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 갈리고, 충돌위기까지 간 우크라의 숙명
동서로 갈리고, 충돌위기까지 간 우크라의 숙명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11.26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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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지닌 지정학적 의미와 그 역사를 제대로 파악한 글이 있습니다. 중앙일보 오병상 런던특파원이 쓴 글인데, 우리와 비슷하게 동서 지역색을 지닌 우크라의 숙명적 존재를 한번 보시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접점이다. 한반도의 세 배 정도 되는 국토가 동서로 길게 누워 있는 한가운데를 드네프르강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대체로 그 서쪽은 유럽, 동쪽은 러시아로 볼 수 있다.

비옥한 검은 땅이 끝없이 펼쳐진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복잡한 역사를 겪어야 했다.

이곳에 슬라브족이 9세기경 처음으로 세운 나라가 키예프 공국이다. 10세기 말 블라디미르 대왕이 기독교와 함께 비잔틴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번창했다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패망했다.

몽골이 물러간 이후 드네프르강 동쪽은 줄곧 러시아 땅이었으나 서쪽은 폴란드-오스트리아-폴란드를 거쳐 1922년 러시아에 통합되기까지 동유럽의 일부였다. 그래서 같은 우크라이나인 가운데서도 서쪽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말을 쓰는 데 반해 동쪽 사람들은 러시아 말을 많이 쓴다.

소련의 강권통치하에서는 이런 차이가 드러날 틈이 없었다. 그러나 91년 동구권 붕괴 과정에서 독립하면서 두 지역의 차이가 표면화됐다. 지난주 대통령 선거는 극명한 결과다. 서쪽 출신 야당 후보 유셴코는 친서방, 동쪽 출신 여당 후보 야누코비치는 친러시아 후보다. 여당 후보의 고향에서 96% 투표율이란 기록이 나오고, 야당 감시원이 투표장에서 쫓겨나는 등 부정 혐의가 농후하다. 선거결과도 최악이다. 서방 기관의 출구조사 결과 야당 후보가 11% 앞선 것으로 나왔는데, 우크라이나 선관위는 여당 후보가 3% 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야당 후보가 불복종 선언을 할 만하다. 영하의 날씨에 수만명이 수도 키예프로 몰려들고 있다.

설상가상 서방세계와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개입, 선거가 동서 진영의 대리전이 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선거결과를 못 믿겠다"고 비난하고, 러시아는 "승복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미 동유럽 국가 대부분을 포함해 발트 3국까지 EU에 가입시킨 서방세계가 마지막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마저 품에 안으려 하는 형국이다. 포위당한다는 위기감에 러시아도 완강하다. 이데올로기가 퇴색했다지만 동서 냉전의 시대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듯한 모습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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