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를 '러시아어 문화권' '러시아 인구 정책' 차원에서 풀어보니
우크라이나 사태를 '러시아어 문화권' '러시아 인구 정책' 차원에서 풀어보니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4.11.08 0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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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승인을 받으려면 땅과 인구, 정통성을 지닌 정부가 필요하다. 땅이 크고 인구가 많을 수록 강대국 대우를 받는다. 역사적으로 볼때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려면 원래 인구가 많든가, 땅을 넓혀가면서 지속적으로 인구를 편입시켜 필요한 곳에 자국민 혹은 같은 문화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 흐름이 쇠퇴하면 그 제국이나 문화권이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도, 중세 유럽 역사에서는 흑사병 유행으로 인구의 3분의1이 희생되면서 봉건제도가 무너졌다는 분석이 정설이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했을 때도 천연두 등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 급감하면서 아즈텍제국과 잉카제국 등이 한순간에 쇠락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강경대응이 친 러시아 성향에서 친 서방(유럽연합)성향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과정에서 불거진 현상이지만, 이를 인구 문제 차원에서 풀이한 시도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독립하고 친 서방으로 달려나가면 소위 '러시아어 권'이 그만큼 줄어들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구 소련권, 즉 CIS 영역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러시아만 보면 세계 9위의 인구 대국으로, 막대한 영토와 핵무기, 천연자원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인적 자원의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소련시절과 비교하면 인구가 크게 준 상태다. 그나마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일부 CIS국가가 '러시아어권'에 편입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인구 감소 흐름을 상쇄해주었지만, 우크라이나가 친 서방에 편입되면 그만큼 인구가 줄어든다. 그래서 친 러시아권에 남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흡수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구 소련 해체 후 겪었던 인구 감소세가 이민자 증가와 사망률 감소 등으로 멈춘 상태지만 출산율이 1.7명으로 기존인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준보다 20%나 낮아 한세대 후에는 인구가 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인구 감소를 늦추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남북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인구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국가의 경제력이나 국력이 최소 1억명 수준에 이르러야 주변국가들로부터 괄시를 받지 않는다. 수출강국이 우리나라의 인구가 1억명 수준에 이르면, 대외 무역 환경이 나빠지더라도 내수 시장으로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5천만명이 안된다면 '수출이 막히면 나라가 망하는' 서글픈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FTA협정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반대로 그렇게 거세도, 정부가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이 된 상태, 즉 인구가 8천만명, 9천만명에 이른다면 FTA를 그렇게 강력하게 추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 로마제국도 강력한 인구정책을 편 것으로 평가된다. 지중해를 둘러싸고 도너츠 형태로 2400㎞를 달린 국경선을 지킬 수 있는 힘의 근원이 인구에 있다는 것을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시저에 이어 즉위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독신풍조가 유행할 조짐을 보이자 기원전 18년에 '정식혼인에 관한 율리우스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내용은 단순했다. 25~60세의 남자와 20~50세의 여자가 결혼하지 않으면 세금을 물렸다. 이른바 독신세다. 독신세는 여성의 경우 결혼만으로 면제해주지도 않았다. 아이를 3명 낳아야 납세 의무를 면제해줬다. 아이를 3명 이상 낳은 여성에게는 남성과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줬다.

자녀를 낳지 않는 독신자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준 이 제도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 인구와 국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를 보면, 아우구스투스는 8명의 자식과 35명의 손자, 18명의 증손자를 둔 평범한 집안의 노인을 로마로 초대해 극진히 대접하기도 했다. 일종의 '출산 캠페인'이다.

그럼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인구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로마의 인구가 급감하던 이 시기를 몰락의 시초로 보는 전문가가 적잖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인구 급감이 로마의 쇠망을 불러온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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