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4일 주영 러시아 대사관 소속 외교관 23명에 대한 추방 조치를 내리자, 러시아 측도 "우리 쪽 대응도 곧 있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이번 추방 조치로 주영 러시아 대사관 인력의 40%가 사라진다고 한다. '23명 추방'은 1971년 이래 영국 정부가 러시아(구 소련)에 취한 최대 규모다.
과거에도 양국은 스파이 추방과 맞추방을 반복해 왔다. 그만큼 양국이 자존심을 걸고 스파이 전을 벌였다. 영국 정보기관 MI5를 축으로 하는 유명 첩보 소설및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이기도 하다. 냉전 초기였던 1960년대 영국의 정보기관 MI5는 영국 내 소련 외교관과 배우자가 1,000명이나 되는 것에 크게 우려했다. 상당수가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게 분명했다. 때마침 소련 대사관내 무역대표부 소속 직원으로 등록된 올레그 라이얼린이 영국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양국 간 전쟁 시, 지하철과 댐 등 주요 시설 파괴와 요인 암살을 맡은 소련 정보기관 KGB의 영국 책임자였다.
넘쳐나는 비 외교관 추방할 구실을 찾던 영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풋 작전(Operation Foot)'을 전개해 1971년 9월 24일 소련 스파이 105명을 쫓아냈다. 당시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 외무장관은 "스파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맞섰지만, 완전히 허를 찔렸다고 한다. 이때 붕괴된 소련의 첩보 능력은 구 소련 붕괴(1991년) 시점까지 복원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또 한차례 스파이 청소 대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1985년 9월에 진행된 '임베이스(Embase) 작전'이다. 소련 대사관의 KGB 대표였던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가 귀국 후 영국에서 암약하는 소련 스파이 명단을 비밀리에 영국 측에 넘겼다. 영국은 그를 주 모스크바 영국대사관 소속 외교관 차량의 트렁크에 숨겨 영국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 영국은 두 차례에 걸쳐 31명의 소련 외교관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 이때는 소련도 같은 수의 축출로 맞섰다.
영국과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전까지 1989년 5월 한 차례 더 같은 수의 외교관과 기자를 맞추방했다. 러시아 출범 뒤인 1996년 5월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7월, 러시아 FSB 전직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독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이 러시아 외교관 4명을 추방했고, 러시아도 이에 보복했다. 이중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으로 양국 스파이 맞추방 사건이 또 한차례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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