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여왕' 자리를 뺏어간 러시아 피겨 신성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김연아의 '여왕' 자리를 뺏어간 러시아 피겨 신성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01.2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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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피겨선수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18)가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세웠던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최고점 기록을 7년 만에 경신했다. 물론 점수 배점 체계가 달리 절대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기록 경신은 경신이다.

외신에 따르면 메드베데바는 28일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유럽 피겨스케이팅선수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50.79점(기술점수 75.86점·예술점수 74.93점)을 받아, 전날 기록한 쇼트프로그램(78.92점) 점수를 합쳐 총점 229.71점으로 우승했다. 이 점수는 김연아가 작성한 여자싱글 역대 최고점인 228.56점(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을 1.15점 뛰어넘은 기록이다. 2위는 러시아 안나 프롤리나(211.39점)가 차지했고, 3위는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210.52점)가 올랐다.

국제빙상 피겨계는 '바야흐로 메드베데바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되돌아보면 2009년부터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는 김연아가 여자 싱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가 빙판을 떠난 뒤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됐다.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연아의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가 우승했고 2015년에는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20, 러시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메드베데바가 돋보이기 시작하더니, 새해부터 독주 채비를 갖춰가는 느낌이다. 그녀는 이번 선수권대회서 첫 과제인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뛰며 기본점수 9.60점에 수행점수(GOE) 1.40점을 챙겼다. 

두 번째 점프과제인 트리플 러츠에서는 어텐션(에지 사용 주의) 판정을 받았으나 플라잉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과 스텝 시퀀스를 최고 레벨인 레벨 4로 수행한 뒤 5개의 점프 과제를 모두 가산 점수 구간 대에 배치했다. 그녀는 트리플 루프, 트리플 플립,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트리플 살코-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클린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점프 과제에서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를 콤비네이션 점프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오히려 그녀는 트리플 토루프를 덤으로 한 번 더 뛰었다. 콤비네이션 점프에 같은 점프를 두 번 구성할 수 없다는 기준에 따라 점수를 받지 못했으나 그녀의 기량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는 평이다. 
이와관련, 그녀는 마지막 점프 연기에서 같은 점프를 두 번 뛴 이유에 관해 “평범하게 이번 연기를 마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나은 점프로 마무리하고 싶었다”라며 웃었다.

메드베데바는 201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두각을 나타낸 뒤 2014~2015 시즌 주니어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리고 시니어 무대에 데뷔해 그랑프리 파이널과 유럽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 메드베데바의 독주는 한층 견고해졌다. 2개의 그랑프리 대회와 파이널에서 우승했고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메드베데바의 '점수 고공 행진'은 치밀한 전략에 기반을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녀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점프 대부분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점프를 프로그램 시작 후 1분 20초 이후에 뛰면 가산점(GOE)이 10% 더 붙는다. 그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메드베데바는 플라잉 카멜 스핀과 스텝 시퀀스를 한 다음 첫 점프에 들어간다. 이런 방식은 러시아 선수들이 많이 시도했다. 

프리스케이팅은 메드베데바 코치진의 치밀성을 엿볼 수 있다. 메드베데바는 프리스케이팅 점프 7가지 요소 가운데 3+3 콤비네이션 점프를 2개나 뛴다. 이번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3+3 점프를 프리스케이팅에서 2번 뛴 이는 메드베데바밖에 없다. 이렇게 후반부에 뛴 점프 5가지 요소로 받은 가산점이 무려 5.55점이다. 트리플 플립의 기초 점수가 5.3점이다. 트리플 플립을 하나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다. 

메드베데바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실수를 하지 않는 편에 속한다. 콤비네이션 점프를 뛸 때 첫 점프가 조금 흔들리며 위기가 와도 이를 슬기롭게 이겨 낸다. 프로그램 클린 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 위기 관리 능력도 뛰어나다. 여기에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는 러시아에서 나온 점도 그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물론 메드베데바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기초 점수 6점인 트리플 러츠를 제대로 뛰지 못한다는 점이다. 점프 에지가 러츠도 플립도 아닌 애매모호한 점프를 '플러츠'라고 한다. 메드베데바가 뛰는 점프는 정확한 러츠가 아닌 플러츠에 가깝다. 트리플 러츠는 여러모로 중요한 점프다. 그는 트리플 플립과 루프로 이를 극복하고 있지만 러츠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메드베데바가 오는 3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메드베데바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의 유력한 우승 후보다. 현재 157cm인 메드베데바는 중요한 성장기도 무사히 넘겼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가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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