(비둘기)는 고르바초프의 애칭인 ‘고르비’와 발음이 비슷하기에 이들이 퍼부은 야유는 “비둘기만도 못한 고르바초프”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 무렵 검은색 차량이 질주하는 모스크바의 중앙통에는 각목 두 개를 가로댄 나무 십자가 하나가 서 있었다. KGB 전신인 비밀경찰 ‘체카’를 창설한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서있던 그곳에서는 한달 가량 촛불 시위가 열렸다. 소련의 진정한 해체는 1991년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끌어내려져 땅바닥에 산산조각남으로써 완료되었다는 역사적 평가가 있었을 만큼 제르진스키는 악명 높은 적색 테러의 총지휘자였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철의 장막에 가둔 원흉이었던 제르진스키와 위대한 슬라브의 혼을 자본주의에 팔아치우고도 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고르비를 모두 증오했다.

노부부가 남은 생을 의탁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도,자본주의도 혹은 암석에 새겨넣은 레닌의 두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의 시대를 통과해 살아남았다는 실감이었다. 입술의 점막과 점막 사이에서 터지는 살아있음의 실감. 이것이 환갑이 훨씬 넘은 노부부가 입술이 부르트도록 입을 맞춘 이유였다.

펌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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