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스푸트니크V' 백신의 독자 구매에 적극 나서는 까닭은?
독일이 '스푸트니크V' 백신의 독자 구매에 적극 나서는 까닭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4.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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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측에 요청한 스푸트니크V 사전 협상이 거절되자 독자 노선으로
독일 등 중부유럽권, AZ백신 대체 '플랜B' 구상, 러시아의 개발 능력 인정

독일은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을 전제로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의 구입에 적극적인 모양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은 러시아 측과 스푸트니크V 백신 구입을 위한 예비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스푸트니크V 백신 구입을 위한 사전 협상 진행/얀덱스 캡처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사진출처:모스크바시 mos.ru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측은 최근 회원국 보건장관 화상회의에서 "다른 백신과 마찬가지로 '스푸트니크V'에 대해서도 사전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 없다"고 통보했다. 이 자리에서 슈판 독일 보건장관은 "독일은 독자적으로 러시아 측과 사전 구매 협상을 시작하겠다"며 "EMA의 승인을 전제로 '스푸트니크V'의 공급 시기및 수량에 대해 미리 논의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은 로이터 통신에 의해 처음 보도됐다.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해 EMA의 사용 승인이 떨어지더라도, EU집행위 측이 백신 구입에 머뭇거릴 경우를 대비해 독일이 독자노선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방침은 이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3월 "EMA의 승인만 나면 독일은 '스푸트니크V'를 주문할 준비가 돼 있다"며 "아직 그런 기미가 없지만, 혹시라도 EU 차원에서 주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독일은 단독으로 (구매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는 지난 달 독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 백신의 구매는 '유럽 시스템'을 통해 이뤄져야 하지만, 가능한 빨리 '구매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며 "독일 정부가 EU 집행위에 '스푸트니크V' 구매 협상을 요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슈판 보건장관의 독자 구매 발언도 그 요청이 EU집행위에 의해 최종적으로 받아들어지지 않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체크 총리, 보건장관 경질

독일의 독자 노선은 중부유럽권 국가들의 '스푸트니크V' 구입 흐름을 연상케한다. 과거 공산블록에 속했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EMA 승인과 상관없이 스푸트니크V 백신 구매를 시작했고, 체코에서는 구매 협상에 반대하는 보건장관이 7일 총리에 의해 전격 경질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스테판 쿠르츠 총리는 6일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EMA의 심사가 자꾸 늦어질 경우, 독자적으로 '스푸트니크V'를 등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쿠르츠 총리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서는 안되는 EMA의 심사에서 '스푸트니크V'에 대한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중 하나로 정치적 판단이 끼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생산 현장 실사와 임상시험의 도덕적 기준 확인 등 EMA 측이 추진중인 이례적인 조치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그는 이미 "4월 중에 100만 회분의 '스푸트니크 V' 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스푸트니크V 백신 구매 협상 막바지에/얀덱스 캡처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중부유럽권의 독자 행보는 두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

우선 EMA 승인을 받은 아스트라제네카(AZ)의 혈전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EMA는 안전성위원회를 통해 AZ 백신 접종 뒤 보고된 희귀 혈전증 사례에 대한 검토를 진행한 뒤 7일 "매우 드문 부작용 사례에 추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60세 미만의 여성에게 나타난 파종성혈관내응고장애(DIC)와 뇌정맥동혈전증(CVST)은 AZ 백신 접종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유럽의약품청(EMA) 건물 전경/사진출처:EMA

EMA측의 공식 발표에 따라 유럽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AZ백신 개발국가 격인 영국은 30세 미만 연령층에는 AZ 백신외 다른 백신을 접종할 것을 권고했고, 벨기에는 AZ백신을 한시적으로 만 56세 이상에게만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과 스페인도 8일 접종연령 제한 대열에 동참했다.

한때 AZ 접종을 중단했던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EU 중심국가들은 EMA 측의 앞선 판단에 따라 접종을 재개했는데, 독일과 스페인이 그 대열에서 가장 먼저 이탈한 것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국가들은 계속 AZ 사용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스페인, 60세 이하 AZ 접종 중단 권고/얀덱스 캡처

우리나라도 요양시설및 병원, 코로나19 대응인력,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종사자 가운데 만 60세 미만에 대한 AZ접종을 일시 보류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이 '스푸트니크V' 구입에 적극 나서는 것은 AZ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랜B' 구상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독일은 자국의 바이오기업 '바이오앤테크'가 화이자 백신 개발을 주도한 만큼, 상당량의 화이자 백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EU 집행위의 백신 배분 정책에 따라 물량 확보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AZ와 같은 '벡터 방식'으로 개발된 스푸트니크V와 '교차 접종'(1차 AZ 접종자에 대해 2차 스푸트니크V 접종) 가능성을 예상해볼 수 있다. 

'스푸트니크V' 구매 의향의 또 다른 이유로는 러시아(소련)의 백신 개발 능력에 대한 믿음을 들 수 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 공산권 블록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동서냉전시절 소련의 백신을 사용한 경험을 갖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동독 출신이다. 백신을 개발한 러시아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심리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해야 한다. 

독일 바이에른 주, 올해중 스푸트니크V 생산 개시 가능/얀덱스 캡처

독일의 바이에른주가 가장 적극적으로 '스푸트니크V' 구입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와 가깝고, 동독과도 교류가 잦았던 바이에른 주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지사는 일찌감치 "EMA가 '스푸트니크 V'를 승인할 경우, 즉각 250만 회분을 구매할 것"이라며 심사의 속도를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바이에른주는 스푸트니크V 백신의 위탁생산도 추진중이다.

EMA는 지난달 초 스푸트니크V에 대한 동반심사(긴급사용 승인 심사)에 들어갔는데, 러시아(소련) 약물 심사에 대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현장 실사와 임상시험의 도덕적 기준 확인 등 까다로운 기준을 계속 내놓고 있다. 

EMA, 스푸트니크V 임상시험의 도덕적 기준 준수 확인/얀덱스 캡처
마드리드 시, 스푸트니크V 백신 구매 협상/얀덱스 캡처 

심사가 늦어지면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등 일부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스푸트니크 V'에 대한 구매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스페인 정부가EM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스푸트니크V'는 구매할 수가 없고, 지자체도 독립적으로 백신을 구입할 권리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지만, 지자체는 EMA의 백신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협상을 벌여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푸틴 대통령, 브라질 대통령과 스푸트니크V 백신 등록 협의/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스푸트니크V' 의 브라질 사용승인및 위탁 생산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도 SNS를 통해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사실을 확인하면서 "스푸트니크V 백신에 관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뤄졌던 브라질 내 '스푸트니크V'의 긴급 사용 승인이 이뤄지고, 브라질 내 생산도 확대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스푸트니크V'는 브라질 제약사 우니앙 키미카에 의해 위탁생산 중인데, 지난달 30일 첫 생산 물량이 공개됐다. 

그러나 브라질 국가위생감시국은 스푸트니크V가 승인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긴급사용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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