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학생 추락사건을 보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교수의 시각, '힘의 과시 문화' 가 문제다
인천 중학생 추락사건을 보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 교수의 시각, '힘의 과시 문화' 가 문제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12.13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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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도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 같은 외국인'으로 여겨진다. 한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글은 예리하다 못해 칼날과 다를 바 없어서 늘 주목을 받는다.

박교수는 지난 11일 한겨레 신문의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칼럼에서 러시아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준 인천중학생 추락사 사건을 다뤘다. 당시 한국내 러시아 커뮤니티 SNS에는 "러시아 학교에서는 상상조차도 못할 폭력사건이 벌어졌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러시아 학교, 즉 쉬콜라에는 하생들간에 폭력과 왕따가 없을까? 아니다. 분명히 있었다. 1990년대 말 러시아 쉬콜라에 다닌 주재원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든 작든, 심각하든 아니든 분명히 있었다. 러시아로 스포츠 분야 유학을 떠난 국가대표급 선수도 나중에 당시의 어려움 중 하나로 동료들로부터의 '차별'을 들었다. 나의 딸도 대놓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참고 견딘 듯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일까? 얼굴이 다르고, 러시아어에 서투른 외국인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기들끼리 행해지는 왕따도 박 교수의 글로 미뤄보면 간단하지 않다. 그의 글을 보면 대충 윤곽 정도는 그려볼 수 있다. 

"(인천) 사건의 피해자처럼 나도 중학교 시절에 줄곧 ‘왕따’로 살았다. 피해자가 ‘다문화’라고 야유를 당했다면, 나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 피해자의 ‘다르게 생긴 얼굴’이 가해자들에게 문제(?)가 됐다면 나는 ‘뚱뚱하다’는 이유로 모욕과 욕설을 듣곤 했다. 나의 경우나, 내가 직접 목격한 다른 학교폭력의 경우에는 대개 피해자들의 내성적 성격과 주먹질 능력의 부족 등이 가해자들에게 폭력의 빌미를 주곤 했다."

유대인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나 비슷한 왕따 이유가 될 것 같다. 또다른 이유인 뚱뚱하다든가, 내성적이라든가 하는 문제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특히 남자, 숫컷들이 힘 자랑하며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그 이유도 박교수는 나름대로 분석했다고 한다. 
"나는 아동기에 폭력을 당하면서 계속 그 원인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타적 폭력 충동이 인간성의 내재적인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나는 일단 처음부터 일축했다. 나를 포함한 여러 폭력 피해자들도 분명히 같은 인간인데, 왜 타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싶은 충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가? 폭력이 ‘모든 인간들의 본능’이라기보다는 어떤 특정 상황에서 발현된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예컨대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수는 집에서 엄한 아버지로부터 체벌을 당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은 나같이 싸움에 약한 급우들에게 스스로 그런 ‘엄한 아버지’가 되어 체벌을 흉내 낸 폭력을 가함으로써 본인들이 집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폭력 문제아가 나올 확율이 높다는 건 이미 인정된 사실이다. 그 보다 더 심각한 건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건, 아동기의 학생들은 어디서나 여전히 '동물적인 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뚱뚱보’나 ‘유대놈’이 제일 흔했지만, 빈도수로 따지면 그다음으로 많은 것은 ‘계집애 같다’와 ‘걸레’였다. 즉, ‘계집애처럼’ 주먹질이나 발차기를 제대로 못하고, ‘걸레’처럼 우유부단하며 비남성적이라는 뜻이었다. 나뿐만 아니고 유대인이 아니어도 근육질과 공격적인 남성성을 지니지 않은 다른 남자 급우들의 상당수도 피해자가 되곤 했다."

한 교민 아들은 러시아 쉬콜라에서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힘을 보여주다 큰 사고(?)를 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배운 태권도와 레슬링으로 친구들을 물리친 것인데, 그만 한 친구가 부상을 당한 것. 부모는 다음날 학교로 불려갔지만, 그 자녀는 학교에서 더 이상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쉬콜라에서도 '힘 있는 외국인은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박교수는 그러나, 원초적인 '힘의 세계'보다는 폭력을 잉태하는 우리 주변의 환경을 더 우려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우리와 너무 비슷해 보이는 그의 성장기 소련 교육 환경을 보자.

"학교의 복도에 나갈 때마다 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실린 벽보를 읽을 수 있었다. 아프간에 파견되어 ‘반동세력에 대한 토벌’을 한다는 ‘멋진 군인’들을, 학교는 학생들에게 남성의 롤모델로 열심히 홍보했던 것이다. 벽보뿐인가? 자국, 즉 러시아 역사교과서는 거의 ‘우리나라 명장들’의 전시관이나 다름없었다. 각종 ‘명장’이나 ‘대첩’들의 그림과 함께 아이들의 어린 머리에는 일종의 군사주의적 선악 이분법이 주입되곤 했다. ‘우리나라’가 관련된 전쟁이라면 ‘우리’는 완전무결, 절대선 그 자체여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소련 군인들이 점령지 독일 등지에서 자행한 성범죄 같은 것은,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군인’은 상남자 그 자체였다. 거기에다가 교련수업이나 저녁마다 티브이가 보여주는 전쟁 관련 영화 등등. 가해 학생들에게 ‘싸움질 잘하는 남자’가 ‘정상’으로 보이고 나처럼 ‘싸움질 못하는 남자’는 모욕해도 되는 ‘비정상’으로 보인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자가당착의 사회에서는 필연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결론이었다."

그는 한국의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폭력적 남성성 쪽으로 이끄는 학교교육이나 대중문화에서의 군사주의적 선전에 대해 한국 사회가 스스로 성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의 학교든 러시아의 쉬꼴라든 교육환경을 '힘'에서 '이성'으로 옮겨가는 노력이 꼭 필요해 보인다. 비록 다른 나라의 경험이고, 또 성장기를 보냈다지만, 박교수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두 나라 모두 오랜 세월 가부장적 문화를 영위해왔고, 군사문화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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