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판으로 변한 중앙아 미-러시아 힘겨루기
체스판으로 변한 중앙아 미-러시아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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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7.1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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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판도가 변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세력 약화를 틈타 이 지역에 대한 군사력 진출을 강화했던 미국이 서서히 밀려나고 러시아가 예전의 힘을 회복하는 양상이다. 중앙아시아와 붙어 있는 거대 중국은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 새롭게 발을 들여놓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강대국의 힘겨루기다.

◆ 돌아오는 러시아=러시아 연방의회(상원)는 13일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 주둔 중인 러시아 공군기지(칸트기지)의 지위와 주둔 조건에 관한 협정을 비준했다.

2003년 양국 정부가 체결한 협정에 마지막 도장을 찍은 것이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세력 소탕을 위해 키르기스스탄에 공군기지(마나스 기지)를 설치했다. 이에 맞설 목적으로 2003년 10월 러시아가 개설한 것이 '칸트기지'다. 러시아는 이후 인프라 구축 작업을 계속해 지금은 기지가 거의 완성단계다. 러시아 상원의 비준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가게 됐다.

현재 칸트기지에는 러시아제 전투기 및 수송기 20여 대와 약 500명의 병력이 배치돼 있다. 블라디미르 미하일로프 러시아 공군 참모총장은 "앞으로 칸트기지 주둔 러시아 병력을 최소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0월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도 지상군 기지를 신설했다. 수도 두샨베 인근에 주둔 중이던 201 기계화 보병사단을 확대개편했다. 미국은 그동안 타지크 정부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며 러시아에 기지 건설을 허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타지크 정부가 러시아 쪽으로 기운 셈이다.

◆ 밀려나는 미국=키르기스스탄 내 마나스 공군기지가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키르기스 대통령 직무대행은 11일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되자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변한 만큼 미군 기지 철수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바키예프 당선자는 앞서 5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도 중앙아시아 주둔 미군의 철수시한 확정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 채택을 강력히 제안했었다.

우즈베키스탄도 자국 내 하나바드 미 공군기지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우즈베크 외무부는 7일 "하나바드기지는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 제거작전 기간에만 미군에 내준 것으로 이후 기지 사용에 대한 협정은 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즈베크 정부는 하나바드 주둔 공군기들에 대해 야간비행을 금지하고 비행 횟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중앙아 국가들의 기지 철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군은 하나바드기지의 일부 수색기와 수송기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와 키르기스 마나스기지로 이동 배치하고 있다.

◆ 끼어드는 중국=중앙아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가만있을 수 없다.

중국 외교부의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7일 "아프가니스탄의 정세가 안정됐다"며 "반테러를 목적으로 이 지역에 주둔했던 군대가 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겨냥한 발언이다.

중국은 SCO 정상회담에서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편을 들어 미군 철수를 외친 바 있다. 또 중국은 키르기스스탄이 SCO 회원국에 대해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움직임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존중하되 여차하면 중국군도 중앙아에 진출하겠다는 의도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군사지도가 변하는 것일까?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혼란에서 벗어나면서 서서히 영향력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러시아는 '앞마당'인 중앙아시아 깊숙이 미국이 세력을 뻗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이 지역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왔다. 전략적 중요성에다 에너지 자원까지 풍부해 냉전종식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아 국가 지도자들은 미국의 경제 지원에 대한 기대로 미군 주둔을 허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소련권 국가들의 시민혁명을 배후에서 지원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지도자들이 미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립국가연합(CIS) 연구소의 안드레이 그로진 소장은 "미국 정부가 중앙아 국가들의 민주화운동 지원 정책을 노골화한 것이 이 지역의 반미 정서를 야기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정치적 안정과 경제 발전에 힘입어 소련 국가들과의 관계 정비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또 권위주의 정권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즈베크.카자흐.타지크 등의 지도자들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중앙아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중앙아 권위주의 정권이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에 기울기 마련이다. 군사력 판도 변화는 이 같은 국제적 역학관계의 반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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