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제재에도 러시아가 유로본드 발행에 나서는 배짱은 어디서?
영국의 제재에도 러시아가 유로본드 발행에 나서는 배짱은 어디서?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8.03.18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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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부녀 암살 시도 사건으로 영국 등 유럽대륙의 공분을 사고 있는 러시아가 70억달러 규모 유로본드 발행에 나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 "러시아 재무부는 70억달러 규모 유로본드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며 "표면 금리 4.75%, 만기 11년의 유로본드를 신규 발행하고, 기존 5.25% 금리의 유로본드는 만기 연장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기발행 유로본드의 만기는 2047년으로 연장되며, 표면 금리는 발행 당시보다 높은 5.5%로 정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규모는 신규 본드의 30억달러, 연장 규모는 40억달러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유로본드 발행 주관사 역할을 러시아 최대 자산운용사인 VTB캐피탈이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본드 발행 계획은 국영기업 가즈프롬이 표면금리 2.5%, 만기 8년으로 7억5천만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데 뒤이은 것으로, 주 런던 러시아대사관은 가스프롬의 입찰에 몰린 수요는 발행 물량의 3배를 넘는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측이 이중 스파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로본드 발행을 통해 국제 채권 시장을 변함없이 노크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러시아의 유로본드 발행이 이제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이번에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파이 암살 기도 사건에 대한 영국의 강공책에 러시아는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서방측의 경제제재로 미국과 유럽은행들이 러시아 투자에서 철수한 공백을 자금력이 풍부한 중국은행들이 메우고 있다. 미국 업체로부터 받아온 에너지 분야 기술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가 대신 제공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선은 넘은지 오래다.

이번 유로본드 입찰에 런던 등에 은닉된 러시아 출처의 '검은 돈'이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다. 푸틴 대통령측은 최근 금융 부문 측근을 통해 해외에 나가 있는 올리가르히들의 검은 돈에 대해 출처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이번 스파이 암살 사건은 소위 '런던그라드'(런던에 있는 러시아 올리가르히 공동체라는 뜻)에게 '신변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는 분석도 의미심장하다. 

영국 정부마저 스파이 암살 사건을 계기로 '런던그라드'의 검은 돈을 압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런던그라드' 입장에서는 러시아 재무부의 유로본드에 투자하는 것을 대가로 크렘린측으로부터 '신변보호' 약속을 받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독살 미수 사건이 발각되기 전에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는 다소 해빙의 조짐이 있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지난 2월 23일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등급으로 격상한 것이 그 실례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스파이 사건에 대한 러시아 제제조치에 쉽사리 경제 분야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효과도 효과이지만, 러시아와 협력하는 영국 기업들이 당할 수도 있는 보복 조치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영국 기업은 600여 개에 달하나, 런던 증시에 상장된 러시아 업체는 겨우 30여 개에 불과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업체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러시아 국영 석유 로스네프트의 지분 20%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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