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이 겪어야 했던 숱한 루블화 악몽들..
러시아인이 겪어야 했던 숱한 루블화 악몽들..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4.11.10 0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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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에게 악몽은 구 소련의 붕괴가 아니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권좌에 오른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1992년 새해 벽두부터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계획적인 경제로 물가도 고정되어 있고, 돈(루블화)의 가치에 일반 사람들이 신경조차 쓰지도 않았다. 그것보다는 좋은 휴양지에 예약을 하고, 좋은 물건을 공급 받을 수 있는 할당을 받을 수 있는 '인맥' 혹은 '백'이 중요했다.

국가에서 무상으로 배급해주는 먹거리가 있었고, 집이나 다른 소모품에 들어가는 ‘돈’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외국인들도 집세만 냈지 상수도 요금, 전화요금, 가스요금 등을 내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비라는 건 개념조차 없었다. 오븐이나 전기장판 등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겨울에는 전기 히터라든지 난로 등을 맘껏 사용했으나 전기세 한푼 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시장경제 도입으로 ‘돈’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달러당 루블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다양했지만, 여하튼 매일같이 환전소의 환율이 달라지는 게 봐야했다. 일반 사람들도 이제는 ‘달러’를 보유하며 언제 달러를 루블화를 바꿔 생활비로 쓸까 고민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루블 아래 단위인 ‘카페이카’는 아무 쓸모도 없어졌다. 하루만 늦게 ‘달러’를 ‘루불’로 환전하게 되면 얼마라도 차액을 볼 수 있었다. 이때의 어려움은 그래도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1993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사용하던 화폐를 며칠 내에 새로운 화폐로 바꾸라고 했다. 장롱속에 들어가 있는 루블화를 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어쩌면 2단계 시장경제였는지 모르겠다. 러시아 사람들은 여기 저기 숨겨놓았던 루블을 찾아내 시장으로 나갔다. 러시아 사람들은 거친 욕을 내뱉으며 상점마다 줄을 섰고 이 상점 저 상점을 기웃거리며 물건을 샀으나, 다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악몽은 그렇게 시작됐다. 

기자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1995년~1998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나마 안정된 시기였으나 루블화의 변동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났고, 결정적으로 1998년 1월 1일부터 1000루불이 1루불로 바뀐다(평가절하)는 뉴스가 나왔다. 이 때는 한국도 IMF 위기 상황이라, 루블화의 평가절상이 갖는 의미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보내온 체제비를 달러로 바꾸면, 어떤 때는 평소의 3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에겐 루블화 평가절하는 '악몽 중의 악몽' 이었다. 그동안 은밀히 ‘달러’를 모아온 사람들은 큰 충격이 없었으나, 오히려 이득을 보았는데, 은행에 ‘루불’로 저금을 해 놓은 사람이면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푸틴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지금의 안정궤도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루블화의 가치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러시아도 고액권이 필요한 상황이 도래했다. 우리가 5만원권 지폐를 발행했듯이 러시아도 2006년에 5000루불 짜리 지폐를 선보였다. 이 지폐 한 장이 당시 가격으로 200달러를 넘었다. 미국 등 서방에서도 100달러짜리면 큰돈인데, 러시아에는 200달러짜리 지폐가 나왔으니..우리의 5만원권은 50달러에도 못미친다. 

이런 화폐개혁은 러시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적응하게 하고, 또 충격을 주고, 이겨나가게 하고...이런 과정을 숱하게 거쳐온 러시아 사람들이 요즘의 루블화 불안정및 경제위기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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