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구 30년를 되돌아보니, 초창기 기억이 새롭다/교수신문의 30년사
러시아 연구 30년를 되돌아보니, 초창기 기억이 새롭다/교수신문의 30년사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10.19 0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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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러시아어를 처음 접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그때 만해도 소련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현실성은 없을 때였다. 인터넷에 뜬 교수신문의 '러시아 연구 30년'를 읽으면서 그 언저리에서 보낸 지난 세월이 새롭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 러시아학의 연구는 1985년 한국슬라브학회(현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창립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이 학회는 지난 14일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초창기 연구야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냉전이 끝나기 전이라, 반공방첩을 국시로 하던 시절이라 국내에서 러시아(소련) 자료 입수, 연구주제 선정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자칫하면 반공법에 걸리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1972년 한국외대에 소련연구소가 생기는 등 러시아학 연구는 이미 태동기를 맞고 있었다. 1974년 한양대 중소연구소(1997년 아태지연연구센터로 개명), 1979년 고려대 러시아문화연구소(현 러시아·CIS 연구소)가 속속 문을 열었다.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 정책을 계기로 1980년대 중반(1985년)부터 1990년대 초반 국내 러시아학 연구는 해빙기이자 첫 전환기를 맞았다. 특히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소련과의 교류에 장애물을 많이 사라졌다. 북방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소련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고 해외 유학을 떠났던 연구자들도 속속 귀국했다. 직접 러시아로 유학간 유학생들은 90년대 후반에 귀국했다.

언어학 분야의 강덕수(한국외대), 이인영(서울대), 김진원(고려대), 문학 분야의 최선(고려대), 권철근(한국외대), 김희숙(서울대), 고일(고려대), 사회과학 분야에서 문수언(숭실대), 하용출(서울대) 등이 대학이나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와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에도 러시아 관련 학과가 속속 문을 열었다. 한국외대와 고려대에 이어 1984년 서울대에 노어노문학과가 개설됐고 뒤이어 지방 국립대와 수도권 주요 사립대에도 러시아 관련학과가 등장했다. 한국슬라브학회가 창립된 것도 이때즈음(1985년)이다. 이어 1987년 한국노어노문학회, 1989년 한국러시아문학회가 조직됐고, 1989년에는 서울대에 러시아연구소가, 1990년에는 한국외대에 동유럽 지역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동유럽발칸연구소가 출범했다. 

초창기 대학에는 일제시대 러시아를 배운 분들이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역사적으로만 보면 1896년 서울 수하동에 관립 러시아어학교가 설립되었고, 해방 이후 최초 러시아어 교육은 1947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시작되기도 했지만, 정규대학 러시아어과는 1954년 한국외대가 시초다. 초대 주임교수는 하얼빈 소재 만주건국대를 졸업한 동완 교수. 초창기 모든 러시아어 교재, 러시아어 번역물은 동완 교수 이름이 달려있다. 

동완교수에 버금가는 분은 미국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현 KBS 이사장)다. 뒤이어 한국외대 노어과 초창기 졸업생인 김학수 전 고려대 교수(노어노문학과), 이철 전 한국외대 교수(노어과), 박형규 전 고려대 교수(노어노문학과) 등이 나왔다. 

러시아 연구의 또다른 전환기는 현지로 유학을 갔던 연구자들이 귀국하면서부터. 러시아에서 최초인 1996년 게르첸사범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호연 교수를 시작으로 유학생들이 1990년대 중후반 속속 귀국해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비밀 문서고를 개방한 러시아 정책 덕분에 연구는 디아스포라, 구술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불행하게도 2017년 현재, 러시아 관련학과 중 상당수가 통폐합되며 연구를 희망하는 학문후속세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대학으로서는 인문학 연구자 양성보다는 먹고 살도록 해야 하는 문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으니 거부할 수 없는 연구 흐름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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