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붕괴) 유럽 최대 '자포로제 원전'의 안전 문제 부상, 진짜 누구 말이 맞나?
댐 붕괴) 유럽 최대 '자포로제 원전'의 안전 문제 부상, 진짜 누구 말이 맞나?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3.06.1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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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호프카 댐 붕괴 다샛째인 10일 드네프로강 유역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상류 쪽에는 물이 빠지면서 구체적인 홍수 피해 상황이 드러나고, 하류쪽에선 여전히 많은 지역이 물 속에 잠겨 있다. 우크라이나 헤르손주(州) 당국은 9일 헤르손 지역에서는 여전히 3,000채 이상의 주택이 침수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재민은 수만명에 이르고, 30여명이 사망 혹은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드네프로강이 흑해와 만나는 오데사항(港)에서는 큰 물에 실려 떠내려온 각종 부유물이 끊임없이 목격되고 있다. 영상을 보면 흙탕물 위로 주택 지붕과 TV, 소파 등 각종 가재도구, 생필품, 쓰레기 등이 바다위에 떠 있다. 

일부가 붕괴된 카호프카댐의 현재 모습(위)와 하류로 밀려온 각종 쓰레기들/캡처 

전문가들의 현실적인 고민은 카호프카댐의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카호프카댐의 풍부한 수량에 기대 살아온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물 부족은 삶의 근간을 위협하는 문제다. 생활용수와 농업·산업·발전용 등 각 분야에서 조만간 닥쳐올 물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러-우크라 모두 고민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10일 오전 기준으로 카호프카 댐의 저수량은 3분의 1이상 줄어들었다. 수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우크라이나의 '우크르히드로에네르고'사(社)는 10일 "오늘 아침 댐의 니코폴 지역 수위는 10.55m로 전날보다 1.2m 가까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현지 지역당국은 8일 "카호프카댐의 수위가 12.5m로 떨어졌다"며 "일부 지역은 수위가 3m로 내려갈 수 있으며, 댐 저수지의 둘레가 3.5km에서 1~1.2km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또 댐 인근의 '그리보이 로그' 군사행정 당국은 "카호프카댐에서 더 이상 물을 공급받지 못할 경우, 자체적으로 확보된 생활용수는 한달 보름분 정도"라며 주민들에게 물 절약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로제(자포리자) 원전'의 냉각수 확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8일 "카호프카댐에서 냉각수용 물을 계속 가져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수위가 더 낮아지면 어디에서 물을 취수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남은 시간은 3개월 정도라고 덧붙였다.

자포로제 원전의 안(위)와 밖/캡처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자포로제 원전의 안전 문제(냉각수 공급)를 보는 시각은 과거 원전을 운영했던 우크라이나의 '우크르에네르고'와 현재 원전을 통제 중인 러시아의 '로사톰', 전세계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서로 제각각이다.

우크르에네르고 측은 "원자로 냉각수조의 물 손실로 인해 핵 재앙의 잠재적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주장했으나, 러시아 로사톰의 알렉세이 리하초프 대표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여러 가지 대안을 마련했다"며 "첫날부터 물 부족에 따른 위험 시나리오를 계산했으며, 현지 직원들이 단계별로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IAEA의 현실 진단은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8일 "카호프카 댐의 수위가 12.7m 아래로 떨어지면 원전으로 물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며 "이날 오전 9시 현재 수위는 13m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로시 총장의 판단이 맞다면, 자포로제 원전은 더 이상 카호프카댐의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올 수 없는 처지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자포로제 원전을 사찰하는 IAEA대표단

'자포로제 원전의 6개의 원자로가 모두 정지 상태에 있는데, 왜 냉각수가 계속 필요하느냐'의 의문 제기에 그로시 사무총장은 "여전히 필요하다"며 "(IAEA의 추정대로) 3개월 후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 원자로의 노심이 녹으면서 방사선이 방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으로 현지에서는 원자로의 과열로 원전 참사가 빚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재연할 것이라는 괴담까지 돌았다. 원전 사고는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몰도바, 터키, 불가리아 등 주변 국가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IAEA가 3개월이라는 시간이라도 번 것은, 원전 내부의 크고 작은 '냉각(수) 호수'에 물을 가득 채워두었기 때문이다. 그로스 사무총장은 "앞으로 3개월간은 원자로 6기와 사용후 핵연료를 식히는데 필요한 물은 충분할 것"이라며 "냉각수 공급은 원전 안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모든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내주 직접 자포로제 원전을 방문할 것이며, IAEA 감시단을 더 큰 규모로 교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자포로제 원전의 '냉각 호수'는 카호프카댐과 수문으로 연결돼 있지만, 자체 잠금 장치가 있는 구조다. 이 냉각 호수 물의 90%는 원자로 터빈의 운영에 주로 사용된다. 체르노빌 원전 출신으로 원전 안전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쿠프니는 "원자로가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터빈도 서 있다"며 "냉각 연못의 물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냉각 호수의 나머지 10%의 물은 원자로 노심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는 1차 회로에 공급되는 등 시스템의 특수 물처리에 쓰인다. 원전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자포로제 원전의 물 사용/캡처

전문가 쿠프니는 "자포로제 원전의 6개 원자로 중 5개는 '콜드 셧다운'(영구 정지) 모드이고, 나머지 1개는 '핫 셧다운' 모드이나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니다"면서 "그러나 상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의 양은 적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냉각 연못'의 물은 충분할까? 그는 "내부 누수가 있고, 열로 인한 수분 증발 등도 있어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물이 넘치거나, 냉각 호수가 무너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포로제 원전의 안전을 근본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없을까?
무엇보다 카호프카댐 저수지의 수위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도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략연구소의 유리 코롤추크 연구원은 "수력발전소의 복구는 일단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댐은 다르다"며 "댐이 완전히 파괴된 게 아니라면 댐을 다시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몇 달이면 충분하다. 

우크르히드로에네르고 이고르 시로타 대표는 "임시로 댐을 쌓고 물을 채울 수 있다"며 "카호프카댐 저수지의 수위를 설계 수준(약 16.5m)으로 되돌리기 위한 솔루션은 이미 나와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드네프르강의 다른 곳에서 파이프 라인(급수관)으로 자포로제 원전의 냉각 호수로 취수하는 방법도 있다. 그로스 IAEA 사무총장이 '찾아야 한다'는 다른 '취수원'으로부터 물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급수관 부설 자체도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에네르고아톰의 표트르 코틴 대표는 "급수관과 취수 펌프를 설치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땅(러시아 점령지)을 이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자포로제 원전 내부/영상 캡처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후쿠시마판 괴담'이다. 자포로제 원전에 사고가 발생하면 반경 20~30km 내에서 대량의 방사선 방출이 예상된다. 기상 조건과 풍향에 따라 피해 범위가 달라지지만, 우크라이나 외에도 루마니아, 몰도바, 터키, 불가리아, 그리스, 벨로루시, 러시아 일부(로스토프 지역의 크라스노다르)도 영향권내에 들어갈 수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측 연구에 따르면 직접적인 오염 지역은 최대 3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자포로제주는 물론, 드니프로와 크리보이 로그, 멜리토폴 등 주변 대도시들이 모두 피해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쿠프니는 "노심은 1,900도에서 녹기 시작한다"며 "자포로제 원전의 원자로는 가동 중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1년 동안 원자로의 자연 냉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냉각수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 핵 연료가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노심이 녹는 것보다 덜 위험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전략연구소의 코롤추크 연구원은 사용후 핵연료 수조에서 핵연료를 인위적으로 빼내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코틴 대표는 "6번째 원자로를 '핫 셧다운 모드'에서 '콜드 셧 다운 모드'로 전환하면 원전은 안전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원전에는 또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해둔 컨테이너가 174개나 있다. 이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도 원전 안전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스트라나.ua는 결론적으로 "원자로 폭발과 같은 비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자포로제 원전 안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앞으로 몇 달간 없을 것"이라며 "모든 것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얼마나 빨리 취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 매체는 또 "자포로제 원전의 위치가 최전선 근처라는 점에서 대응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원전을 위협하는 전투는 멈출 것이라는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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