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유명인사들에 대한 독설, 쇼스타코프비의 '증언'이 18년만에 다시 출간
동시대 유명인사들에 대한 독설, 쇼스타코프비의 '증언'이 18년만에 다시 출간
  • 유일산 기자
  • tangohunt@gmail.com
  • 승인 2019.05.25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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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의 위대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두개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순응’과 ‘항거’다. 그는 소련체제(스탈린)에 '순응'한 계관음악가이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충실한 구현자로 평가됐다. 하지만 그는 스탈린 체제에 내면적으로 항거하면서 변화를 시도해왔다는 시각도 있다.

후자의 이미지를 보다 확연하게 심어준 것은 그의 회고록 '증언'이다. 미소냉전이 한창이던 1979년 미국에서 출판된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이 18년 만에 복간(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 솔로몬 볼코프 엮음ㆍ김병화 옮김/온다프레스 발행/656쪽ㆍ2만5,000원) 됐다. 쇼스타코비치가 말년에 구술한 내용을 음악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책이다. 한국어판은 2001년 이론과실천사에서 처음 나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됐다. 

쇼스타코비치는 책에서 “이 글은 나 자신에 대한 회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회상록”이라고 말한다. 통상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나는 수많은 중요한 사건을 목격했고, 뛰어난 인물들을 여럿 알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한다. 아무 것도 덧칠하거나 거짓으로 꾸미지 않겠다. 이 글은 직접 본 사실에 대한 증언”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은 히틀러와 다를 것이 없다”면서 "(2차대전중에 발표한) 교향곡 7번(통칭 ‘레닌그라드’)을 구상한 건 전쟁 전이었고, 스탈린의 공포 정치로 인해 파괴된 도시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품 하나씩을 바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들 모두에게 내 음악을 바친다.”

'증언'은 옛 소련의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그들의 행태, 당시에 일어났던 갖가지 사건과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반체제 지식인 솔제니친, 화가인 일리야 레핀과 쿠스토디예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도스토예프스키체호프와 체호프, 러시아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글린카를 비롯해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 등을 거론한다. 앙드레 말로, 버나드 쇼, 로맹 롤랑 등도 등장한다. 전체적으로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몇 대목을 더 보자.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그는 비정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이나 음악 등을 평가할 때) 잘 쓰는 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재미있군’, 두 번째는 ‘알아들었어?’라는 말이었다. 이 두 용어는 내 신경을 거슬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단순한 식인종처럼 말하는 걸까?"라고 했고 "프로코피예프는 15년 가까이 (서방과 소련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만 자기 라이벌로 생각했고 틈만 나면 스트라빈스키를 공격해댔다. 그가 나에게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저질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했던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스트라빈스키에 대해서는 “그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였다. 가장 생생하게 감명을 받은 것은 발레곡 '페트루슈카'다. '페트루슈카'를 여러 번 보았으며, 그 공연을 한 번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면서 “ '(대표작으로 꼽히는) '봄의 제전' 같은 것은 덜 좋아한다. 그 곡은 상당히 조잡하고 너무 많은 외적 효과를 노리고 있어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도 담았다. 그는 고골을 사랑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에 대한 감각에 공감하고, 체호프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나는 체호프를 정말 좋아한다. 그는 고상한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싫어했다. 체호프에게 위선의 냄새가 없는 점도 아주 좋다. 예를 들어 그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여자 문제에서는 자기가 프로라고 했다. 나는 체호프를 아주 게걸스럽게 읽는다.”

이 책은 엮은이 볼코프가 쓴 머리말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가 세상을 떠나기 약 1년 전에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볼코프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의 ‘하퍼앤로’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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