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INF시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면 우리도 불안해진다
'포스트 INF시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면 우리도 불안해진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8.25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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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INF(중거리핵전력) 조약 탈퇴에 이은 미국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배치 발언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끈했다. 그는 프랑스와 핀란드 순방에서 미국의 INF 체제 무력화를 비판한 뒤 23일에는 비상 국가안보회의를 열고 국방부측에 철저한 대응조치를 지시했다. 

'포스트 INF 체제'는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미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의 국내 배치 때와 마찬가지로, 중거리 미사일의 아시아 지역 배치를 밀어붙일 경우, 중-러 양국의 거센 반발은 물론이고, 동북한 안보지형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미-러 양국에서 험한 경고성 발언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그만큼 직접적 안보위협을 느낀다는 뜻이다. 

미사일 시험과 아시아 배치를 동시에 추진하는 미국의 의도는 짐작 가능하다. INF 체제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 중단거리 미사일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고, 러시아의 동유럽 위협에도 대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INF 탈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속하게 미사일 실험에 나선 이유도 '오래 참아왔다'는 반증이다.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돌아올 반격도 감안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물러날 없는 '치킨 게임'의 양상이 우려된다.

러시아측은 일단 INF 체제 붕괴의 명분 싸움에서 우위를 노리는 듯하다. 푸틴 대통령은 비상 안보회의에서 "미국이 지난 18일 시험한 중거리 미사일은 INF 조약에 의해 금지됐던 미사일"이라며 "발사대 MK-41을 사용한 것도 그동안 러시아가 지적한 이야기가 맞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지적은 MK-41 발사대의 효용성에 관한 것이다. MK-41 발사대는 동유럽 루마니아에는 이미 배치됐고, 폴란드에 배치되고 있는데, 방어용 요격 미사일 뿐만 아니라 사거리 2천400km의 공격용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도 쓰일 수 있다는 것. 사실상 INF 조약 위반이다. 그래서 미국은 유럽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에 속한 MK-41 발사대는 공격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미 레이시온사가 만든 토마호크 미사일의 개량형이 INF 탈퇴 보름만에 MK-41에서 발사됨으로써 미국은 머쓱해졌다.

러시아 미사일 발사 장면/오픈 소스

미국은 기존의 주장을 계속 되풀이하는 중이다. 조너선 코언 유엔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22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은 1980년대 후반 구소련과 INF 조약을 맺었다"고 전제, "러시아는 지난 10년 이상 이 조약이 금지한 미사일 시스템을 추구했다"고 했다. 유럽을 목표로 한 다양한 크루즈 미사일의 배치로 INF 조약을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발을 묶고, 자신들은 무기 증강을 계속할 수 있는 INF 체제를 중국과 러시아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미국의 INF 탈퇴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미-러 양국은 INF 체제의 붕괴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지만,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의 전개에 불안한 쪽은 러시아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동맹, 파트너들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취하는 필요한 조치"(코언 차석대사)에 대응할 뾰족한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미사일의 동맹국(한국과 일본) 배치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만, 그렇다고 군비경쟁에 나설 경우,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경제 회복은 물건너 간다. "미국이 특정 지역에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는 한, 대응 미사일을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이 거듭 확인하는 이유다.

러시아가 미국을 향해 잇따라 강경발언을 내놓지만, 명분싸움에 불과하다. 현실은 힘을 지니고 있는 미국 편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미국은 러시아의 직접 위협에서 벗어나 있다. '포스트 INF' 시대에 러시아측이 명분에서 유리할 지 모르나, 실리는 미국이 챙겨갈 수 밖에 없는 세계 안보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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