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은 우리가 잘 아는 백학의 나라?
체첸은 우리가 잘 아는 백학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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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26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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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병상 런던특파원] "가끔 생각하지/피로 물든 들녘서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이/고향땅에 눕지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그날이 오면 백학들과 무리지어/회청색 하늘을 날아가리/대지에 남겨진 그들 모두를/소리내어 부르며…"

1995년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제음악 '백학(白鶴)'의 가사다. 구슬프고 장중한 노래는 드라마가 관철했던 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과 잘 어울려 가슴 깊이 울렸다. 러시아 가수가 불러 러시아 민요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은 러시아와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인 체첸의 오래된 음유시다.

체첸은 늘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전사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온 민족이다. 경상북도만한 터전이 지정학적으로 요로이기 때문이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카프카스 지역은 동유럽-시베리아와 소아시아-아라비아가 만나는 골목길이다. 페르시아-셀주크튀르크-몽골-오스만튀르크로 이어지는 제국이 이어가며 지배했다. 마지막 지배자가 1722년 첫 발을 들여놓은 러시아다.

체첸 민족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대신 종교를 중심으로 뭉쳐왔다. 10세기 이래 받아들여온 이슬람이다. 명상과 독송을 통한 영적 체험을 추구하며 금욕과 희생을 강조하는 신비주의 수피즘을 받아들였다. 형제 간의 우애와 집단의 자존심을 중시하고 성자와 전사를 숭배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백학이 되어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성자와 같은 전사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정교회 국가인 제정 러시아가 체첸을 정복하는 데 137년이 걸렸다. 이후 체첸은 틈만 나면 독립을 선언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 독립을 선언했다가 붉은 군대에 짓밟혔다. 사회주의권 몰락의 와중인 91년 다른 공화국과 함께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군이 몰려 왔다. 석유가 묻혀 있는 땅인 데다 카스피해 석유를 수출하는 파이프가 통과하는 지역인 까닭이다. 94년 이래 두 차례 전쟁으로 120만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으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체첸 입장에선 282년째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셈이다.

24일 밤 러시아 상공에서 두 편의 민간 항공기가 동시에 추락하자 체첸으로 의심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선 제2의 9.11이다. 후폭풍이 예상된다. 모든 희생자들이 백학이 되어 날아갈 수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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