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장관이 유엔총장이 되려면 러시아의 지원도...
반 장관이 유엔총장이 되려면 러시아의 지원도...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6.05.20 0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에서 파리 특파원을 역임한 주섭일‘사회와연대’ 회장은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입성에 관해 낙관적입니다. 두루 국제 정세를 꿰고 있는 주 회장은 최근 코피아난 총장의 방한을 좋은 징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반 장관의 앞날은 험난합니다. 그의 생각을 한번 엿보도록 합니다.

다음은 주 회장의 기고문

10월 유엔의 수장인 사무총장 선출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고 있다. 곧 임기가 끝나는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의 방한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난총장은 서울에서 덕담을 남겨 차기총장후보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그는 ‘아시아 차례’라고 밝혀 ‘지역순환원칙’을 강조해 주목을 끌었다. 미국의 ‘아시아 차례’ 거부에 대한 반론으로도 해석돼 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인상이다.

그러나 그는 북핵문제에 관해 ‘6자회담에 조속 복귀’를 촉구하고 최근의 북한의 납치문제에 대해 ‘용납될 수 없으며 조속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난은 한반도가 분쟁으로 중첩돼 매듭이 잘 풀리지 않은 위기지역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이다. 남북분단과 냉전지속이라는 20세기적 이념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과는 과거사와 독도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고, 중국과도 동북공정의 역사분쟁을 치르고 있다.

한반도는 언제 터질는지 모를 지뢰밭과 같다. 반장관의 유엔수장 선출은 그래서 바람직한 일이다. 유엔에서 분쟁조정과 평화적 해결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후보의 사무총장 고지는 험하기만 하다. 과거 지역순환원칙에 따라 경쟁이 없는 총장선출이 이번에는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만 수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아세안의 지지를 받은 수라키앗 타이 부총리가 기선을 잡았으나 경험부족이라는 비판을 받고 조용해졌다. 스리랑카 출신 다나팔라 전 유엔 군축담당 사무차장은 유엔경험이 장점이지만, 내부 차장출신 승진의 거부감으로 주춤해 있다.

라모스 호르타 동티모르 외무장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특히 고촉동 싱가포르 전총리는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고 전총리는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움직임도 없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미국이 ‘지역순환제’를 부정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점찍은 후보가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의 크바시니예프스키 전대통령이다. 미국 부시대통령에게 이라크전쟁 참전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대를 무릅쓰고 큰 규모의 파병을 했다.

1989년11월 자본주의진영에 합류한 동구권 나라 출신이 유엔수장이 되면 러시아-중국과의 대화와 타협이 쉽다는 명분이 크바시니예프스키의 장점이다. 그러나 속으로 배신감을 느끼는 러시아는 ‘절대 불가’의 딱지를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아프리카의 에이즈퇴치 운동에 열중한 미국의 클린턴 전대통령도 타천으로 거론되는 실정이다.

결정권을 쥔 미-영-중-러-프랑스의 상임이사국들의 의견이 갈려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시아 차례’를 선호하지만 이는 반 후보에게 유리하다고만 보기 어렵다. 아시아에 후보가 난립하며, 싱가포르 고 전총리가 출마선언을 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과 중국의 고 전총리 지지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상임이사국 영국과 프랑스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이 과거의 인연으로 고 전총리를 도울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서울주재 한 안보리상임이사국 고위외교관은 ‘조정력이 강한 유능한 후보이며 불어실력도 상당하다’라고 반장관을 평했다. ‘반 후보 지지의사가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본부에서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지역은 중요하지 않고 국제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상임이사국들이 마지막에 한 후보를 선정할 가능성이 많다. 만일 의견이 갈려 대립을 하면 선출권이 총회에 넘어간다. 이 경우 안보리상임이사국의 위상이 추락함으로 만장일치 후보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1개국만 비토해도 선출할 수 없음으로 상임이사국들의 만장일치는 총장선출의 기본조건이다. 미영과 중러의 대립에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프랑스의 입지가 강화돼 케스팅보드를 잡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외교는 중러와는 순풍이나 미일과는 불협화음이 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북정책에서 한미동맹에 파열음이 일고 있으며, 유럽연합이 주도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해 민주주의정신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유엔인권이사국에 아시아에서 7위로 뽑힌 것도 국제사회의 ‘인권불감증에 걸린 한국’이라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 장관에게 낙관은 금물이다. 한국의 대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유능한 해결사의 이미지를 심어야 ‘총장고지’에 다가갈 수 있다. 반장관의 유엔수장 고지 오르기는 그래서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