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야권 나발니의 중독(?) 사건을 되짚어보니, 믿기 어려운 보도 많다.
러 야권 나발니의 중독(?) 사건을 되짚어보니, 믿기 어려운 보도 많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24 1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렘린에 적대적인 나발니측 주장 중심의 외신 보도에 일부 의문점
사건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러시아 언론으로 재구성

러시아에서 '반 푸틴' 세력의 구심점인 알렉세이 나발니(44)가 23일 베를린 샤리테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 전문 의료진이 나발니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집중 치료하고 있으나, 뚜렷한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발니의 부인과 측근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했다가, 나발니의 상태를 확인한 뒤 취소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나발니가 독일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상, 러시아 측이 치료 과정에 개입하거나 환자의 상태를 왜곡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샤리테 병원의 발표는 앞으로 러시아 당국이든, 나발니 측이든, 서방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나발니를 샤리테 병원으로 후송한 구급차량/러시아 TV 캡처

그동안 크렘린에 적대적인 나발니 측은 모든 책임을 크렘린에게 돌렸고, 의료진이 나발니의 검진 결과를 왜곡한다고 주장했고, 서방 언론은 그 주장에 '초'(언론사 내부 용어로 과장한다는 뜻)를 치고, 국내 일부 언론은 그걸 '사실'로 보도하는 듯한 경향을 보였다.

나발니가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와 톰스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또 옴스크 응급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러시아 언론을 통해 살펴 보자. 우리가 듣고 보았던 국내 언론의 보도와 다른 게 적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 이슈에 대한 보수-진보 언론간의 서로 다른 보도에 단 한번이라도 "도대체 팩트(실제 사실, 진실)가 뭐야?"라고 생각해본 독자라면, 나발니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언론이 베를린과 모스크바, 시베리아 등의 시간을 혼재해 표기한 탓에 시간은 대충 오전과 오후, 밤 등으로 구분한다.

나발니 측은 사건 발생 직후 (러시아 당국의 배후 조종에 따른) '독극물 중독'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사태 진전도 모두 '독극물 중독' 프레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대표적으로 '독일 이송'이 늦어진 것도, '독극물 흔적이 몸에서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끈 것"이라고 했다.

나발니를 태운 독일 의료용 응급 비행기는 22일 오전 시베리아 옴스크 공항을 떠나 베를린으로 향했다. 나발니 측은 샤리테 병원 의료진이 나발니에 대해 종합 검진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며칠 내에 검진 결과와 향후 치료 방향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의료진은 나발니의 화급한 이송을 주장하지 않았다/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의 독일 병원 이송이 10~12시간 가까이 늦어진 것은, 독일의 엄격한 항공기 운항 규칙 때문이다. 러시아 옴스크 병원에서는 21일 밤 나발니를 공항으로 이송할 준비가 끝났으나, 탑승 (독일) 승무원의 휴식 규정에 따라 바로 출발할 수가 없었다. 나발니는 옴스크 병원에서 러시아 의료진의 보살핌속에 그날 밤을 보내야 했다.

옴스크 응급병원-1의 아나톨리 칼리니첸코 부원장은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나발니 상태가 조금 호전된 상태에서 독일측 의료진과 함께 중환자실로 가 그의 상태를 점검한 뒤 "나발니를 독일로 이송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독일 측의 확인을 받고 이송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의료진은 나발니를 반드시 독일로 보내야 하는 필요성이나 시급성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독일 의료진과 한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중에 독일 의료진으로부터 조종사 문제 때문에 내일 아침에 떠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서 옴스크로 와서) 나발니를 치료한 응급전문의, 옴스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밝혔다/얀덱스 캡처

옴스크 병원 측과 협진을 위해 모스크바서 급파된 보리스 체플리흐 모스크바 피로고브 국립의료외상센터 마취-소생과 과장(마취 전문의) Московский анестезиолог и заведующий отделением анестезиологии-реанимации НМХЦ им. Н.И.Пирогова 는 22일 나발니를 돌보느라 뜬 눈으로 지낸 36시간의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페북 글에서 “36시간 뜬 눈으로 새웠다"며 "부르덴코 신경외과 전문의들과 원격으로 협의한 뒤 함께 밤 비행기를 탔다"며 옴스크 병원의 전문성과 나발니 가족(아내와 동생으로 추정)의 예의바른 행동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사건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나발니 측근들에 대해서는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원인을 찾아내는 데는 종합적인 분석이 필요하고, 그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설명했다"며 "나발니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이송이 결정된 뒤에도 10시간이나 이송을 지연한 독일 의료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송할 준비가 되어 있다더니, 조종사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나발니 측근들은 독일 의료진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침목을 지키는데 더욱 놀랐다고 그는 덧붙였다. 

옴스크 병원 측이 환자의 상태를 이유로 독일 이송을 거부한 배후에는 크렘린이 있다는 나발니 측의 주장도 신빙성이 낮아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0일 나발니가 긴급 후송됐다는 소식에 "나발니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며 "(필요할 경우) 해외 이송 치료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독일 하노버나 스트라스부르 전문병원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발니 측으로부터 나왔다. 최종적으로 베를린 샤리테 병원으로 결정된 과정은 러시아 언론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최종 이송 결정이 나발니의 가족과 지지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가 현재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국경을 봉쇄한 상태(출입국 금지와 항공편 운항 제한)라는 걸 모르는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러시아는 지난 6월 출입국 금지 조치를 일부 완화해 '화급한 환자의 치료및 간호' 목적의 자국민 출국을 허가하기로 했다. 나발니 보호자(부인)의 출국 허가 요청이 필요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비상 상황에서, 치료를 위한 출국 허가를 당국에 요청하고,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옴스크 병원의 의료진은 한 때 나발니가 독일까지 항공기 이송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상태로 호전된 상태가 아니라며 반대했고, 이후 독일측 의료진과 협진 후 "독일 측의 책임" 하에 이송에 동의했다. 만약 이송중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러시아 측(크렘린)이 위험한 줄 알면서 일부러 허가해 큰 일이 나게 만들었다"는 또 다른 비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핀란드 대통령, 나발니의 독일 이송을 중재했다/얀덱스 캡처

다만, 사울리 니이니스테(Саули Ниинисте) 핀란드 대통령은 23일 "메르켈 독일 총리, 푸틴 대통령와 잇따라 전화 통화를 했다"면서 "나발니의 베를린 후송에 중재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그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불분명하지만, 푸틴 대통령과 독일어로 소통하는 메르켈 총리가 굳이 니이니스테 대통령의 도움을 빌렸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역시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여부다. 독일 샤리테 병원 의료진은 나발니가 기내에서 왜 갑자기 혼수 상태에 빠졌는지 조사하고 있으며, 추후 관련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나발니를 치료해온 옴스크 응급병원-1의 칼리니첸코 부원장은 "종합 검사 결과, 나발니 체내에서 알코올과 카페인 물질은 나왔으나, 어떠한 독극물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다"며 "독살 시도는 없었고, 다만 저혈당으로 인한 대사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나발니의 머리카락과 손에서 검출된 산업용 화학물질도 환자의 상태와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현지 화학 전문가들도 "검출된 화학물질은 낮은 수준의 독성을 갖고 있고,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도 않는다"며 "그로 인한 의식불명은 가설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발니 주치의인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는 "나발니의 혈당수치가 20일에도 정상이었다"며 "대사 장애는 (쓰러진 원인을 밝히는) 진단이 아닌 (현재의) 상태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샤리테 병원은 노벨 의학상·생리학상을 받은 학자만 11명을 배출할 정도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다.

다만, 러시아 당국에게는 나쁜 기억도 있다. 지난 2018년 독극물 중독 의심 증상으로 쓰러진 러시아의 반체제 록그룹 리더 표트르 베르질로프가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법원 심리를 마친 뒤 갑자기 쓰러져 현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샤리테 병원으로 후송됐다. 샤리테 의료진은 그의 몸에서 독극물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베르질로프 측은 끝까지 러시아 정보당국에 의한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외신도 이에 동조했다. 

나발니 몸에서 독극물 흔적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나발니 측은 또다른 꼬투리를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송이 지연되는 바람에 독극물이 몸속에서 다 빠져나갔다는 것과 같은 일방적인 주장이다. 멍쩡한 사람을 한순간에 쓰러뜨릴 정도의 독극물이라면, 얼마간의 시간을 지났다고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쉽게 믿기 어렵고, 이송이 최대 12시간 가량 지체된 것도 러시아 측의 잘못도 아니다. 

일련의 서방 언론 보도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언론의 속성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나발니가 '반 푸틴' 캠페인을 이끌어온 이상, 언론은 그에 대한 모든 공격을 러시아 당국이 주도한 것으로 책임을 돌릴 수 있다. 또 무려 21년간 '절대 권력'을 행사해온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더라도, 과잉충성하는 조직과 지지세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최근의 독극물 사건으로는 2018년 이중간첩 출신의 반체제 인사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 중독 이 있다. 스크리팔은 영국 런던에서 냉전시절 소련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중독돼 사망했다. 영국은 CCTV 자료와 노비촉 성분 검출 결과 등을 앞세워 러시아 측 소행이라고 확인했으나, 러시아측은 부인했고, 진실은 역사속으로 묻혀가는 상황이다.

톰스크 공항에서 차를 마시는 나발니. 나중에 공개된 동영상에는 여종업원이 차를 한잔 더 갖고 오는 장면이 찍혔다/인스타그램 @djpavlin

나발니가 소셜미디어(SNS)로 무장한 러시아내 부패척결 운동가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나발니는 지난 2008년 러시아 대형 국영기업들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스스로 국영기업의 주식을 산 뒤 소액주주로서 경영진의 부패 척결이나 투명성 제고를 촉구하고, 정경유착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푸틴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에게 나발니는 분명히 경계대상이다. 이번 시베리아 방문도 '현지의 부정부패, 비리 추적'이 주목적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나발니는 러시아 정재계에 많은 적을 만들었으며, 만약 그가 진짜 (독극물에) 중독됐다면 그들이 유력 용의자일 것"이라고 보도한 이유다.

나발니가 기내에서 쓰러진 직후 그의 대변인은 "톰스크 공항에서 아침에 차 두잔 마신 것 이외에는 없다"며 '홍차 테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보기관은 나발니의 노보시비르스크와 톰스크 행적을 손금 보듯이 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톰스크에서 나발니 일행이 묵은 xander 호텔/호텔 홈피
나발니가 수영을 즐긴 카프탄치코보 마을/소셜미디어 vk.ru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발니 일행은 시베리아에서 당초 묵기로 한 호텔을 비워둔 채 지지자들이 마련한 임시 숙소에서 묵었으며 톰스크를 떠나기 전날 밤(19일 밤)에는 톰스 강변에 있는 한적한 '카프탄치코보' в деревню Кафтанчиково로 가 지지자들과 함께 수영하고 만찬을 즐겼다고 한다. 이 마을은 톰스크에서 25km 떨어진 곳이다. 호텔에는 밤 10시가 넘어 돌아왔다고 한다. 

러시아 정보기관은 나발니의 시베리아 행적을 되짚으면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행적을 '손금 보듯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나발니를 위험에 빠뜨리는 음모를 꾸민 것이라는 빌미를 줄 수도 있고, 그의 부적절한 다이어트가 건강상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부적절한 다이어트가 나발니 건강상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얀덱스 캡처

그는 지난해 구치소에서도 알레르기성 발작(나발니 측 주치의는 화학물질 중독 주장)을 일으킨 바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