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는 러 순양함 바랴크함 선원 추모 정교회 사원 건립?
인천에는 러 순양함 바랴크함 선원 추모 정교회 사원 건립?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13.11.11 05:36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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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는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함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한 정교회 사원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추모 공간 조성 계획이 가시화된 데는 최근 인천시가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송도분교를 설립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우호 교류사업이 급진전한 것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연안부두에 러시아 정교회 사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바랴크함은 지난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이다 자폭해 수병 49명이 숨져, 러시아 애국심의 상징이 됐다.

인천시는 당시 일본군에게 빼앗겼던 바랴크함의 깃발을 보관하고 있다가 한-러수교 20주년이 되던 지난 2010년 러시아에 장기 대여 방식으로 대여했다. 앞서 지난 2004년 중구 연안부두에 바랴크함 선원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건립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러시아 측의 요구로 인천역 인근의 옛 러시아 영사관 부지 또는 연안부두 친수공원에 위치한 러시아 수몰병 추모비 인근 부지에 사원을 건립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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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2013-11-25 05:28:12
바랴크 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항에서 수장된 러시아 군함이다.

러시아 역사서 기술한 당시 상황을 되돌려보자.

1904년 2월 9일 목제 전함인 카레예츠는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리고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급전을 받은 루드네프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바랴크가 급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45분간 일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박살난 병사의 몸 조각이 포신에 널렸다.

일본군은 항복을 요구했지만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거부하고 급히 제물포항으로 방향을 돌렸다. 처절한 모습에 인근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선원들이 눈물의 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쫓기던 루드네프 함장은 ‘바랴크는 수장, 카레예츠와 숭가리(인근에 있던 러시아 상선)는 자폭’을 결정했다.

러시아 역사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명예를 위해 나가 싸운 애국 정신”이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와 소련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랴크호의 역사를 가르쳤고 현대 러시아도 이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랴크 호 기념 노래도 8개나 된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행진곡풍의 바랴크 노래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

이진희 2013-11-25 05:28:12
바랴크 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항에서 수장된 러시아 군함이다.

러시아 역사서 기술한 당시 상황을 되돌려보자.

1904년 2월 9일 목제 전함인 카레예츠는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리고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급전을 받은 루드네프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바랴크가 급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45분간 일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박살난 병사의 몸 조각이 포신에 널렸다.

일본군은 항복을 요구했지만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거부하고 급히 제물포항으로 방향을 돌렸다. 처절한 모습에 인근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선원들이 눈물의 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쫓기던 루드네프 함장은 ‘바랴크는 수장, 카레예츠와 숭가리(인근에 있던 러시아 상선)는 자폭’을 결정했다.

러시아 역사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명예를 위해 나가 싸운 애국 정신”이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와 소련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랴크호의 역사를 가르쳤고 현대 러시아도 이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랴크 호 기념 노래도 8개나 된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행진곡풍의 바랴크 노래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

이진희 2013-11-25 05:28:12
바랴크 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항에서 수장된 러시아 군함이다.

러시아 역사서 기술한 당시 상황을 되돌려보자.

1904년 2월 9일 목제 전함인 카레예츠는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리고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급전을 받은 루드네프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바랴크가 급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45분간 일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박살난 병사의 몸 조각이 포신에 널렸다.

일본군은 항복을 요구했지만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거부하고 급히 제물포항으로 방향을 돌렸다. 처절한 모습에 인근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선원들이 눈물의 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쫓기던 루드네프 함장은 ‘바랴크는 수장, 카레예츠와 숭가리(인근에 있던 러시아 상선)는 자폭’을 결정했다.

러시아 역사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명예를 위해 나가 싸운 애국 정신”이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와 소련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랴크호의 역사를 가르쳤고 현대 러시아도 이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랴크 호 기념 노래도 8개나 된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행진곡풍의 바랴크 노래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

이진희 2013-11-25 05:28:12
바랴크 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항에서 수장된 러시아 군함이다.

러시아 역사서 기술한 당시 상황을 되돌려보자.

1904년 2월 9일 목제 전함인 카레예츠는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리고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급전을 받은 루드네프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바랴크가 급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45분간 일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박살난 병사의 몸 조각이 포신에 널렸다.

일본군은 항복을 요구했지만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거부하고 급히 제물포항으로 방향을 돌렸다. 처절한 모습에 인근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선원들이 눈물의 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쫓기던 루드네프 함장은 ‘바랴크는 수장, 카레예츠와 숭가리(인근에 있던 러시아 상선)는 자폭’을 결정했다.

러시아 역사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명예를 위해 나가 싸운 애국 정신”이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와 소련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랴크호의 역사를 가르쳤고 현대 러시아도 이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랴크 호 기념 노래도 8개나 된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행진곡풍의 바랴크 노래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

이진희 2013-11-25 05:28:12
바랴크 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제물포항에서 수장된 러시아 군함이다.

러시아 역사서 기술한 당시 상황을 되돌려보자.

1904년 2월 9일 목제 전함인 카레예츠는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리고 월미도와 팔미도 사이에서 일본군 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급전을 받은 루드네프 함장이 지휘하는 순양함 바랴크가 급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역시 45분간 일본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박살난 병사의 몸 조각이 포신에 널렸다.

일본군은 항복을 요구했지만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거부하고 급히 제물포항으로 방향을 돌렸다. 처절한 모습에 인근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선원들이 눈물의 경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쫓기던 루드네프 함장은 ‘바랴크는 수장, 카레예츠와 숭가리(인근에 있던 러시아 상선)는 자폭’을 결정했다.

러시아 역사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명예를 위해 나가 싸운 애국 정신”이라고 기술한다. 그래서 제정 러시아와 소련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바랴크호의 역사를 가르쳤고 현대 러시아도 이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랴크 호 기념 노래도 8개나 된다.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행진곡풍의 바랴크 노래가 초등학교때부터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