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달러 넘치는 러시아가 왜 우리 부채는 안 갚나?
오일달러 넘치는 러시아가 왜 우리 부채는 안 갚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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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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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고유가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산유국 러시아는 넘쳐나는 오일머니 덕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 유입으로 4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사상 최대인 2257억달러를 기록했다. 유가하락에 대비해 기금을 조성해온 석유안정화기금만 660억달러를 넘어섰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 신문은 “동기간 외환보유고가 2180억 달러인 한국을 밀어냈다”며 “러시아 앞에는 중국(8750억달러), 일본(8320억달러), 대만(2570억달러) 등 아시아 세 마리 호랑이만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채무국이었던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채권국으로 전환했다.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기까지 했지만 이제 완전히 딴 나라가 됐다.

러시아는 오일머니를 외채 상환에 우선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파리클럽에 졌던 채무 150억달러와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등을 조기 상환했다. 부채 조기 상환은 이자 부담을 덜고, 국가신용도를 올리기 위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배경은 ‘강한 러시아’를 구축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소련시대부터 국제사회에 인식돼온 낡은 이미지를 새롭게 개선해 국제사회의 주류국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외채 때문에 국제사회에 경제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돼온 데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오일달러를 국내 제조업과 사회간접자본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는 경제부처의 논란 속에서도 그는 최우선적으로 외채 상환을 지시하고 있다.

러시아의 총 외채는 1000억달러 이상이며 현재 파리클럽에 290억달러가 남아 있다. 재무부를 중심으로 이미 2004년부터 부채에 대한 조기 상환 계획을 추진해 왔으며, 오는 2008년까지 외채를 전액 상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도 러시아에 대해 엄연한 채권국이다.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외교 추진 명목으로 소련에 14억7000만달러를 경협차관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10여 년 넘게 원금 상환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가 2003년 노무현 정권 탄생과 더불어 양국 관계 걸림돌을 해소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러시아측과 서둘러 차관 상환문제를 마무리했다. 원리금 22억4000만달러에 대한 연체이자 일부를 탕감한 15억8000만달러에 대해 ‘리보(국제금융시장의 기준금리)+0.5%’ 이자에 합의한 뒤 향후 23년에 걸쳐 상환키로 합의한 것이다. 차관 상환은 기존에 현금과 현물 상환방식이었던 것을 2007년부터는 전액 현금 상환토록 합의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합의한 외채협상이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가 파리클럽 부채 등 서둘러 외채 상환에 나서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러시아측과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먼저 이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한술 더 떠 “차관을 조기 상환받는 것이 반드시 이롭지만은 않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에너지 수출액이 1496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61.1%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러시아 경제는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돈을 빌려준 나라가 갚을 형편이 됐으면 응당 상환을 위한 우선 협상을 벌이는 게 도리다. 이렇게 말도 못 꺼내고 미적미적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정병선 모스크바 특파원 [ bschung.chosun.com])
조선일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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