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참모본부는 군을 관할하는 최고기구였다. 대통령이 국방부령과 참모본부령에 각각 서명할 정도로 지위를 유지해왔다. 이렇게 막강한 합동참모본부를 97년부터 이끌어 온 크바슈닌 총참모장은, 첫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잦은 마찰을 빚어왔다. 이바노프는 KGB(현 FSB·연방보안국) 출신이자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막강한 인물이다. 이바노프는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참모본부 구조조정안을 내밀어 크바슈닌 총참모장을 궁지로 내몰았다.
지난달 의회는 푸틴 대통령의 의도대로 참모본부의 작전 지휘권과 예산권을 국방부로 이관하고, 전략기획과 분석 기능만 유지토록 하는 국방개혁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참모본부 기능을 약화시켰다. 크바슈닌은 자신에 대한 이 같은 조치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제출했다.
크렘린궁은 크바슈닌 교체를 비롯한 일련의 인사가 지난 6월 21일 발생한 체첸 반군의 잉구셰티아 침략으로 98명의 군·민간인이 살해된 데 대한 문책성이라고 하고 있지만, 군부에서는 정부의 군부 장악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FSB 조직개편으로 정보기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면서 군 최고권력자인 총참모장을 해임한 것은 장기적으로 군이 정보기관 산하로 대부분 예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 군은 내무부·국방부·FSB 소속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크렘린궁에 충성하는 군부 세력들은 크바슈닌 총참모장이 불합리한 군 구조조정을 주도했다며 해임을 환영하고 있어 군부 내 갈등도 예상된다. 이번 크바슈닌의 사임은 푸틴의 군부 완전 장악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푸틴의 후계자로 지목돼온 이바노프 국방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모스크바=정병선특파원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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